(38) 책방 분위기 만들기 - 윤영식 / '딴뚬꽌뚬' 책방지기
가끔 책방 인테리어에 대해 칭찬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책방지기로서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뜻밖이라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조금씩 꾸며오고 있는 공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과 기억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합니다.
딴뚬꽌뚬이 자리 잡기 전, 이 지하 공간은 꽤 오래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저희가 이 장소를 답사했을 때는 공포영화 배경으로 쓰이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화장실은 공사가 마무리 될 때 까지도 음침하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화장실 밖도 쉬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공사 후에는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공간으로 변모했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터무니없이 크고 황량한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서가와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이고, 커피머신과 커피 로스팅 룸이 준비되자 공간에 용도와 목적이 부여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이 지하공간에 분위기와 개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저희에게, 특히 저에게는 무척 큰 도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 저는 공간을 꾸며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 제가 직접 만들어 본 공간은 기껏해야 제 방 뿐이었는데, 그 곳은 지금도 꾸민 데 하나도 없이 그저 필요한 물건들을 꾸역꾸역 쌓아 둔 창고에 가깝습니다. 다행히 제 방이야 저 혼자 쓸 곳이니 저만 편하면 상관없겠지만, 책방은 그렇지 않죠.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낯설 이 공간이 그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즐겁게 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급선무였던 것은 텅텅 비어 있는 곳들을 의미 있게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곳에는 저희 가족들이 오랫동안 보관해왔던 물건들이 들어왔고, 어떤 곳에는 새로 구입하거나 직접 만든 장식물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서가를 가득 채우기가 어려웠던 초기 개업 상황에서 서가의 허전함을 숨기는 데는 이런 소품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책방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손님들이 가게를 구경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공들여서 만든 소품들을 조잡하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많이 고민했던 장식품 배치가 어설프다는 느낌을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무척 감사하게도 손님들은 저희 공간에 연출된 분위기를 꽤 좋아해 주셨습니다. 공간에 대해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 마다 저는 긴장을 풀고 안심하면서도, 사람들의 관대함에 놀랐습니다. 아마추어들이 그 때 그 때 떠올린 아이디어로 조금씩 채워 온 공간에 어설픔이나 부족함이 왜 없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책방에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 까닭은 사람들이 저희 공간에서 단점들보다는 좋은 점들을 찾아내고 바라봐 주셨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특히 테이블의 투박함보다는 그 투박함 위에 붙여 둔 새끼손가락 끝 마디 크기의 인형들이 귀엽다고 좋아하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서점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서가입니다. 개업 준비를 위한 인테리어가 마무리된 이후, 저희는 서가를 의미 있는 책들로 채우는데 더 신경을 기울였습니다. 서가가 조금씩 채워지자, 한 때 그 허전함을 가려주었던 소품들은 책들을 위해 자리를 돌려주고 있습니다. 아마 최근 들어 저희 책방을 찾으신 분들이 책방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면, 소품들보다는 놓여있는 책들이 만들어내는 의미들의 합창 때문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서가에서 소품들이 맡은 역할은 한시적인 것이므로, 책방이 자리를 잡아 갈수록 이 친구들도 다른 장소에서 다른 역할을 찾아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책방이 책방다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이 소품들을 사랑합니다. 이 사소한 물건들 하나하나가 기억할 만한 추억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소품이 책에게 자기 자리를 돌려주면, 이 소품을 위한 새로운 장소를 고민하게 됩니다.
책방은 처음에 상상했던 분위기를 지향하며 어떤 일관성을 지켜가겠지만, 그 지향을 향해 조금씩 다가갈 때 마다 크고 작은 변화들을 겪겠지요. 저는 그 과정에서 떠나보내게 될 과거와 맞이하게 될 미래 사이에서 즐거운 화해 지점을 항상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저희 책방 분위기를 좋아하셨던 모든 분들의 추억을 지키면서도, 더 나은 모습으로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