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 둥지 튼, 최초의 사립 미술도서관
상태바
강화에 둥지 튼, 최초의 사립 미술도서관
  • 김시언
  • 승인 2023.06.13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화이야기]
(23) 강화미술도서관

 

강화읍 신문길 44번길 9. 합일초등학교 정문 앞쪽에 강화미술도서관이 있다. 길을 오가면서 간판을 볼 때마다 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도서관이라면 모를까. 아니면 미술관이면 그나마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도서관도 아니고 미술관도 아닌 미술도서관이라니!

재작년, 강화미술도서관이 개관한 지 두 달쯤 됐을 때 머뭇거리며 찾았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화려했다. 책등으로 꽂힌 미술책에 눈길이 갔을 때는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마음에 드는 미술책을 덥석 꺼내서 예쁜 조명이 켜진 테이블에 앉아 온종일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용하고 한적한 강화에 정착하기로

최유진 관장은 20년 동안 굵직한 전시회를 주관한 큐레이터다. 언젠가 문을 열게 될 미술도서관을 꿈꾸면서 책과 작품을 모았다. 그는 책과 작품을 20년 동안 소장하면서 목적을 공유에 두고 큐레이터 일을 하면서도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남을 책과 작품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열심히 소장하면서 언젠가는 그것들을 공유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작가를 프로모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작가가 전시회를 통해 한 번 보여주면 끝이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작가를 프로모션하면 작가한테 참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강화였을까. 사실 최 관장은 베를린이나 카셀에서 미술도서관을 열고 싶었다. 이민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미술도서관을 열기에는 그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었다. 서울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이 없었다. 만약에 서울에서 미술도서관을 열었다면 지금처럼 차분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을 거라는 게 최 관장의 생각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한 곳이었다면, 그냥 와서 보고 구경하는 그야말로 전시장이 됐을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최 관장 부부는 어느 날 우연히 강화로 여행을 오게 됐는데, 그게 강화에 머물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서울에서 강화는 4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밤중에 찾은 강화는 무척 조용하고 멋졌다. 그게 계기가 돼서인지, 미술평론을 하는 남편은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이사를 가도 되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최 관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필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천천히 가자

강화미술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문을 연 사립미술도서관이다. 최 관장은 개인이 시작하는 최초의 미술도서관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데다, 처음이라는 사실에 어깨가 무거웠다. 무엇보다 미술도서관을 열 만큼 컨텐츠가 되나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 그래서 2021년 1월 20일에 강화미술도서관 문을 열었다.

그는 문을 열고서도 사람들이 과연 관심을 많이 보일까 궁금했다. 그것도 강화도에 열었으니 당분간은 개인 사무실 정도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일은 금방 찾아왔다. 전시 기획이나 책을 발간하는 마리앤미카엘로 수강생을 모집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온 것이다. 참고로, ‘마리앤미카엘’은 최 관장 부부의 영세명으로, 2018년에 이름을 합쳐서 전시기획을 해외에서 하거나 작품집을 발간하거나 강의할 때 프로모션할 때 쓰는 이름이다. 재원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곳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12강이나 되는데 금방 수강생이 차서 최 관장도 놀랐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강의인데 관심을 많이 보여서 감동받았다.

 

 

작가를 프로모션하는 데는 라이브러리가 최적

최 관장은 미술도서관을 찾는 분들이 책을 소중히 다루면서 보면 참 좋다. 그가 모은 책 한 권 한 권을 꺼내 들고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놓고 책을 보는 손님들, 그 손님들이 책을 보면서 감동하고 물어보면 감격스럽다. 그러한 순간들을 위해 그동안 책을 모았구나 싶고, 이런 게 보람이구나 싶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전시하고 소장한 작품을 설명할 수 있어 좋다. 전시장에서 설명했을 때보다 강도가 더 좋다. 작품을 연대별로 스타일별로 설명할 수도 있고, 설명을 열심히 듣는 분들한테 그저 고맙고 그러면서 책임감이 더 생겼다.

최 관장은 이 시대에 갤러리와 뮤지움에서는 작가가 알리고, 작가를 프로모션하는 곳은 라이브러리라고 생각한다. 전시회 때 작품집을 발간하면 그때뿐이지만, 도서관에 큐레이션한 작품집을 보내고 받으면 함께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를 프로모션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고, 아울러 책을 발간하는 일도 중요하다.

외국에는 지역명에 아트라이브러리를 쓴 곳이 많은데 그런 곳에 작품집을 보내면 자연스럽게 작가를 프로모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작가 작품집을 그런 데 보여줄 수 있으면 그쪽에서는 작품집을 보고 전시회를 기획하거나 프로모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보내오는 작품집을 보고 작가를 프로모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있는 수많은 아트라이브러리와 동등하게 어깨를 견주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

 

 

“미술도서관 열길 잘했다!”

외국에서는 아트라이브러리에 지원이 많다. 이른바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작은 서점과 출판사에 있는 양서를 소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좋은 책을 살 수 있는 재원을 지원하는 정책이 많다. 특히 독일이 잘 돼 있다.

강화미술도서관 입장료는 3000원이다. 최 관장은 3000원은 ‘소중하게 잘 봐달라’는 장치임을 강조했다. 65세 이상 노인과 어린이들한테는 입장료가 없다. 최 관장은 책을 소중히 다뤄주는 손님들이 무척 고맙다. 도판이 망가지지 않게 접지 않는 등 소중하게 다루는 마음이 무척 고맙다. 미술책은 도판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자칫 접거나 구기면 돌이킬 수 없다.

미술도서관을 연 지 3년째,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미술 강좌도 꾸준히 열고, 독서모임도 하고, 무엇보다도 작품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고 연다. 최 관장은 강화미술도서관이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편하게 찾는 곳,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곳이 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