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멍들고 성장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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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멍들고 성장하는 아이들
  • 이정숙
  • 승인 2021.11.04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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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
(11) 이정숙 구산초교 교사 / 인천교육연구소

 

“선생님 선호가 아파서 늦게 가요. 신청서가 없는데 다시 보내주시겠어요? 약 좀 먹으라고 해주세요. 상담이요? 제가 신청했나요? 아 깜빡했네요. 체험학습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모둠별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가 있어 우리 혜민이가 힘들대요. 선생님이 얘기 좀 해주세요. 옆 짝이 괴롭힌대요. 그 아이에게 주의 좀 해주세요. 가정통신문에 있다고요? 잃어버렸는데 다시 보내주세요.......”

 

민원 창구처럼 매일매일 오는 전화와 메시지를 받으며 김샘은 오늘도 정신이 없다. 다시 울리는 전화 벨소리! 해균이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영기 아버지도 전화를 했다. 모두 당신의 아이를 윤이가 때렸단다. 가만있지 않겠단다. 학폭에 고소하겠다며 학교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교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방안을 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흠!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학폭이라니!’ 마치 상대방 아이가 범법자인양 감옥이라도 보낼 기세다. 이곳은 교육하는 곳이지 아이를 판결하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고 감금하는 곳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교실에서도 아니고 집에 가는 길에 싸운 걸 김샘이 어쩌란 말인가.

김샘은 아이들에게 매번 주의를 주고 사과하는 법을 알려주지만 어디 아이들이 그대로 배우던가. 장난꾸러기 해균이는, 소심한 영기는 부모에게 이르는 게 상대방에게 보복한 거라 생각한다. 갈등을 자신이 풀기보다는 부모에게 이르는 게 가장 손쉬운 해결이라 여겼나 보다. 그 맥락을 알지 못하는 부모는 그저 아이말만 듣고 흥분해서 버럭버럭 거린다. 김샘은 계속 난처하기만 하다. 상황을 찬찬히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리고 조금만 참고 그대로 둔다면 아이들은 정말 재밌게 다시 논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었다. 다음 날 나중에 아이들 말들에는 자기들이 싸운 기억도 희미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놀다 다툰 아이들끼리는 이미 사과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게 되어버린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되짚어 그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시시비비를 가르는 일이 무색하기만 하다.

종종 부모의 성급한 개입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망친다. 오늘도 해균이와 윤이는 서로 하하거리며 신나게 놀고 장난친다. 부모의 그 성급함은 사회가 만들기도 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혹시 내 아이가 학폭에 시달리고 있지나 않나’ 촉각을 세운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몇 마디 말에도 즉각 방어기제가 두서없이 튀어 나온다. 전후좌우를 살필 새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한다. 담임은 양쪽에서 그 부모들의 사나운 목소리를 들으며 진정하시길 기다리지만 그 공격에 상처만 받는다. 김샘은 하는 수없이 부모님들이 원하는 ‘조치’를 취한다.

 

 

“해균이는 쉬는 시간에 윤이랑 붙어있지 마세요.”

“윤이는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네.”

“정진이 왜 또 해균이한테 가서 장난치니?”

“쉬는 시간에도 따로 따로 다녀요.”

 

김샘은 사이좋게 노는 아이들을 경계하고 채근하면서 부모들이 원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그 조치는 서로 장난치는 게 일인 아이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된다. 김샘은 ‘대학살의 신’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는 친구끼리 싸운 부모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한 집에 모여 한 시간 넘도록 서로 토론을 하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만 내내 전개된다. 그 부모들은 고상한 말로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의미 없는 소모전을 벌이다 점점 자신의 아이들보다 유치한 싸움으로 치닫고는 결국 마지막 장면에 다다른다. 부모들이 고상한 척 하다가 점점 야만의 모습으로 치닫는 사나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죽였다던 문제의 햄스터는 돌아다니며 멀쩡히 살아있고, 정작 싸운 두 친구는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는 고상하고 이성적인 문명인 척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과 이득에 따라 점점 발가벗겨지면서 야만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비꼬는 이야기이다. 김샘은 어쩐지 아이들 싸움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학폭 관련 설문조사에서 반에서 괴롭히는 아이로 윤이 이름을 쓴 해균이는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훈우를 꼽는다. 재미있고 똑똑하기 때문이란다. 영기는 매일 해균이와 다투면서도 늘 같이 다닌다. 이 오묘한 아이들의 관계를 해균이 부모는 정진이, 영기 부모들은 아실까?

 

 

프랑스선 여름 방학 내내 부모님 없이 새로운 지역에 머물면서 또래 아이들과의 단체 생활을 통해 서로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캠프를 보낸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 중 일부는 일부러 장돌로 싸우는 원시의 놀이를 하며 무릎도 까지고 넘어지고 다치기 도 한다고 한다. 물론 의료진들이 있어 치료를 해주고 어느 정도 안전한 싸움이긴 하지만 평소에 할 수 없는 놀이기에 아이들은 상당히 신나게 논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놀이터 디자이너인 독일의 귄터 벨치히는 ‘지나치게 안전하고, 지나치게 통제된 놀이터는 나쁜 놀이터’라고 지적하며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건강한 위험’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안전만을 강조하면서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놀이터에 다칠 수 있는 정말 위험한 것들 - 깨진 유리조각이나 날카로운 금속, 추락사고 같은 사고위험 등 - 은 당연히 제거돼야 하지만 오로지 안전함과 평안함만을 추구하고 싸움이나 건강한 놀이조차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문화 속에서는 문제의 상황에 대해 수동적으로 만들어 사회적 성장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아이들이 인식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하고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위험’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듯이, 갈등을 부모에게 일러 부모가 해결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싸움을 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성장에 필요한 자원이 된다. 부모들의 과잉보호도 아동학대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통제 가능한 위험’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건강하게 ‘멍들 자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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