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주안동 마술가게 '수상한 만물상'
<수상한 만물상>. 마술체험, 공연 등을 하는 공간인데 이름이 묘~하다. 어떤 곳일지 궁금해하며 버스에서 내렸는데 두 해 전, 미추홀구 주안8동 제물포여중 학생들과 사진 산책으로 둘러보았던 학교 뒤편 언덕길 위 건물이었다. 그 산책 중에는 문화공간 비슷한 건 학교 앞 작은 도서관이 전부였는데... 그때는 왜 못알아 보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이 지역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수상한 만물상>은 문이 열려있었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크고 작은 오락기가 몇 대 있고, 다양한 트럼프 카드와 호두까기인형, 빈티지한 인형들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다. 진열대 뒤편으로 잔뜩 쌓여있는 물건 박스들이 보이고, 주민들이 오고가는 문화공간으로 보기에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빔프로젝트도 보이고, 노래방 기계도 있다.
묘한 분위기다. 약속시간이 좀 넘어서 잠시 나갔으려니 하며 구경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 주민이 들어와서 주인을 찾는다. 왜 오셨어요? 물으니 ‘아령’을 사러 왔단다. ‘아령도 팔아요?’ ‘몰라요. 만물상이니까 있을수도 있고... 모르죠 뭐.’ ‘자주 오세요?’ ‘아뇨, 가끔 들러요’ 하더니 그냥 가신다. 그러고 몇 분 후 꾸벅 인사를 하며 한 청년이 공간으로 들어섰다.
"저, 할아버지처럼 열심히 살고 있어요~"
첫 인사에 건넨 말이었다. 배다리에서 사진관과 갤러리를 한다는 필자의 소개에 붙혀 요즘 자주 가는 곳이 신포동과 배다리고, 그런 정서가 좋다며 한 말 끝에 이어진 것이 할아버지 이야기였다 신포동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살았고, 아버지 사업이 실패한 후 용현동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어서 뭘 해도 돈이 되던 시절 온갖 아이디어로 다양한 일을 하시며 열심히 사셨던 할아버지는 신포동에서 이름 꽤나 날리셨던 분이었는데, 당신처럼 다양한 일을 벌이며 살고 있다고 17년차 사업가로 자신을 소개했다.
문화공간과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인천in에 담고자 왔다고 다시 소개하니,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 마술을 했어요~ 학교에서 마술하는 애로 꽤 유명했죠. 마술도구를 구하는데 꽤 비쌌어요. 마술용 빨대 하나가 만원이나 하는 걸 보고 마술도구 장사를 해보게 됐고 그게 지금까지 ....“
아! 마술~, 맞다 마술가게
중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 판타지 영화들과 함께 마술이 꽤 인기를 누렸다. 자신 시대의 친구들은 대부분 이은결의 마술을 접하며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그는 공부보다 마술이 좋았고, 친구들이 pc방에 갈 때 용산전자상가, 청계천 등 서울에 스펀지거리, 인쇄거리 하는 거리거리를 다니며 놀았다.
대학생 시절 만났던 지인의 권유로 작은 사무실을 얻은 것을 시작으로 마술도구 등을 구해 팔기도 했고, ‘마술공연, 마술수업, 공연교육’ 등을 하다가 마술학원 인가를 내서 학원 운영과 함께 ‘방과 후 수업’도 했다. ‘마술공연’을 계속하기 위해 병행했던 장사가 어느 사이에 중심이 되었다. 학원은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아 정리하면서 부평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청년창업 활동으로 부평지하상가 청년몰 1호 사업가로 <마술가게>를 차렸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아 홍보관처럼 활용했고, 부흥오거리 인근 지하공간에 자리를 잡고 <하하 마술이벤트>를 차려서 6년여 활동을 했다. 그 기간 지인의 제안으로 실내동물원 사업을 했다. 꽤 잘나가서 중국까지 진출했는데 코로나로 사업을 접게 되면서 부평공간도 정리하고 지난해 이곳으로 이전했다.
"마술은 누구나 좋아하니까요~"
마술도구 사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물건을 구해다 파는 유통업이 주업이 되었지만 마술을 하며 만났던 많은 이들과의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나 보고, SNS나 하며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도 하긴 했는데 사업하다가 온라인을 다 접었어요’ 라는 말을 듣고 그의 다양한 활동을 sns나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동네 학교 앞 문방구 같은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들러 놀다가 가시고, 아이들이 하교 길에 들어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놀다가는 공간이요. 이 동네 그런 공간이 거의 없거든요."
뭔가 새로운 걸 하게 되면 즐거워요. 문화예술 같은 게 그런 즐거움을 줄까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얻게 되면서 공간이 많이 남아요. 처음 1층으로 공간을 마련하고 <수상한 만물상>이라 붙혀 놓으니 다양한 분들이 궁금해 하며 들렀다 가요. 마술도구들을 판매하니까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오는 경우도 많죠."
"코로나를 격으며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많이 남는 공간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미추홀구 ‘온마을학교’도 신청했는데 선정됐고, ‘문화오아시스’도 선정됐어요. 지난주부터 온마을학교 신나는 마술체험 마술수업 시작했는데 아이들도 퍽 좋아해요. 주변에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소소한 일자리도 줄 수 있어서 좋구요."
같이 만나서 노는 게 좋아요!!
"비슷한 또래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좋아요. 그래서 미추홀구 청년정책 네트워크 부회장, 중구 청년 네크워크 부회장도 맡았어요. 청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온라인에서 다양한 활동도 많지만 동네 거리에서, 작은 구멍가게 앞에서, 일상의 생활속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수상한 만물상>이 이 동네 살고 있는 주민, 학창시절 그 문방구, 분식점처럼 기억되면 좋겠어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온마을학교’나 ‘문화오아시스 ’사업을 하면서 그렇게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들러서 놀다가는 공간이요. 영화도 보고, 오락도 하고, .. 그곳에 이웃도 되고 든든한 백도 되는 ‘동네삼촌’이 되고 싶어요."
수상한 만물상?
한 시간 반에 걸쳐 김대윤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전과 실패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업가 특유의 유연함과 능숙함도 있었다. ‘마술’이라는 상업적인 문화를 모태로 성장한 그는 경험한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여전히 많아 보였다. 그가 굳이 설명하지 않았어도 ‘수상한 만물상’이 주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일(사업, 일상)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울려지길 바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선을 긋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기 위해서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해보려는 노력들이 건강한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 그야말로 일이 되면 싫어진다고 한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문화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때 생활 속에 문화예술은 성장하고 시민들의 인식도 함께 성장하게 된다는 생각도 다시 되새김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