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인문학의 숙제 남긴, '소남촌인(邵南村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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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문학의 숙제 남긴, '소남촌인(邵南村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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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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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 인문학 12강을 듣다]
(2) 소남이 끌어올린 인천의 인문학
- 허경진 연세대 객원교수
[인천in]이 소남학회, 계양도서관과 함께 5월10일부터 9월20일까지 12차례에 걸쳐 계양도서관이 진행하는 '길위의 인문학' - 소남 윤동규를 탐구하는 인문학 강좌를 요약해 연재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수제자로 성호학파를 인천으로 확산시킨 소남을 통해 인천의 역사와 정신적 문화유산을 함께 탐구하며 인천 역사를 지평을 넓혀본다. 두번째 순서는 연세대 허경진 객원교수의 '소남이 끌어올린 인천의 인문학'이다.

 

 

인천의 역사는 고구려 때에 비류가 건국했다가 실패한 미추홀이고, 고려 때 왕비를 배출한 외가가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인물이 없었다고 알려져 왔다. 인천의 역사를 종종 1883년 개항 때부터 소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최고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 다음으로 많은 저술(142종 326책과 3,886수의 시)을 남긴 이형상이 인천 석바위 출신이다. 여기에 다산이 사숙한 스승 성호 이익의 맏제자이자 성호학파의 좌장인 소남 윤동규가 인천 남동구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소남촌인(邵南村人)이라는 호를 평생 즐겨 썼으며, 세상을 떠날 때에 명정에 ‘소남촌인’이라 써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소성(인천) 남촌 사람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남촌(인천 남동구)이 표기된 대동여지도
남촌(인천 남동구)이 표기된 대동여지도

 

계양도서관이 진행하는 '길위의 인문학' - 소남 윤동규 2번째 강좌가 17일 오후 7시 허경진 연세대 객원교수의 강의로 열렸다.

소남 윤동규는 남촌(남동구 도림동)에 살면서 안산에 살던 성호 이익의 집에 찾아다니며 배웠고, 성호의 집에서 고개 넘어에 살던 순암 안정복과 교류하면서 성호학파의 외연을 인천과 광주로 넓혔다. 성호의 조카인 이병휴가 성호의 유고를 가지고 충청도 예산으로 내려가면서 성호학파의 외연이 충청도까지 넓어졌고, 안정복의 재전제자인 성재 허전이 김해부사로 부임하여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갖춰졌는데, 그 한가운데에 윤동규가 있었다.

성호학파의 네트워크 한가운데에 윤동규가 있었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의 종손이 여러 차례 이사하면서도 소중하게 간직하였던 선조의 유물 가운데 성호학파의 친필 간찰이 천여 통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성호선생의 친필 편지가 221통이나 된다. 『성호전집』에는 이 가운데 56통만 실려 있으니, 165통이 예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성호선생의 친필편지이다. 『성호기념관 소장유물명품선』에 성호 간찰이 8통만 실려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윤동규 종가 유물들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사색당파 가운데 남인들의 계보를 정리한 『남보(南譜)』에 인천에 살던 파평윤씨 계보가 실려 있는데, 윤동규의 고조인 윤상전부터 시작된다. 윤상전의 묘가 인천 도림동에 있고, 지금도 그의 13대손들이 도림동에 살고 있으니 윤동규의 집안은 인천에 400년 살아온 토박이이다.

남인(南人) 명문을 소개한 남보(南譜)
남인(南人) 명문을 소개한 남보(南譜)

 

소남 종가에는 문집에 실리지 않은 책과 기록들도 많다. 『논어질서(論語疾書)』는 성호선생이 논어에 대한 의견이 생각날 때마다 빨리 써서 만든 책이다. 소남 종가 책에는 표시가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소남이 의심나는 부분에 표시를 해놓고 성호에게 계속 질문하였으며 성호는 제자 소남을 설득하거나 그의 말을 받아들여 자기 책을 고쳤다.

효종, 숙종 때 정권을 잡은 노론의 막강한 스승 송시열의 제자들은 선생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도, 말도 못했다. 틀렸다고 생각한 사람이 갈라져 나간게 소론 집안(윤증)이다. 결국 원수가 되어 100년 동안 싸웠다. 성호는 스스로 언제라도 질문하라고 했고, 틀린 게 있으면 틀렸다고 말하라 했으며, 그렇다면 들어보고 내 생각을 바꾸겠다고 했다. 질서(疾書)는 '언제라도 고칠수 있는 가르침'을 뜻하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성호학파를 살아남게 하고, 정약용 등 후대 많은 학자들을 불러모으게 한 동인이다.

論語疾書(우측이 소남이 적은 의문사항 표기)
論語疾書(우측에 소남이 의문사항의 종류에 따라 표기를 설명했다)

 

인천에 역사가 없다고 아쉬워할 것이 아니다. 이삼백년 전 책력 20여권 속에 쓰여진 일기, 천여 통의 성호학파 친필 편지, 윤동규의 아버지부터 6대손에 이르기까지 과거시험장에서 작성했던 수많은 시권, 20여 장의 지도, 문집 13권을 비롯한 방대한 저술들, 미처 검토할 시간이 없어서 유물번호 ‘0365 문서일괄’이라는 임시 명칭으로 묶여진 문서 120종, ‘0368 제문일괄’이라는 뭉치들을 열어서 성호학파 네트워크를 정리하고 인천의 인문학을 몇 백년 끌어올리는 것이 인천시민들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문서일괄 - 소남이 우리에 남긴 과제
문서일괄 
문서일괄 - 소남이 우리에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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