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를 주도자로 바꿀 수 있는 간단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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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를 주도자로 바꿀 수 있는 간단한 방법
  • 최원영
  • 승인 2023.09.18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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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 제122화

 

 

지난 두 차례의 글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위기 상황에 대해 ‘나’는 어떤 심리상태로 그 상황을 바라보는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런 심리 현상이 인간의 일반적인 심리라고 한다면 이 사건을 분석한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우리에게도 매우 유용한 지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의 바지를 잘라야 한다는 것을 두고 부잣집 세 딸은 ‘쟤가 하겠지’라는 생각 역시 딸들의 마음이 빚어낸 생각입니다. 그리고 괴한에게 살해당한 제노비스의 울부짖음을 듣고 보았음에도 ‘저렇게 큰 사건이라면 누군가가 전화했겠지.’라는 생각도 똑같습니다.

이 두 개의 사건들을 다시 되돌아보면 되돌아볼수록 내 마음속에도 부잣집 세 딸의 미루는 마음과 제노비스 사건을 목격하고도 방관하는 이기적인 마음 둘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맞춰 나에게 유리한 행동을 결정한 다음, 내가 결정한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논리를 구성합니다. 이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떤 행위, 즉 세 명 모두 바지를 잘랐든 아니든, 그 행위를 두고 세 딸 모두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논리를 이미 세워 놓았을 테니까요.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고 삶이지 않을까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은 똑같은데, 잘못했다는 사람들은 정작 없는 이 세상의 모습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버나드 대학 사회학과의 르네 클레어 폭스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방관자들의 행동은 ‘작동거부’의 산물이다. 작동거부란 충격으로 마비를 일으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자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론들로 이 사건을 규정하려고 했지만, 달리와 라타네 교수는 제노비스 사건을 두고 다음과 같은 의구심을 갖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색다른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이런 의구심이었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35분 동안 강간과 살해를 당하고 있는데, 보통사람이라면 어떻게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저 수화기만 들고서 전화만 걸면 되는 건데.’

그래서 이들은 ‘살인’ 대신에 ‘간질 발작’으로 실험계획을 세웠습니다. ‘대학생의 도시 생활 적응도’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뉴욕대학교 학생들을 모집했고, 그들을 격리된 방안에 한 명씩 들어와 앉게 하고, 2분 동안 대학교에서 생활하며 어려웠던 점을 말하도록 했습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방에 대기하게 했습니다. 각 방은 격리되어 있지만, 오디오장치가 연결돼 녹음기를 통해 옆방 학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그 목소리가 미리 녹음된 것임을 모르고 실제로 옆방 학생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실험에는 여학생 59명과 남학생 13명이 참가했습니다.

첫 발표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발표자는 미리 녹음된 육성입니다. 자신이 자주 발작을 일으킨다고 고백합니다. 당황스러워하며 말도 더듬거립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증세가 더 심하다고도 합니다. 마침내 간질 발작이 일어납니다. 목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간질 발작을 일으킨 학생은 다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점점 목소리가 커지더니 말이 엉키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탄원조로 말을 합니다.

“저.. 저.. 저.. 저에게 야 야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이 이 있는……”

차례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서 도움을 충분히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험하기 전에 그들에게는 지시대로 순서에 따라 발표하라고 말해놓았었습니다. 발작은 총 6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간이면 학생들이 생각하고 행동할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여 학생의 31%만이 행동을 취했습니다. 나머지 69%는 방관자로 남아있었던 겁니다.

실험결과, 학생들이 자기 외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생들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희생자를 위해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반면에 간질 발작 학생을 도울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믿었을 때는 85%가 도움을 청했고, 그것도 발작이 일어난 지 3분 안에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 결과에 따르면,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바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달리와 라타네의 이 실험결과는 사람 수가 많을수록 안전할 것이라는 이론에 반기를 든 셈입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그들이 방관자가 되기 때문에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행위가 오히려 억제된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된 연구물을 하나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애리조나대학의 치알디니 교수의 책인 《설득의 심리학》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먼저 한 청년이 다른 사람 옆에서 카세트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일광욕을 즐기다가 바다에 들어갑니다. 얼마 후 도둑 역할을 맡은 사람이 다가와 카세트와 청년의 소지품을 훔쳐 달아나게 합니다.

이 실험을 스무 번이나 장소를 바꿔가며 반복했는데, 그중 16명의 목격자는 무관심했고 단 4명만의 목격자만이 그 도둑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번에는 다른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청년은 옆에 있던 사람에게 “제 물건 좀 봐주세요.”라고 부탁했더니, 놀랍게도 20명 중 19명이 도둑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연구물을 접하면서 저는 세상이나 남을 탓하며 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되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특정된 사람에게 부탁드리면 될 테니까요. 이런 태도가 방관자를 삶의 주도자로 만들 수 있는 지혜이고, 이런 삶의 자세가 우리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그리고 조금은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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