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설 속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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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설 속 현기증
  • 김선
  • 승인 2021.03.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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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㊲변호사의 빈약한 변론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À cause de toutes ces histoires de longévité, de tous les jours et de tous les temps qui ont parlé de l'âme de Mureso, tout a l'air d'être transformé en eau incolore, et Mureso a ressenti une gêne à l'intérieur.

그 모든 장광설들, 뫼르소의 영혼에 관해 이야기했던 한없이 긴 모든 날들과 시간들 때문에 모든 것이 빛깔 없는 물처럼 변해 버리는 것 같았고 뫼르소는 그 속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오후에도 커다란 선풍기들이 여전히 실내의 무더운 공기를 휘젓고 배심원들이 손에 든 가지각색의 조그만 부채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부채의 율동이 법정에 흐르는 마음의 일치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변호사의 변론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엔가 뫼르소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에 집중하게 하는 변호사의 말이 무엇이었을까? 뫼르소가 죽인 것은 사실이라는 언급이다.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마음의 반동작용이 변호사의 말에 집중하게 한 것이리라. 뒤이어 변호사는 그런 투로 계속하면서 뫼르소에 대해서 말할 적마다 자신은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뫼르소는 매우 놀랐다. 놀랄 지점인지 모르겠다. 변호사는 변호해야 할 사람을 자신처럼 변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의문스럽고 놀랄 수는 있겠다. 뫼르소는 간수에게로 몸을 굽혀 그 이유를 물었다. 간수는 잠자코 있으라고 말하고 조금 있더니 변호사들은 모두 그런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현상에 특수하게 해석한 뫼르소는 그것도 또한 뫼르소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뫼르소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뫼르소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뫼르소가 원하는 대신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그때 뫼르소는 벌써 그 법정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변호사도 자신에겐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변호사를 우스꽝스럽게 본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변호사는 변호사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변호사는 빠른 어조로 뫼르소의 가해행위를 변호하고 나서 그도 역시 뫼르소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요한 논점을 잘 집었다. 그러나 뫼르소가 보기에 그는 검사에 비해서 솜씨가 훨씬 떨어지는 것 같았다. 변호사 역시 뫼르소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을 때 검사 각하의 의견과는 반대로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으며 펼친 책을 읽듯 그 영혼을 훤히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뫼르소는 성실한 인물이요 규칙적이고 근면하고 일하는 회사에 충실했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동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거기서 읽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바람직한 영혼을 변호사는 본 것이다. 그가 본 뫼르소는 힘이 자라는 한 오랫동안 어머니를 부양한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양로원에 대해 변호사는 뫼르소의 재력으로는 시켜 드릴 수 없는 안락한 생활을 양로원이 대신해서 늙은 어머니에게 베풀어 줄 수 있으리라고 뫼르소는 기대했다는 것이다. 양로원과 관련해 말이 많았다는 것을 변호사는 도리어 이상스럽게 생각하는데 그러한 시설이 유익하고 중요하다는 증거를 굳이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런 시설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국가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나름 그럴싸하다. 다만 장례식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뫼르소는 그것이 그의 변론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라고 느꼈다. 장례식에서 뫼르소의 행동을 이상한 영혼의 소유자로 논거를 들었던 검사에 대해 반박하지 못했으니 뫼르소가 변호사를 우스꽝스럽게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장광설들, 뫼르소의 영혼에 관해 이야기했던 한없이 긴 모든 날들과 시간들 때문에 모든 것이 빛깔 없는 물처럼 변해 버리는 것 같았고 뫼르소는 그 속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1899~1980), 현기증 Vertigo, 1958.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1899~1980),
현기증 Vertigo, 1958.

 

어쩌면 영화 <현기증>에서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친구와 여인이 느꼈을 죄책감, 인과응보, 기만, 배신, 사랑, 집착, 상실감, 살인, 위선 등 많은 감정을 뫼르소는 법정에서 증폭된 상황일지 모른다.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뫼르소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뫼르소의 현기증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는 자신과 상관없는 소리인데도 그 소리에 자신을 위로하는 듯하다. 뫼르소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자신이 지극히 빈약하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가장 나약해질 때 가장 빈약한 추억이 힘이 되기도 한다. 여름철의 냄새, 자신이 좋아했던 거리, 어떤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그곳에서 자신이 하고 있던 부질없는 그 모든 것이 목구멍에까지 치밀고 올라왔고 뫼르소는 다만 어서 볼일이 끝나서 자신의 감방으로 돌아가 잠잘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중요한 일이어야 하는 모든 것들이 뫼르소에게는 부질없는 일로 치부하는 마음의 상태는 피곤할 뿐일 것이다.

  뫼르소의 변호사가 끝으로 배심원들은 일시적으로 잘못 생각하여 길을 잃은 성실한 일꾼을 사형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외치고 뫼르소가 이미 가장 확실한 벌로써 영원한 뉘우침의 짐을 끌고 가고 있는 터인 범죄에 대해 정상 참작을 요구했다. 변호사는 법정의 분위기에 이미 매몰되어 버린 듯이 말했던지 뫼르소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법정은 공판을 중지하고 변호사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애쓰기는 했지만 변호사 직업으로써의 애씀에 대해 그의 동료들이 달려와서 훌륭했다고 말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중 한사람은 심지어 뫼르소에게 맞장구를 쳐 달라는 듯 물어 보기까지 했다. 뫼르소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 직업군에 대한 억지 동의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같다. 동의는 했지만 뫼르소의 칭찬은 충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피곤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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