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득석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문학아카데미 소통의 글쓰기반
지금의 부천역은 남부역과 북부역으로 되어 있다. 북부역 쪽이 유동 인구가 많고 빌딩과 상업시설도 남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70년대 초반은 남부에 본역사가 있었고 지금의 북부역 쪽은 거의 논과 밭이었다. 인구라야 5만도 안 되는 소읍이었다. 수하물을 내리려고 10~20분씩 정차를 하면 유명한 소사복숭아와 찐 계란, 찐 옥수수 등을 파는 행상인들로 열차 안은 시끌법석 했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이라는 말이 있다. 운이 7할이고 기가 3할이라는 의미로 운이 재주나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성실히 사는 사람 중에는 이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아 욕을 먹을 수도 있으나 나는 살아오면서 운칠기삼보다 더 한 운팔기이運八技二 의 삶을 여러 번 산 것 같다. 당시, 월 15일 일하고 15일은 비번으로 근무를 하던 나는 휴무인 날에 집에 있으면 지루하고 답답했다.
북부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2층 건물이 있었는데 1층은 항상 비어 있었다. 누군가 장사를 시작하면 2~3개월을 버티지 못 하고 그만두었다. 하루는 내가 그 앞을 지나가다보니 가게가 비어있어서 들어가 주인을 만났다. 전매청에서 근무하다 얼마 전에 정년퇴직을 했다는 그의 나이는 50대 후반 쯤 됐을까 싶은데 나에게 무엇을 할거냐고 물었다. 식당, 다방, 술집은 안 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엉겁결에 제과점은 어떤가요? 하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였다. 보증금 20만원에 기한은 3년으로 하자고 하면서 영업이 안 되어 중간에 고만둬도 보증금은 3년 후에 준다고 해서 계약을 했다. 생각지도 않게 제과점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안 지인들이 논바닥 한가운데에 무슨 제과점을 하냐고 주인에게 사정해서 보증금을 얼마라도 받고 고만두라고 하였다.
생각해 보니 제빵기술자 월급과 홀직원의 월급이 문제인데 그것은 내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나는 미혼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 뿐이어서 생활비는 별로 들지 않았다. 제과점 운영은 처음에 적자운영도 가능할 것 같아 그대로 하기로 하였다. 한 6개월 정도 적자를 내고 이후에는 현상유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뚜렷한 영업계획이 없었으므로 3~4개월 동안 적자운영을 했는데 예상보다 그 기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만 재고 빵이 문제였다. 가게 입구 쪽에 진열장을 만들어 놓고 빵을 종류별로 진열을 해야 되는데 손님들이 보기에 좋게 하려면 어느정도 수북히 진열해야 했다. 그런데 진열장이 문제였다. 냉장진열장이 없던 시대라 목수를 시켜 나무로 진열장을 짰다. 날씨가 더워지니까 진열장 안에서 빵이 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적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하루는 가게 앞에 군용트럭이 정차하더니 육군상사 1명 사병 4명이 내려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보자마자 빵납품을 해달라고 했다. 당시에 소사에는 30예비사단이 있었는데 이부대에는 R.O.T.C 훈련병들이 계속 들고나고 하면서 가족과 친지들의 면회가 매일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면회소에 납품을 해 달라는 것인데 정식 군납업자는 아니고 그 면회소의 책임자인 상사의 권한에 의해 면회소에만 납품을 하는 것이다. 매일 빵이 2~3백개씩 들어가니 이제 진열장에서 빵이 상할 염려도 없고 매상에 신경 쓸 필요도 없어졌다. 당시에 소사에는 조그마한 제과점이 다섯 군데 있었는데 대개가 영세한 곳이었다
얼마 후 오일쇼크가 일어났는데 석유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게 되었다. 제빵재료로 쓰는 설탕, 버터, 마가린. 쇼팅등 비용을 감내하기가 힘들어졌다. 소사에서 제과점을 하던 기존가게들이 휴업과 폐업을 하면서 나머지 가게들은 우리 가게에서 제빵을 구입해 팔기 시작했다. 소사뿐아니라 오류동쪽으로까지 영업이 확대되니 오일쇼크 덕분에 우리가게 매출은 더 늘어 나게 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것 중에 내가 잘 해서 된 것은 얼마나 되는가. 비와 바람 햇빛이 뒤섞이면서도 매년 가을걷이를 무사히 마치는 사람처럼 나 또한 주변 상황이 도와주어 희노애락 속에서도 이만큼 잘 살아온 것 아닌가. 운칠기삼보다 더 좋은 운이 팔 이요 재주가 이인 행운아가 아니었던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어 하늘을 향해 두 손이 공손이 모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