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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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시대
  • 안태엽
  • 승인 2023.09.0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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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자유기고가

 

이번 여름휴가 중 '트레블 러브 엔 프렌드'(Travel love and Friend)라는 팀의 창작물 ‘스탠바이 미’를 듣고 놀랐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와 팀에 국한하지 않고 동, 서양을 막론하고 아프리카인까지 재능 있는 이른바 B급 뮤지션(Musician)을 선발하였다. 여섯 명 또는 여덟 명이 부드러운 어쿠스틱 악기를 편성하여 다양하고 독특한 창법으로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란한 악기 소리에 묻혀 노래하기보다는 무명 흑인 가수의 특유한 창법으로 보컬 코러스(쨈)를 넣어 색다른 곡을 만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흘러간 팝송을 두 소절, 혹은 네 소절씩 나누어 부르며 각기 자신만의 휠로 같은 곡을 마치 다른 곡처럼 편곡하여 하나의 독특한 곡을 탄생시켰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브라질, 아프리카, 미국, 인도, 아랍 등 여러 나라 가수들이 부르는 B급 가수들의 보이스 창법은 각기 다른 색깔이 들어 있어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들은 협업을 통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창작물을 만들어내었는데, 옛것을 재편곡하여 새로운 느낌의 음악을 생산하였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21세기 우리의 예술과 기업이 가야 할 문화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협력’만 잘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와서는 ‘협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의 음악을 통해서 알게 된다. 문화, 예술, 기업 모든 분야가 '협업'을 통한 결과물로 상품과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살아남는 시대가 온 것이다.

어떠한 곡을 정하면 멤버 각자가 자신의 파트를 연습한 다음 다시 합쳐서 합주하는 것이 ‘협력’이라면, 각기 자신의 파트를 연습한 다음, 연습한 곡에 대해서 또 다시 모여 멤버 각 사람의 생각을 교환해 가면서 어떤 창법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 보컬 코러스와 화음은 어떤 휠과 색깔을 입혀야 하는지 계획적으로 새로운 곡을 합동하여 만들어내는 것을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합창으로 할 때는 보이스 에드립을 언제 어떻게 넣어야 할지를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목표한 대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면 시너지 효과가 생겨 더 좋은 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곡 전체의 큰 흐름을 상상할 수 있어 더 좋은 사운드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똑같은 곡을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새로운 곡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주류 못지않게 그림을 잘 그리고, 노래에 재능 있는 아이돌이 많다. 이들은 비주류, B급 예술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2021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에서 B급 출신인 아이돌과 예술인들이 뜨겁게 떠올랐다. B급 문화의 열풍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불고 있어 주류 문화를 무색케 하고 있다.

예능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개인 취향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다른 맛과 색깔을 창조해 내고 있다. 이제는 A급이냐 B급이냐를 가리는 것보다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주류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것들을 제도에 눌리지 않는 비주류가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의취(意趣)대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도 발명가가 아닌 발견가였다. 그는 전 세계 인재들과 협업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향을 발견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B급들은 자신의 애호(愛好)도 살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에는 예술이 대중들을 무시했다. 필자도 그룹사운드 출신으로 연주를 하다가 실수를 하면 “너희들이 틀리고 맞는 것을 아냐”며 속으로 비웃으며 대중들을 무시했다. 하지만 21세기 주체는 주류나 비주류가 아닌 대중들이다.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끌리는 방향대로 세계가 공감하고 열광하기에 이것이 B급들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가 된 것이다.

신이 준 인간의 목소리 화음은 악기의 화음보다 부드럽고 더 아름답다. 목소리 화음에는 지루함이 없어 이것을 모방해 만든 것이 악기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잠자리를 보고 헬리콥터를 만들었고 물고기를 보고 잠수함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연주하기 전에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는 튜닝(Tuning)이란 것을 한다. 요즘은 디지털 튜닝기가 나와 빠르게 맞추기는 하나 정확도 면에서 세미한 부분까지 구분하는 사람의 귀를 기계가 못 따라간다. 마치 위스키 감별사가 혀끝만 살짝 대고 몇 년산이며, 어느 나라 제품인지 금방 알아내듯이 말이다.

나누고 구별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등급을 먹이며 주류와 비주류, A급 문화와 B급 문화, B급 며느리, A급 남편 등으로 구분하며 살았다. 필자도 한때는 옮고 그름의 잘못된 가치 판단으로 편 가르기를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류 인생, 삼류인생으로 나누고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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