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으로 치루어진, '스승의 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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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으로 치루어진, '스승의 날' 행사
  • 허회숙
  • 승인 2023.05.2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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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허회숙 박사 / 인하대 교육학과

 

5월 20일(토) 저녁 6시, 25명의 제자들이 송도 M아파트 현관 앞에 모여 들었다. 모두 박사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지난 2월 25일 정년을 맞은 박영신 교수(인하대 교육학과)를 위해 평상시대로 시내 조용한 곳에서 조촐한 스승의 날 행사를 갖고자 했다.

그러나 스승은 이번에는 '제자의 날'이라 명명하며 스승의 댁으로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12층 교수님 댁 앞 현관에 모인 제자들은 나중에 도착하는 분들의 도착을 기다렸다. 모두 함께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동안 웃고 떠들다가 옆집에 소음 공해를 끼칠까 봐 서로 서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쉬잇'하며 주의를 주고는 그 모습에 오히려 더 크게 깔깔대며 웃는 모습들이 영락없는 학창 시절 모습들이다.

 

교수님과 교수님의 어머님이 환한 미소로 문을 열어 주어 실내로 들어선 순간, 맞은 편 방 한 칸이 마치 슈퍼를 몽땅 옮겨 온 듯, 갖가지 후식과 음료로 가득하다.

넓은 거실 3개의 상에 그득하게 차려진 산해진미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는다.

 

우선 제자들이 어머님과 교수님께 큰 절을 드리는 것으로 스승의날 행사를 시작했다. 큰 절 인사를 올린 후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며 보니 최중숙 박사를 비롯한 몇몇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는다.

 

참석하지 못한 김정실 박사의 편지 글로 제자들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감사 케잌의 촛불을 끄는 것으로 조촐한 ‘스승의 날’ 행사는 끝을 맺었다.

이어서 산해진미를 주제로 ‘제자의 날’ 행사가 시작된다. 

교수님은 갈비를 굽느라 여념이 없는 속에 필자를 비롯한 제자들은 생선회와 갈비와 영양밥과 도토리 묵 무침에 취해 정신이 없다.

어머님과 박교수님은 우리와 함께 식사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챙기신다.

구십이 넘으신 어머님께서 저녁 6시부터 밤 10시 30분 행사가 끝날 때까지 저녁도 들지 않으신 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교수님의 한결같은 열정과 정성과 인내의 근원이 어머님이셨음을 문득 깨닫는다.

며칠 전부터 교수님과 함께 시장도 보시고, 마트에서 카터의 짐도 지키시고, 오늘은 시간에 쫒기는 딸의 모습에 젋은 시절의 실력을 발휘해 묵무침에 넣을 양파를

'탁탁탁' 썰으셨다는 말씀을 듣고, 묵무침이 그리도 상큼하고 맛이 있었던 까닭은 새삼 알게 되었다.

식사 후, 이제 10년 전 타임캡슐이 개봉되는 시간이다. 뭘까... 궁금증이 부풀어 오른다.

오늘 개봉하는 타임캡슐이 바로 10년 전에 45명의 제자를 학익동 신동아 아파트에 초대하시고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

어떻게 10년 만에 다시 제자 30여명을 이 아파트로 초대하실 수 있었을까? 너무도 기막힌 절묘함에 전율이 느껴지고, 그 때의 이름 몇몇이 사라진 것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타임캡슐 개봉과 함께 윤영진 대장의 산티아고 길 순례 보고가 진행됐다. 산티아고 순례 기념 뺏지를 선물로 받으며 상상속에서나마 산티아고 길을 순례하며 느끼는 힐링과 깨달음의 감격을 느껴본다.   

끝으로 박교수님이 수십만원어치 갈비와 소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 오늘 아침 보니 살짝 맛이 가서 버리셔야 했고, 역시 수십 만원을 들여 산 한국산 표고버섯으

로 만든 표고버섯 볶음 역시 맛이 변해 눈물을 머금고 버리셨다고 말하시며 내년부터는 5월 초에 이런 행사를 갖겠다고 하신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내년부터는 교수님과 어머님을 함께 모시고 제자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제자와 스승의 날’ 행사가 되어야 하리라 결심한다.

김세용 회장이 준비해온 싱싱한 과일, 신미자 소장의 솜씨 좋은 식혜로 만족스러운 후식을 하고, 정갑순 총회장의 감사 인사를 끝으로 제자의 날 행사가 끝났다. 

김정희 소장이 마련한 따끈한 떡과 손주연 총무가 보낸 맛난 과자, 거기에 오늘 남은 음식을 봉지봉지 싸들고  밤 10시 30분 교수님 댁을 나선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누우니 밤 12시가 넘었건만 교수님과 어머님의 뜨거운 사랑과 선후배 박사들의 정성에 가슴이 뜨거워져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태곤 어머님께서 인자하신 표정으로 꼿꼿이 의자에서 4시간 이상을 버티시던 모습과 박교수님이 계속 손수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이시는 헌신적인 모습에서 한

국인의 토착심리인 ‘순수한 정'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박영신 교수님이 오늘 날까지 발휘하신 열정과 인내와 헌신의 힘은 아버님 박정헌옹의 선각자적인 정신세계와 더불어 어머님 정태곤님의 냉철한 판단력에서 비롯된

꼿꼿한 자세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긴다.

이번 ‘제자의 날’ 행사야 말로 박영신교수가 평생 천착해 온 ‘한국인의 토착심리’를 그대로 몸으로 실천하여 제자들에게 정년기념 특강을 해 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가 뿌리를 이룬 한국인의 토착심리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가르쳐 오신 박영신 교수님!

학계에서 공인된 상을 수상하신 몇 권의 명저들을 개척자적인 자세로 전 세계에 파급해 오신 박영신 교수님!

스승님의 깊은 뜻을 이어 받아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이 사회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며,

자정 가까운 시간에 5월의 어두운 거리를 달리는 제자들의 마음은 오히려 환하게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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