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밖으로의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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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밖으로의 도약
  • 김현
  • 승인 2021.03.1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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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㊳사형선고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Ce qui était important, c'était une course folle qui offrait une possibilité d'évasion, un saut hors de conscience impitoyable et des opportunités infinies d'espoir.

중요한 것은 탈출의 가능성, 무자비한 의식 밖으로의 도약, 희망의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미친 듯한 질주였다.

 

밖은 어느덧 해가 기울어 더위는 수그러졌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들로 뫼르소는 저녁의 아득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뫼르소와 사람들은 모두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그들 모두가 다 함께 기다리는 그것은 오직 뫼르소 한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일이었다. 뫼르소는 다시 한 번 장내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과는 사뭇 다를 듯하다. 모든 것이 첫날과 똑같은 상태였다. 뫼르소는 회색 웃옷을 입은 신문기자, 그리고 자동인형 같은 여자의 눈길과 마주쳤다. 첫날과는 다른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제야 재판 중에 뫼르소는 한 번도 마리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뫼르소는 그녀를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나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일이 많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셀레스트와 레몽 사이에 마리가 보였다. 그녀는 이제야 끝이 났다는 듯이 뫼르소에게 조그맣게 손짓을 했다. 그리고 약간 근심 어린 얼굴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위로의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알아서인지 뫼르소는 가슴이 꽉 막힌 느낌이었고 그녀의 미소에 답할 수조차 없었다.

공판이 재개되었다. 매우 빠른 어조로 배심원들에 대한 일련의 질문들이 낭독되었다. 낭독되는 질문에서 결론이 보인다. 살인죄, 계획적, 정상참작 등의 말들이 들렸다. 배심원들이 퇴장했고 뫼르소는 이미 앞서 기다린 적이 있는 방으로 끌려갔다. 방안에서 뫼르소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뫼르소의 변호사가 따라와서 매우 수다스럽게 여느 때보다도 더욱 자신 있고 다정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그의 태도에 뫼르소는 호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며 몇 년 동안의 금고나 혹은 징역만 살면 그만일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뫼르소가 원하는 결론은 아닌 것인지 만약에 불리한 판결이 날 경우에는 파기할 가능성이 있냐고 물었다. 그럴 수는 없다고 변호사는 대답했다. 배심원 측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법률적 주장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그의 전술이었다는 것이다. 전술을 이제야 뫼르소에게 말해 준 것이다. 그는 그렇게 아무 사유도 없이 그냥 판결을 파기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뫼르소가 생각해도 그것은 명백해 보여서 그의 논리에 승복했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쓸모없는 서류들만 너무 많아질 것 같았다. 어쨌든 상고가 있을 것이고 결과는 유리하게 나오리라고 확신한다고 변호사는 말했다. 이것도 변호사의 확신일 뿐이다.

그들은 매우 오랫동안 아마 거의 사오십 분 가까이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더니 얼마 후 종이 울렸다.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배심원 측의 답신을 배심원 대표가 읽을 것이고 판결문 낭독 때에야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를 두고 가 버렸다. 완전히 버리고 가버린 느낌이다.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층계를 뛰어가고 있었으나 멀고 가까움을 분간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는 법정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무엇인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로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있다. 다시금 종이 울리고 피고석 문이 열렸을 때 뫼르소에게로 밀려온 것은 장내의 침묵, 그리고 그 젊은 신문기자가 눈을 옆으로 돌린 채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야릇한 감각이었다. 법정의 분위기는 뫼르소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뫼르소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뫼르소에게 이상스러운 말로 그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결론이다. 그때 뫼르소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어떤 배려의 표시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동정의 시선이 가득하다. 간수들은 뫼르소에게 아주 부드럽게 대했다. 변호사는 뫼르소의 손목 위에 그의 손을 올려놓았다. 뫼르소는 이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재판장이 뫼르소에게 무엇이든지 덧붙여 말할 것은 없냐고 물었다. 뫼르소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없다고 대답했다. 뫼르소가 끌려 나온 것은 그때였다.

세 번째로 뫼르소는 형무소 부속 사제의 면회를 거절했다. 그에게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를 곧 만나게 되긴 할 것이다. 지금 뫼르소의 관심거리는 기계장치로부터 벗어나는 것, 불가피한 것으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운명이 바뀔 처지처럼 자신의 감방이 바뀌었다. 생각도 바뀌어 갈 것이다. 지금 이 감방에서는 번듯이 누우면 하늘이 내다보인다. 하늘밖엔 보이지 않는다. 낮에서 밤으로 옮겨가는 색깔들의 쇠락을 하늘의 모습 속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영화 '이방인'에서 뫼르소
영화 '이방인'에서 뫼르소

 

윤동주의 '별헤는 밤'처럼 뫼르소의 하루하루도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물론 시대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보기에는 평온해 보인다. 누워서 머리 밑에 손을 괴고 뫼르소는 기다린다. 기다림 속에는 평온함이 없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그 가차 없는 매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난 예가 처형되기 전에 종적을 감추었다든지 경찰의 비상경계선을 돌파한 예가 있었을까 하고 뫼르소는 얼마나 여러 번 자문해 보았는지 모른다. 자문의 대답이 바뀌지 않는 것이기에 그럴 때마다 뫼르소는 사형 집행에 관한 이야기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그러한 문제에는 언제나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일을 당하게 될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사형을 당하리라고 생각하고 살지는 않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후회하고 있다. 특별한 저서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뫼르소는 그것들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호기심을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책들 속에서라면 탈출에 관한 이야기들을 찾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한 번쯤은 바퀴가 멎어 그 거스를 수 없는 사전 계획 속에서도 우연과 요행이 한 번쯤은 무슨 변화를 일으킨 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간절함이 묻어난다. 단 한번만! 어느 의미로는 그 한번만으로 자신에게는 충분했으리라 생각했다. 나머지는 자신 마음으로써 보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마음과는 자르게 신문들은 흔히 사회에 대해 지고 있는 부채를 운운하며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뫼르소의 상상력에 호소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탈출의 가능성, 무자비한 의식 밖으로의 도약, 희망의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미친 듯한 질주였다.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물론 희망이라고 해도 그건 길모퉁이에서 달리던 도중에 날아오는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러한 호사를 자신에게 허락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자신에게 그것을 금지하고 기계장치가 자신을 다시 붙드는 것이었다. 뫼르소에게 단 한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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