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풍요로운 사색의 평원, 소래습지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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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게 풍요로운 사색의 평원, 소래습지생태공원
  • 유광식
  • 승인 2023.11.2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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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남동구 소래습지생태공원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소래습지생태공원 정문(소염교), 2023ⓒ유광식
소래습지생태공원 정문(소염교), 2023ⓒ유광식
소염교에서 바라본 서(西)갯골・갯벌, 2023ⓒ유광식
소염교에서 바라본 서(西)갯골・갯벌, 2023ⓒ유광식

 

비가 온다고 하는데 눈이 내릴까 싶어 벌써부터 설레는 연말 분위기다. 매일 날씨 예보를 챙겨 마음에 꽂아두고 하루를 굴린다. 이번 수능 날은 동장군이 여행을 갔는지 예년과 다르게 춥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 반대쪽의 날씨는 더하면 더했지 여전히 엄혹하기 그지없다. 동시대의 참혹한 사태를 바라봄은 마치 TV 뒤에 홍시를 숨겨둔 행위처럼 이율배반적이다. 하루 속히 극한 대립이 사라지길 빌 뿐이다. 한편 이웃 도시의 서울바라기가 논란인 것도 같다. 따스하게 빛나는 곳, 소래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갔다.

 

갈대 군락지, 2023ⓒ유광식
갈대 군락지, 2023ⓒ유광식

 

익히 알려진 소래습지생태공원은 넓은 부지를 자랑한다. 바야흐로 갯벌과 습지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이 공원은 체험과 산책, 사색의 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 남동구와 시흥시의 경계이기도 한데, 평일임에도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방문했다. 소염교를 건넌 후 공원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크게 돌아보았다. 옛 염전시설과 소금창고는 체험과 교육용으로 활용되고 산책로(비포장+데크)는 깔끔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처음 거닐었던 20년여 전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나지만 생태공원이라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남아 주어 고맙기도 했다. 

 

염전 풍경, 2023ⓒ유광식
염전 풍경, 2023ⓒ유광식
체험교육장으로 사용되는 옛 소금창고(나무에도 열려라~), 2023ⓒ유광식
체험교육장으로 사용되는 옛 소금창고(나무에도 열려라~), 2023ⓒ유광식

 

지평선 끝에는 아파트가 울타리를 치고 있더라도 당장은 뻥 뚫린 하늘 아래로 마음이 드넓게 펴진다. 싱거워 보이기도 한 구름을 지켜보며 지난날을 떠올리고, 현재의 삶에 충실한지 물음표를 그려보기도 한다. 갈대 군락지의 ‘쓰~으윽 스윽~’ 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영동고속도로 차량 소음이 비벼져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분,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풍경,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의 나들이, 요즘 유행이라던 맨발 걷기까지 소래 갯벌의 현대적 생태계를 구성하는 움직임이 소금산을 이룰 정도로 많다. 

 

청명한 날씨, 2023ⓒ김주혜
청명한 날씨, 2023ⓒ김주혜
탐조대에서 바라본 기수습지(염수와 담수가 섞인 곳), 2023ⓒ유광식
탐조대에서 바라본 기수습지(염수와 담수가 섞인 곳), 2023ⓒ유광식

 

조류 관찰대에 올라 360도 빙 돌며 습지를 조망하였다. 희끗희끗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정을 되찾아 준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숲을 바라보니 옛날 옛적 기억이 살포시 떠오르며 애수에 젖어 들기도 했다. 기분이 좋았던지 모자를 맞춰 쓴 아주머니 다섯 분이 산새 못지않게 재잘재잘하며 갈대숲 사이로 걸어가신다. 저 멀리 오리의 행방과 이름 모를 새들의 외침은 마치 힘겨웠던 시대의 삶을 토닥이는 다듬이질인가 싶었다. 앞선 계획이 확실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얀 도화지를 받아든 어린 소년의 설렘이 한참을 걷게 해주었던 것 같다. 

 

조류 관찰대에서 내려다본 갈대 군락지와 둘레길, 2023ⓒ유광식
조류 관찰대에서 내려다본 갈대 군락지와 둘레길, 2023ⓒ유광식
둘레길에서 만나는 갈대들, 2023ⓒ유광식
둘레길에서 만나는 갈대들, 2023ⓒ유광식

 

염전 관찰데크길을 지나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관에 도착했다. 건물 옆에는 해수족욕장이 있는데 겨울에도 온수가 나와서인지 인기가 높아 평일임에도 많은 어르신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맨발 걷기 후 족욕을 하는 분들도 꽤 있는 모양인데, 때 아닌 늦가을에 모두가 종아리를 걷어붙이고 염전길, 갯벌을 간질이는 모습은 섬광처럼 반짝였다. 잠시 해수족욕을 해보고도 싶었으나 만원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관(전망대와 카페 이용 가능), 2023ⓒ유광식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관(전망대와 카페 이용 가능), 2023ⓒ유광식
갯벌 생물종 탐조하기(생태전시실), 2023ⓒ김주혜
갯벌 생물종 탐조하기(생태전시실), 2023ⓒ김주혜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관을 한 번 둘러본 후 남동구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2층 카페테리아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야외 갯벌관찰데크 의자에 앉아서 챙겨온 작은 빵들을 먹으며 노을을 바라보았다. 늦가을의 알싸한 기온과 바람, 햇빛이 찬란한 일상이라는 상자 안의 선물이었다. 또한 점차 미끄러져 내려오는 태양과 갯골을 기어오르는 바닷물의 관계함수에 걸려 그만 나자빠지기도 한다. 여기에 조금의 대화와 사색을 뿌려둔 채 마음 밑줄을 긋고 일어섰다. 

 

맨발로 갯벌을 걷는 사람들, 2023ⓒ유광식
맨발로 갯벌을 걷는 사람들, 2023ⓒ유광식
갯벌관찰데크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합성: 오죽했으면 하는 경고문), 2023ⓒ유광식
갯벌관찰데크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합성: 오죽했으면 하는 경고문), 2023ⓒ유광식

 

습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많다. 보이지 않는다고 작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안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싶을 때 소래 습지를 찾아 가을 소풍 한 번 다녀온다면 내 곁의 숨은 존재들에게 감사함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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