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더 많이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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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더 많이 사랑하기
  • 유성숙
  • 승인 2023.09.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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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유성숙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인문학아카데미 소통의글쓰기반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딸

 

오늘 아침도 부지런히 식구들을 보내고 나서 어머니와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우리 모녀가 함께 가는 곳은 노인복지회관이다. 오전에 요가, 오후에 가요 교실, 그리고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는 발마사지 수업이 있는 날이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정해진 시간에 복지관 버스가 우리를 태우러 온다. 노인 건강은 한해가 다르다더니, 올해부터는 지팡이를 짚으시는데도 이젠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드시는 모양이다. 조금만 걸어도 숨찬 소리를 내신다.

30년이 넘게 서울에서 콩나물 공장을 해서 2남 4녀를 키우셨고 한증막을 지어서 81세까지 직접 경영했던 억척스런 또순이 사업가다. 소띠로 태어나 그야말로 소처럼 평생 일만 하셨다. 알뜰함이 몸에 배어서 밥알 하나도 함부로 버리는 것을 용납 못 하셨다. 베푸는 것을 좋아해서 손수 키운 상추며 고추, 각종 야채들을 이웃과 나누는 것도 즐기셨다. 자신에게는 지나치리만큼 엄격했지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품이어서 설사 안 좋은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에라~” 통크게 돌려서 생각하셨다.

어머니와 동갑이었던 아버지는 한증막을 완공하던 그 해, 65세의 나이에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셨다. 나이 들수록 추레하게 하고 다니면 안 된다며 셋째 여동생이 좋은 옷도 많이 사 드리는데 그건 아끼고 항상 세탁이 편한 옷을 즐겨 입으신다. 사치를 싫어하고, 절약이 습관이 되어서 옷이건 물건이건 쓰던 것을 함부로 버릴 줄 모르는 분이다. 이따금씩 동생이 와서 후줄근한 옷들을 몰래 치우고 가면 여지없이 찾으며 입을 만한 것을 없앴다고 속상해하신다.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어머니가 내 곁에 오신지 어느새 만 3년이 된다. 27년 된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어서 건강관리에 신경쓰며 잘 살아오셨지만, 자식들이 어머니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연세가 되었다. 이젠 나이 생각해서 일 좀 그만 하시라고 설득해서 오빠 내외에게 한증막 운영을 맡기고 본가를 나오게 되었다.

오시고 나서 1년은 잘 보냈는데 그 다음해 여름에 계단에서 넘어져서 오른 팔을 기브스 했고, 팔이 나을 무렵에는 다시 침대에서 넘어져 갈비뼈를 다쳤다. 어머니와 내가 한동안 고생이 많았어도 힘든 시간들 다 잘 넘기고 이젠 복지관도 다니게 되었다.

우리 집 아이들 둘은 다 직장에 나가고, 전업 주부인 나와 어머니는 뒤늦게 배움의 즐거움, 운동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공부란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해도 다 못한다는 걸 알고 어머니와 함께 하는 수업이어서 더 행복하다. 원래 내 나이로는 노인복지관을 이용할 수 없지만, 노인 혼자 다니다가 다칠까봐 염려스러워서 그러게 하다보니 복지관에서도 편의를 봐주게 된 것이다.

노인복지관은 만 60세 이상부터 이용 가능하다. 하지만 70대가 가장 많고, 80세 이상인 분들도 많다. 교육프로그램도 참 다양하다. 일어, 영어, 중국어, 사군자, 컴퓨터, 사교댄스…… 그 중 어머니가 하시는 과목은 얼마 안 되지만 가요교실, 민요, 기공체조, 발마사지 교실에 열심히 참가하신다.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어르신들이 종종 내게 질문을 하신다.

“딸이유? 며느리유?”

“딸인데요.”

“그러면 그렇지, 딸이니까 하는 거지” 하시면서 효녀 딸 두셔서 좋겠다고 나의 어머니를 부러워하신다. 어머니 덕분에 졸지에 효녀라는 말을 듣지만, 사실 그 말을 들을 정도로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심 부끄럽다.

주무시기 전에는 동화를 들려 드리는데 귀를 쫑긋하고 집중해서 들으신다. 딸에게 들은 이야기는 기억해 두었다가 더 재미있게 살을 붙여서 친구들에게 전해 주신다. 아직은 총기가 좋으신 어머니!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분들은 자기들은 무엇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딸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냐고 놀라워한다. 그러면 자랑스럽게 “머리에다 잘 저장해 놔야지 왜 잊어버리냐”며 뽐내신다.

어머니를 가까이 모시면서 내가 새삼 배우는 것도 많다. 어머니는 일을 만들어서 하시는 편이다. 쌀가루를 빻아다가 송편 만들기, 만두 빚기, 직접 키우신 돌나물을 뜯어 물김치 담그기……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았는데도 일하는 것이 싫지 않노라고 하신다. 86세의 연세에도 항상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배움의 열정이 대단하시다.

한 해가 다르게 늙어 가시는 어머니, 이제는 빨리 걷지도 못해 내가 보기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기만 하다. 우리 집에서 식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모습만 봐도 넘어질까 마음이 안 놓인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못 돌보시니까 그 대신에 우리 인간들에게 어머니란 존재를 보내주셨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앞으로 어머니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생색은 내지 않는 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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