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를 걷는다, 순국선열의 혼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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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를 걷는다, 순국선열의 혼과 마주한다
  • 허회숙 시민기자
  • 승인 2022.02.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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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기획]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서
우리는 훗날 후손들에게 "이 위기의 시대를 이렇게 헤쳐 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2월과 3월에는 유난히 애국지사들이 순국하신 날이 많다.

1910년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또 히로부미 저격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며 3월 26일은 안중근의사가 뤼순 감옥의 형장에서 순국한 날이다.

1919년 3월 1일은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고자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온 국민들이 떨쳐 일어나 만세운동을 벌인 3.1절이다.

독립운동가요 역사학자이며 사상가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이 독립전쟁의 거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분투하시다가 8년간 뤼순 감옥에 갇혀 순국하신 날도 1936년 2월 21일이다.

매서운 추위 속에 오랫동안 별러오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 나섰다.

3호선 지하철 독립문역 4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독립문과 순국선열추념탑이 있는 독립공원이다.

독립문은 1896년 서재필 박사가 중심이 된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웠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서재필이 스케치했고,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를 했다.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여 세워진 온 국민의 독립 염원이 담긴 건축물이다.

1897년 완공된 독립문의 원래 자리는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70m 떨어진 곳이었다.

1979년 성산대로를 만들면서 원래 자리에서 북서쪽인 이 곳으로 옮겨졌고 예전 자리에는 독립문 자리라는 표지판을 묻어 놓았다.

공원 광장 중앙에는 서재필 박사가 하늘을 향해 독립신문을 불끈 쥐고 있는 동상이 서있다.

그 뒤로 유관순 열사상과 독립선언기념탑이 있다.  

그 앞에 독립과 민주의 길을 만들어 생존 독립 지사 30분의 족적을 새겨 놓았다. 

그 뒤로 순국선열 추모탑이 서있다. 양 벽면의 좌측에는 항일의병 무장 상, 윤봉길, 이봉창 의사 의거 상, 독립군 의병 순국선열 처형 상, 유관순 열사 만세운동 상 등이 부조되어 있다. 우측에는 3.1독립만세 상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상, 순국선열 의병 체포처형 상, 청산리 전투 상이 부조되어 있다.

광장의 왼편에는 독립관이 있다. 독립관은 원래 청나라 사신이 머무르던 모화관이라는 건물이 있던 곳인데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면서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활동 장소로 사용했었다. 지금은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셔두고 참배를 할 수 있는 장소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수많은 애국 영령들을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감사의 묵념을 올렸다. 

독립공원 길을 따라 뒤쪽으로 주욱 가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나타난다.(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02- 360-8590-1)

이 곳은 조선 독립을 부르짖던 이들을 가두고 고문하던 곳이다.

당시 이 일대는 의주와 한양 사이를 오가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많은 이들을 위협하기 위한 상징으로 일제는 이 위치에 감옥을 지었다고 한다.

1908년 10월에 문을 열어 1987년 11월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된 서대문형무소는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뒤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고려하여 보안과 청사, 제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 등을 남겨 두고 나머지 시설을 모두 철거 후 서대문 구에서 현장을 보존하였다.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을 배울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1995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11월 개관하였다.

입장료는 어른은 3,000원 청소년은 1,500원이나 경로우대 자는 무료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이며 겨울철 3개월은 오후 5시까지,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후 6시까지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전시관을 마주할 수 있는데 일제의 만행부터 여러 독립운동과 투쟁의 역사가 시간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취조실에는 일제가 고문을 가하던 장면이 마네킹으로 재현되어 있다. 물고문, 손톱 아래찌르기, 못이 나와있는 통에 넣고 발로차기 등 끔찍한 고문기구와 종류도 가지가지다.

벽관고문이라고 하여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움직일 수 없게 경직되어 서 있는 고문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관사와 고문실로 쓰이던 역사전시관에는 영상자료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재현한 매직비전, 형무소 역사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 독방 등 옥중 생활실 등이 있다.

사형장 옆에 시신을 몰래 버리기 위해 만든 시구문이 복원되어 있다.

그 외 야외의 사형장과 한센인 옥사, 공작사 등의 건물을 둘러볼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관람하는 1시간 30여분 동안 맵게 추운 날씨였음에도 추위를 잊었다.

냉기 가득찬 독방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오로지 빼앗긴 조국을 되찾으려는 열망으로 버티다가 끝내 순국하신 수많은 의사, 열사, 지사들의 영령 앞에서 과연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며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유관순 열사는 18세에 이 곳 서대문형무소에서, 안중근 의사는 31세에 먼 이국 땅 뤼순 감옥의 사형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셨다.  

내가 지금 이렇게 복지국가 대한민국에서 편안하게 살게 된 것도 모두 애국 선열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요즈음 대한민국 국민들은 무엇을 위하여 헌신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훗날 후손들에게 우리는 이 위기의 시기를 이렇게 슬기롭게 헤쳐왔노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나와 찬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길게 심호흡을 해 보지만 답답한 가슴은 시원해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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