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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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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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8.1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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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아내가 나이 60이 되었을 때 불치병이 걸리자 한 살 더 많은 남편은 아내를 보살피고자 직장을 그만 두고 아내를 간병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24년을 보살피다 2007년 9월 22일 그는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하였다.

당시 아내 나이는 83세, 그는 84세였다.

아내의 이름은 도린(그래서 D에게 보낸 편지라 하였다), 남자는 앙드레 고르.

아내를 보살피던 막바지에 그는 아내에게 편지를 하나 쓴다. 그 편지는 장장 80페이지에 달한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이유는 이렇다.

"내 생각에는 어릴 때 좋은 아버지를 두었던 사람이 나중에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아버지가 되기 어렵다 …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도린이 아이에게 쏟는 사랑을 질투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이 편지는 둘이 어떻게 처음 만났고 어떻게 서로 사랑했으며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자세하게 쓰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말하고 있다.

남자의 벌이가 그리 대단하지 않았음에도 여자는 남자를 믿고 글쓰는 것을 격려하였으며 생활전선에서 가정경제를 이끌었다. 여기까지면 대기만성형 남편을 여자가 거두어주었으리라 생각된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남자는 여자의 격려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그걸 기다리지 못하는 여자도 많지만….

남자는 여자 격려에 힘입고 여자 사랑에 안정을 찾아 사르트르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경제 전문기자이자 탐사취재 대가로 1960~70년대 프랑스와 유럽, 미국을 아우르는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대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은 그 만큼 아내를 대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자신을 자신이게끔 만들어주는 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준 게 바로 아내라고 토로한다.

그래서 이 편지는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시작한다.

마지막은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로 끝을 맺는다.

흔히 하는 말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이곳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통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이 편지의 시작과 끝 내용은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지만 그 중간 내용은 남자가 여자에게 받은 구체적인 격려와 사랑의 내용, 여자의 사랑을 잘 몰라보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 등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서 철 든다고 하는데, 바로 이 부부를 말하는 거 같기도 한 것이 위 편지내용 중간부분을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문필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게 남자의 자서전인데 그 자서전에 아내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고 몇줄로 간단하게 집어넣은 그 몇줄도 다시 부정하는 듯한 표현을 하였기에 그렇다.

이 편지를 통해 그것을 반성하면서 자신이 이렇게 된 게 모두 아내의 공이라는 걸 죽음 앞에서 편지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사랑 앞에서 여자는 위대하고 남자들은 철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그것을 깨닫고 아내를 24년간이나 간병하면서 60세 이후 삶을 온전히 아내에게 바친 남자는 그래도 여자가 사랑할 만한  가치는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시대에 도린이 사랑할 앙드레 고르 같은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여자들이여 혼자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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