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충격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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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충격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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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8.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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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긴팔 원숭이가 있다. 나무 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반 원숭이 팔로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원활하게 건너다니기 어렵고 먹이를 취하기가 어려워 팔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진화'의 결과로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많은 동물과 식물 등 지구상의 생명체는 자기 존재의 유지와 번식을 위해 그 존재의 색을 바꾸거나 존재의 일부를 변형하여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가.

저기 멀리 있는 물건을 잡기 위해서 팔을 늘릴 것인가?

냄새를 잘 맡기 위해서 코끼리처럼 코를 길게 할 것인가?

나무를 잘 자르기 위해 손을 도끼처럼 연마할 것인가?

인간은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은 신체의 일부분을 변형하지 않았다.

인간은 대신 도구를 사용하여 멀리 있는 물건을 잡거나 나무를 자르기 위해서 도끼를 만들었다.

이렇게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고고학적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여 약 5만년 전에 지금의 신체형상을 갖추고 난 후 '언어'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도구를 사용하는 '문명'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은 진화를 몸이 아니라 외부를 인간에 맞게 변형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옷은 인간의 확장된 피부, 바퀴는 확장된 발, 카메라와 망원경은 확장된 눈이라 할 수 있다.요리는 보조 위장 역할을 한다. 아니 요리는 이빨과 턱 근육이 더 작아질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인공 기관'이다.

이러한 인간의 발명품과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모든 기술과 기술적 지식전체를 저자는  '테크늄'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 이유는 이 테크늄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의지와 선택과는 별도로 자기 스스로 변화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전화나 전기, 미적분학이나 자동차와 비행기 등 인간이 만든 모든 발견과 발명품들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인 것이 전혀 없이, 또는 서로 연관되거나 상호 도움도 없이 각각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독자적으로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사례가 아주 흔한 예를 들면서 기술의 발전, 즉 테크늄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말한다.  

"철도와 전기 모터를 생각할 때, 전차가 등장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닐까? 동등한 발명이 동시에 독자적으로 발견되는 사례가 흔하다는 것은 기술의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와 같은 방식으로 수렴됨을 시사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입증을 위해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테크늄을 시원세균, 세균, 원생생물, 곰팡이, 식물, 동물 등 여섯 가지 생물계에 이은 일곱 번째 생물계라고 규정한다. 이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의지와 선택으로만 제어되지 않고 그 자체 발전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테크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원자력 힘을 발견한 이후 인간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원자폭탄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원자력 발전 사이에서 계속 긴장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특히 현대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권력자가 국민 모두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행되어 '빅 브러더' 출현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가능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술 자체가 오히려 인간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저자가 말하는 테크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삶은 기술이 많을수록 좋다는 관점과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관점, 두 가치관 사이 심각하고도 끊임없는 긴장에 사로잡혀 있다"라며 전자의 관점을 대표하는 두 사례를 든다.

하나는 일체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자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미시파의 생활방식과 또 하나는 기술자들에게 소포폭탄 공격을 통해 현대 기술세계를 끝내자는 주장을 한 '유너버머'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이들이 잘못된 관점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술에 대하여 갖는 이들의 관점은 그 자체로 타당하며 일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자동차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하여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듯이 기술의 발전은 그 자체로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불가피성이 있다고 한다.

저자의 말은 이렇다.

"역사 대부분 순간에 대다수 사람은 풍요로운 문명에서 축적되고 있는 가능성의 더미가 사람들을 더 낫게 만든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문명과 기술을 만드는 이유이다."

따라서 인간은 기술의 자기진화를 삶에 더욱 풍요롭고 행복함을 더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조율하고 테크늄과 함께 더불어서 살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이는 인간 역사가 끝이 보이지 않는 진보의 길을 가는 증거라고 한다.

이 책은 진화에 관한 다양한 입장과 사례를 통해 테크늄의 진화를 대비하여 설명하면서 인간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는 기술을 잘 다독이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일면 타당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지금 우리에게 아미시파처럼 전기 없는 생활, 자동차 없는 생활을 하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쇄술의 발전을 부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문제는 저자의 주장처럼 진화하는 기술 자체가 아니고 그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조직체, 즉 정치체제가 문제이다. 원자력에 대한 결정권을 지닌 권력자 내지 원자력을 이용하여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의 문제가 아닐까?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본은 생명과학을 통하여 유전자조작식품을 만들고 의학과 의약품의 개발에 돈이 되지 않으면 전혀 개발하지 않는 것을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현재의 지구인구를 충분히 먹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0억이 넘는 인구가 굶주림에 고통을 받고 죽어가는 현실은 식량생산기술의 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분배하는 정치경제적 구조가 문제라는 것을 저자는 언급하고 있지 않는다.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서는 말라리아 예방약과 모기장에 몇 백억원이면 충분한데도 이것이 기술이 부족해서일까.

결국 기술, 아니 저자가 말하는 테크늄의 발전은 그것을 잘 관리하고 선택하고 '살살 구슬려서'-저자의 표현-함께 인간이 테크늄과 더불어서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 노력하자는 결론으로는 너무 빈약하게 보인다.

문제는 이 테크늄이 어떻게 정치경제적 관계를 통해 인간의 삶이 규정되고, 특히 자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대에 테크늄과 자본의 관계를 풀어 헤치는 것이 더욱 저자가 말하는 제7계인 테크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잘 해석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 삶에 아무리 유용해도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개발되지 않는 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이 있어도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보급되지 않거나, 설사 보급되더라도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보급되는 기술은 기술 자체 불합리가 아니라 인간 사회구조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타당하지 않을까.

유나바머가 주장한 현대문명으로 인한 인간의 예속적 삶을 비판한 것을 옳았다고 하면서 그래도 기술을 잘 관리하자고 하는 주장은 너무 평이하다.

다만 기술이 갖는 자체 발전에 대한 관점이나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독특하게 해석한 것은 기술에 대한 시야를 넓히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다만 거기까지.

기술의 충격/케빈 켈리/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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