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을 떠돌던 수수께끼 인물, 채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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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을 떠돌던 수수께끼 인물, 채동지
  • 김정아
  • 승인 2022.08.2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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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인천 설화]
(8) 개항장 걸인 채동지

더위와 습한 공기 탓에 마스크 속으로 땀이 흐른다. 우리는 코로나에서 언제쯤 해방될까.

아무리 위드코로나라고 하지만 감염의 위험과 불안감, 불편함이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게다가 115년만의 폭우로 온세상을 뒤숭숭하게 했던 8월이다. 이럴 때, 마블 영화 속 슈퍼 히어로처럼 세상을 구해줄 이인(異人)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그래서 찾아본 인천 개항장을 떠돌던 기이한 인물 채동지(蔡同知)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바램I_31.0x20.5cm_종이 위 채색_2022
바램I_31.0x20.5cm_종이 위 채색_2022

채동지는 거구에 아주 뚱뚱했던 사람으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이 인물이 옛 인천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는 35세에 인천에 와서 환갑, 진갑을 지내고 웃터골 부근 현 인천여자중학교 못미쳐 길가에서 객사했다고 한다. 아마 쉰 이상 된 향토인은 유소년 시절에 이 거인을 날마다 거리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개건너(서곶)에서 왔다고 하며, 성은 채 가요, 이름은 그저 동지라 하고, 누구나 그를 채동지라고 불렀다."(인천석금)

채동지는 고일 선생의 '인천석금'에 등장하는 인물로 '한국구전'에 초월적 인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는 양쪽 겨드랑이에 큰 비늘을 달고 태어났으나 부모가 후한이 두려워 비늘을 떼어버리고 길렀다. 서너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않았고 키가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갔다고 한다. 이 아이의 성장에 관한 내력은 전혀 알 수 없으나 35세에 인천에 와서 개항장 거리를 헤매며 걸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채동지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으로 불려지게 된 이유는 그의 침, 타액에 있었다. 그의 침이 영험해서 만병을 낫게 했다고 「인천석금」은 쓰고 있다. 그의 침을 과자에 묻혀 먹으면 '백병통치'라고 하였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아프면 음식을 가져다가 채동지의 침을 묻혀 아이들에게 먹이면 병이 나았고, 부녀자들이 그의 침을 구하려 다니며, 채동지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바램II_31.0x20.5cm_종이 위 채색_2022
바램II_31.0x20.5cm_종이 위 채색_2022

그는 세속과 명리를 떠나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혼자 살다 웃터골 길가에서 객사했다고 한다. 맨발로 세상을 헤매던 그가 내리예배당 어귀에서 서더리 국과 막걸리를 팔던 인심 좋은 술집 주인 배씨의 따듯한 배려 덕분에 그곳의 출입이 잦았다는데, 그의 영혼은 아직도 개항장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지 않을까.

 

바램Ⅲ_31.0x20.5cm_종이 위 채색_2022
바램Ⅲ_31.0x20.5cm_종이 위 채색_2022

코로나를 견디며 쌓아온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세월이 되어가고 있다. 다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감염과 무서운 폭우 탓에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했던 그 일상이 더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믿거나 말거나 설화이지만 이인으로 불리던 채동지의 이야기가 이 시대에 위로의 시간을 가져다주길 바래본다.

채동지 이야기는 「윤치호 일기」(1920), 「개벽」(1924), 「인천석금」(1955), 동아일보(1959), 「향토인천」(1988), 「인천지방향토사담」(1990)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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