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의식 없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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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의식 없는 정치
  • 박병상
  • 승인 2023.10.2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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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국회의원들(사진=연합뉴스)

 

정치 계절이 다가온다. 유권자의 선택보다 공천권자의 관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본다. 다가오는 선거도 여전할 모양이다. 유권자의 선택은 분위기에 좌우되는가?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의식 있는 유권자는 다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들은 경험으로 선택할 정치인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유권자 대부분은 누가 어느 지역구로 왜 출마하려 하는지 거의 모른다. 우리나라 정치 풍토가 그런데, 다른 나라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

한 달에 한 차례 새벽 7시에 ‘새얼아침대화’가 열린다. 400회를 훌쩍 넘었다. 쏟아지는 잠을 참고 나온 인천의 무게 있는 인사들은 강연자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많은데, 새얼아침대화의 하이라이트는 강연 전에 연출된다. 선거 계절에 뚜렷하다. 총선에 출마하려는 의지가 분명한 인사들이 악수 청하느라 바쁘다. 강연장 입구에 진을 치는 바람에 피하기 어렵다. 피해도 소용없다. 자리를 돌아다니며 반가운 듯,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미는데,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그들은 나를 모를 텐데, 나는 그들을 제대로 알까?

이웃의 사정과 관심사를 세세하게 알기 어려운 도시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자처하는 선량은 어떤 자세로 정치활동을 이어가야 하나? 관련 상식이 깊지 않지만, 대의제는 유권자의 참여와 의사를 대신하면서 입법 활동에 나선다고 한다. 본령이 그렇다고 한다. 모든 유권자가 입법 과정에 참여하면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대의하려고 나선 인물이라면 입법 사안에 맞춰 과정에 유권자의 의견을 최대한, 그리고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그를 위해 지역 유권자와 끊임없이 만나 의논해야 옳은데, 그 본령에 충실한 의원은 누구인가? 내 지역구에 없다. 그래서 외모 이외, 대의제 의원의 됨됨이를 거의 모른다.

뉴스를 보면 어떤 정치인이 특정 지역으로 지역구를 바꿔서 출마한다는 소식이 나온다. 그 지역 유권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투적인 “지역 발전”에 기여하리라 믿으며 반길까? 지역 관심사는 천양지차인데, 권위를 자부하는 그 출마 예정자는 지역을 함부로 옮겨도 무방할까? 옮길 지역에 관심사가 갑자기 커진 것으로 보이지 않은데, 우리 정치 풍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당선만 챙길 뿐, 지역이 무시된다. 그 상황에서 당선되어 대의제 본령에 충실할 리 없다. 그런 경험도 없다. 인천도 그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나와 인사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정치인들, 무슨 주장과 토론이 오고 갔는지, 그들은 알까? 관심은 있을까? 있다면 보좌관이라도 끝까지 남아 진중하게 듣고 토론에 참여해야 할 텐데, 그런 보좌관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국회의원 보좌관에 대한 유권자의 이미지는 그리 밝지 않다. 의원의 권위를 배경으로 거들먹거리기 일쑤인 탓일 게다.

유럽을 중심으로 사안별로 시도되는 시민의회를 주목하고 싶다. 다른 국가에 비해 본령에 충실하다는 유럽이건만, 의식 있는 유권자들은 대의제에 진저리친다. 시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탓인데, 그래도 유럽의 의원들은 시민의회의 논의 과정과 토론 결과에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와 다른 점인데, 다가오는 선거에 기대할 게 없는 상황이더라도 허튼소리를 다시 내놓는다. 유권자 동의를 받지 못하는 자의 당선을 막고 싶은 마음의 발로다. 어쩌면 정치에 정주의식을 불어넣을지 모르는데, 투표용지에 “지지후보 없음” 칸을 추가하면 어떨까?

우리 풍토에서 전혀 가능하지 않을 소리를 정치 계절에 꺼낸다. 건강하고 행복해야 할 미래세대의 눈높이로 여기저기 의견을 제시해온 유권자는 답답하다. 거론되는 상투적 인물 중 내 지역에 신뢰받을 진정성으로 귀 기울일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정주의식은 본령인데, 점점 뚜렷하게 다가오는 기후위기를 직면하면서 시민과 대안을 모색하려는 후보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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