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와 산책하던, 내 마음의 고향 - 남산 아래 후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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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와 산책하던, 내 마음의 고향 - 남산 아래 후암동
  • 채진희
  • 승인 2023.05.2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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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채진희 / 인천in 시민기자
남산 아래 후암동 고지대, 해방촌
남산 아래 후암동 고지대, 해방촌

 

친정 부모님이 월남하셔서 둥지를 틀고 사셨던 곳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340번지다. 그곳이 제2의 고향이 되어 본적으로 등재되었다. 그 후 한남동에서 잠깐 살던 기억은 희미하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인 목사님이 계셨다. 그분이 우리 집을 사 주시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집 살 돈을 맡기셨는데 집을 사 주지 않아서 다투셨던 기억이 있다.

심성이 고우셨던 부모님은 목사님 집에서 더부살이하게 되었다. 안방도 아닌 마루에서 우리는 얼마 동안 살게 되었다. 유치원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나를 해방촌교회 유치원에 보내 주셨다.

이후 부모님께서는 남산 아랫 동네인 후암동으로 터전을 옮기셨고 나보다 큰 백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백구를 데리고 남산 산책을 할 때면 나는 백구가 이끄는 대로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녔다. 나는 몸집이 백구보다 훨씬 작았고 힘이 달렸을 텐데 버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철로 된 개 줄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왼쪽 가슴에 긴 손수건 위에 이름표를 달았다. 손수건 용도는 코를 닦을 때 쓰는 거였다. 대부분 여자애는 깔끔했다. 남자아이 중에 누런 코를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는 코를 손수건이 아닌 손등으로 닦았다. 그 남자아이의 별명은 코흘리개로 불렸었다. 공기놀이,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땅따먹기, 다방구 놀이를 하면서 나의 유년기는 풍성했다. 땅따먹기 놀이로 땅 부자가 되었던 그 시절에는 통행금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가끔 이불 빨래를 들고 남산에 올라가셔서 빨래하신 후 큰 바위에 이불을 탈탈 털어 너셨다. 이불이 마를 동안 나는 남산 도서관에 입장료 5원을 내고 들어가서 만화책, 동화책을 맘껏 읽었다. 빨래가 마르면 어머니의 사인과 함께 바위 위에 널어놓았던 이불 빨래를 걷어서 기분 좋게 남산에서 내려왔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할 때면 남자애들은 칼로 고무줄을 자르고 도망가는 악동이였다. 남자아이들을 잡으려고 뛰어가도 워낙 남자아이들이 재빠르기에 늘 놓쳤다. 저녁노을이 뉘엿뉘엿 산 너머로 도망갈 무렵이 되면 저녁 먹으라고 어머니께서 부르셨다. 어느새 어머니는 남산에서 빨래해 온 이불에 빳빳하게 풀을 메겨 놓으셨다. 그 이불 소리가 싸악 싸악하고 내 몸을 스치는 상쾌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의 그리움은 그날 밤에 덮고 잤던 이불이 생각날 때마다 간절히 피어오른다. 지금은 모든 빨래를 세탁기가 해주고 건조기가 말려주는 시대이다. 그 시절은 추억 속에 묻히고 그때의 정서를 따랄 갈 수 없으니 아쉽기도 하다.

1969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금의 어린이회관 건물이 그 시절에는 야외음악당이었다. 음악 시간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라는 동요를 배웠다. 토끼 두 마리가 둥근달 안에서 방아 찧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던 시절이 새롭다.

마음의 고향이 있어서, 추억할 장소가 있어서 행복하다. 아주 큰 꽃 시계도 그 옆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밤중에 야외음악당에서 아폴로 11호 발사를 생중계해줄 때 구경하러 갔었다. 빛바랜 추억이 되었지만, 종종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간 듯 생생하다. 우리가 아폴로호를 타고 여행하듯 기뻐했던 옛친구들 얼굴이 하늘바람 타고 내려온다. 신난 친구들 여러 명이 환호를 지르며 기뻐했다. 그 친구들도 하얀 눈 내린 머리를 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흑백으로 생중계해서 선명도는 떨어졌지만, 나의 어린 시절 중 최고의 기억으로 자리한다. 무뚝뚝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었기에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통행금지가 있었던 그 날 하루는 통행금지가 해제되어서 10시에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던 특별한 추억으로도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다. 언제든지 꺼내서 추억하고 싶은 마음의 고향인 후암동이 그립다.

한동안 우주 개발이 뜸했다. 세계가 요즘, 우주 개발에 다시 관심을 보인다. 그때는 생소했지만, 이번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민간우주개발 역량을 세계 속에 확인시켰다. 2023년 6월 25일 오후 624분에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한 누리호는 대한민국에서 순수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로 의미가 있다. 아폴로 11호는 인간이 우주선을 조종하며 달에 착륙했지만 누리호는 로봇 탐사선으로 자동 조종되어 미션의 목적과 수행방식은 다르다. 세계 7번째 위성 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아울러 우주 관광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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