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1년에 한 차례 태양을 공전하고 하루 한 번 자전한다. 지구 표면의 대략 70%는 바다이고 나머지는 육지지만,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육지처럼 바다 깊이도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바람과 비가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모든 강은 해마다 한 차례 범람하고 한 번은 말라붙는다. 그런 환경에 맞게 오랜 세월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졌다.
우리나라는 여름 한 철에 강수량의 60%가 집중되어 강이 범람하고 비가 일년내내 비슷하게 내리는 유럽은 봄에 강이 범람한다. 알프스에 쌓인 눈이 높아 내리는 라인강이 그렇다. 아니 그래왔다. 기상이변이 속출하기 전, 최근까지. 강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모든 생물은 강에 따라 삶을 이어왔는데,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알을 낳고 먹이를 찾는 시기와 장소를 놓친다. 댐과 대형 보로 강의 흐름과 순환을 차단하거나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굽이굽이 흐르던 물길을 직선으로 만들어 주위 생태계와 연결을 차단한다.
2021년 7월 독일과 벨기에는 느닷없는 홍수를 만났다. 그들 경험에 일찍이 없던 폭우로 100여 인명이 희생되었는데, 우리가 들으면 놀랄 정도인 150mm의 강우였다. 1년에 800mm의 비가 골고루 내렸는데 150mm가 한꺼번에 쏟아져 놀란 그들은 2차대전 이후 사용하지 않은 경계 방송용 마이크를 켜야 했다고 한다. 예전에 없는 재난에 독일도 벨기에도 대비할 수 없었다. 대비할 수단이 없었다. 예전에 없던 기상이변은 인간이 자연의 흐름을 길들이려고 만든 인공구조물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8월, 지구에서 가장 뜨겁고 건조하다는 미국 데스벨리국립공원에 사상 최대 강우가 쏟아졌다. 하루 만에 1년 동안의 강우가 한꺼번에 떨어져 국립공원 직원을 비롯해 방문객 수백 명이 고립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인적이 드문 사막이고 피할 데가 있어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9월 11일 에게해에서 발생한 태풍(사이클론)의 여파는 무시무시했다. 하루에 한해 강우의 20배가 쏟아진 폭우를 견디지 못한 리비아의 두 개 댐이 거푸 무너지며 공식적으로 수천, 어쩌면 수만의 인명이 실제 희생되었을 것이다.
1960년대 기후위기의 징후가 있어도 일반인은 느끼지 못하던 시절, 뜨거운 한낮 햇볕은 소나기를 불러주곤 했다. 농촌은 물론이고 도시도 여름이면 소나기가 드물지 않았는데, 도시가 커진 요즘 소나기는 기억에서 지워졌다. 근교 농촌이 거침없이 개발되면서 주위의 숲이 줄어들었다. 뙤약볕은 식물의 증산작용을 높여 하늘에 소나기구름을 만들었는데, 옛이야기다. 폭우가 퍼붓는 장마철, 바싹 마른 장마철, 소낙성 폭우, 정체전선, 2차 장마전선, 가을장마 …. 전에 듣지 못했던 용어들이다.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었다는 걸 분명히 한다.
1998년인가? 강화에 600mm의 비가 내렸다. 당시 예보관은 ‘기상이변’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용어였는데, 요즘 식상해졌다. 시인 박광숙은 《빈들에 나무를 심다》에서 당시 공포를 수필로 담아냈는데, 지금 당시 상처가 강화 곳곳에 남았다. 주변이 바다인 까닭에 홍수가 발생해도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600mm 강우는 달랐다. 공포였다. 한반도 한 해 평균 강수량의 절반이 한꺼번에 떨어졌는데, 기온과 수온이 심하게 상승한다는 한반도에 그런 상황이 재현되지 않을 리 없다. 당시 공포가 재현되면 인천시는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인천시는 하천종합정비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기상이변이 일상화되어도 해외의 규모는 피했다. 다행인데,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는 도시답게 인천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 분명해야 한다. 인천시가 마련하는 하천종합정비계획은 단기적 상황에 대비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인데, 기상이변의 폭이 상상을 초월한다. 높은 산과 넓은 강, 그리고 이렇다 할 댐과 보가 없더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심도 있게 마련해야 한다. 종합적 대안을 실효성 있도록 마련하려면 많은 연구와 비용이 필요하겠지만, 늦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인천 시가지 역시 대부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파묻혔다. 작은 하천은 곳곳이 복개돼 있다. 일상적 빈도의 강우에 견디는 수준에서 멈출 수 없다. 쏟아지는 빗물을 바로바로 배제하는 일상 대책이 한계를 만난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빗물 배제의 역량을 키우는 데 그칠 수 없다. 완충하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범람 위기를 몰리곤 하는 독일 라인강 주변 도시는 범람원을 만들었다. 유사시 넘치는 빗물을 받았다 비가 그치면 배수하는 방식이다. 인천 아라뱃길은 애초 목적은 방수로였다. 현 상태로 전에 없는 폭우를 수용할 수 없다면 재난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인천시는 파악하고 있을까?
하천에 물이 흐르면 도시가 시원해진다. 복개된 하천을 열어 생태형 하천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지지부진한 인천은 여기저기 도시 재개발에 나선다. 부가 가치에서 재난에 대한 완충력을 먼저 고려하면 어떨까? 강폭이 충분히 넓어야 하고 가뭄에 흐르는 물이 유지돼 악취를 방지하면서 생태계가 형성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되도록 구불구불 흐르면서 일부가 범람원이 되면 좋다. 평상시 텃밭이나 공원으로 활용하다 유사시 범람하는 빗물을 모으는 저수지가 될 수 있다.
물론 당장 시행할 수 없다. 기존 시가지를 재설계하고 넓고 구불구불한 하천을 조성하면서 범람원을 준비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일 게 틀림없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먼 내일이 아닐 수 있다. 시간과 비용으로 당장 시행하지 못하더라고 대책은 미래 마련하면서 늦지 않게 대비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머지않은 인천시에 닥칠 파산을 면하려면 지금부터 시민동의를 거쳐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적인 논의 과정으로 참여한 시민의 동의를 구한다면 예산과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내일 닥칠 재난은 말로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