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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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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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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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칼럼]
양재덕 / (사)실업극복인천본부 이사장

청년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다. 청년의 실업이 심각하다.

2020년 한국의 실업자 113만 명중 청년실업자가 32만 명이다. 실업자 4명중 1명은 청년실업자란 소리다. 실업률로 따져도 청년 실업률 9%로 전국 실업률 4%의 두 배가 넘는다.

이것은 통계청의 통계일 뿐 실제는 이보다 더욱 심각하다. 즉 청년의 확장 실업률은 26%나 된다. 청년 4명중 1명은 실업자란 소리다. 확장 실업률이란 놀고만 있을 수 없어 주당 36시간 미만의 알바생들이 생활이 안 되어 추가로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과 구직을 포기한 청년들(통계조사주간 이전 4주간 구직활동을 안 한자, 구직활동은 했지만 일자리가 나왔을 때 개인사정으로 취업을 못한 청년들은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 인구에 포함시킴-이들은 모두 실제 실업자이다.)을 실업자에 포함시킨 개념이다. 그리고 실업자 중 20%는 6개월 이상 장기 청년 실업자이다. 장기실업은 평생 저소득 양극화의 기초가 된다. 한국의 청년 니트족은(OECD기준으로 직업도 없고 필요 교육도 받지 못한 청년) OECD 36개국 중 6위로 많다.

20대의 청년 장애(공항장애, 불안장애, 조울중, 우울증) 치료경험자가 2014년-2018년 사이에 91%가 증가하였다. 이는 국민 전체 장애진료 경험자의 3배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청년 10명중 8명은 한국을 헬 조선이라 생각하며, 결국 7.5명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고, 이는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구조적 토대이다.

20대들이 아파트 파동 때문으로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촉발 계기일 뿐이다. 요약하자면 청년들에게 비젼있는 일자리가 없다 보니 이상한 왜곡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일자리 현상은 이미 30년 전부터 우리 경제 사회에 배태된 현상이다. 환언하면 한국경제 30년간 제조업이 쇠퇴한 이유이다.

GDP 성장률을 보면 90년대 9%, 2000년대 5%, 2010년대 3.3%, 2020년대 2%로 곤두박질을 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일자리 증가율을 보면 70년대 3.6%, 90년대 1.6%, 2010년대 1.4%로 급감하는데, 2010년엔 65세 이상 노인 고용율이 90년 26.4%에서 2010년 32.9%로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우리사회의 고등학교 졸업생은 72.5%가 대학을 진학한다. 그리고 27.5%는 재수, 삼수를 하여 결국 대학을 거의 다 간다. 대학을 졸업한 화이트칼라는 300인 이상 대기업의 사무 전문직을 원한다. 그런데 일자리는 90%가 300인 이하의 중소 영세 기업 일자리다.

이들의 일자리는 힘든 노무직에, 저임금으로 청년들에게 비젼을 주지 못해 기피한다.

2018년 한해만 보아도 300인 이상 대기업의 구인 일자리는 26만개인데, 구직을 원하는 전문대 이상 대졸자는 178만 명이나 된다. 들어갈 일자리는 7명중 한 명밖에 없다.

 

‘인천청년네트워크' 소속 인천 청년들이 지난 6월 열린  ‘2021년 인천 청년정책 제안보고회’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온라인 취업 매칭 시스템 구축’ 등 4개 정책을 인천시에 제안했다.
‘인천청년네트워크' 소속 청년들이 지난 6월 열린 ‘2021년 인천 청년정책 제안보고회’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온라인 취업 매칭 시스템 구축’ 등 청년정책을 인천시에 제안했다.

 

이러한 청년들에게 정부(지방정부 포함)의 정책은 무엇인가?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공무원 공기업포함)이 없으니 중소기업에 가라는 것이다. 중소 영세 기업과 청년 당사자에게 그곳에 가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그것도 고작 1-2년 동안.

그런데 청년들은 가기 싫다. 왜? 이미 대학까지 나왔는데 기름때 묻고 힘들고, 저임금에 비젼 없는 그런 노무직에 어떻게 가란 말인가? 그 결과 실업은 높아지고 대책은 없다.

끝이 안 보인다. 절망이다. 이것이 청년들의 일자리 현상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대안이 없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혁명(2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할 때, 이것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구 한말이 그랬다. 2차 산업혁명에서 디지털 혁명을 수용하고, 그를 적극 활용 못하면, 그 사회는 낙후되고 쇠락할 수밖에 없다.

3차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의 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그런 상황이다.

디지털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교육, 금융, 의료, 그린 뉴딜, 바이오를 디지털로 결합시키는 깊은 이해와 선각적 준비 없이는 희망이 없다.

이명박 시대에 교육정책이 있었다. ‘어린쥐’ 발음으로 영어 파동이 있었다. 교육의 세계화를 외치며 영어교육의 전면화로 영어 마을, 영어 교육을 유치원, 초∙중등에 대대적으로 확산하려던 것이 코미디 교육 정책이었다. 예를 들면 의료정책에서 원격의료 소셜 넷트워킹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예외적 의료개입, 셀프서비스진단, 자가관리 및 정보채팅 접근법 등 의료의 성장정책을 디지털 AI를 과감히 도입 할 때, 다시 말해서 사회적 기반을 디지털 혁명으로 재무장해야만, 그리고 이에 걸맞는 대학생 인력을 고도의 IT교육 플랜으로 준비시킬 때 노동의 수요공급이 맞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을 것이다. 지난하고 어렵지만 연구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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