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를 바라보는 시선, 여행자의 눈으로 본 인천
상태바
귀화를 바라보는 시선, 여행자의 눈으로 본 인천
  • 이상하
  • 승인 2023.11.23 0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읽기]
정평한과 서범구·이종봉 작가의 인천 - 이상하 / 조각가

 

정평한 작가는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교직에 대한 소명으로 교단을 지키고 있는 교사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같은 마음과 태도를 보이며, 7번의 개인전과 황해 미술제, 인천-인문의 풍경 전을 비롯한 여러 번의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하고 인천교사신문과 전교조지 ‘교육 희망’에 만평을 연재했고, 인천 민예총과 인천민속미술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현재는 인천한누리학교에 미술 교사로 생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관된 조형 언어로 일상의 범위 안에 들어있는 학교와 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표현 형식과 내용으로 담아내는 한편, 정의로운 시선과 실천으로 부당한 것에 정면에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 초기에 학교에서 폐기되는 책상과 칠판 등을 오브제로 사용했다. 소용(所用)이 다 해서 버려질 학생용 책상의 상판으로 캔버스를 대신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때 상판은 단순히 캔버스를 대신하는 대체재가 아니다. 긴 시간 학생들의 사용 흔적(낙서와 칼 등으로 패인 상처 등)이 남아있어, 말끔한 캔버스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간이 배어있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고 거쳐 간 다양한 생김과 자기만의 색채를 지닌 아이들의 의식이 오롯이 녹아있는 결정체다. 

상판은 이미 학교의 시간과 그 안에 남겨진 학생들의 흔적으로 그들만의 동화(童話)와 암호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중요한 오브제가 된다. 그는 그 상판에 축적된 시간의 흔적에 더해 학생들의 명랑한 일상을 세련된 필치로 가감 없이 유쾌하게 그려 넣었다.

한편으로 칠판을 오브제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책상이 학생의 시간이 축적된 결정체라면, 칠판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 소통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소통(전달)의 시간을 통해서 칠판은 제 역할을 하면서 의미와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칠판은 전통적인 수업(판서) 방식의 도구로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媒介)(요즘은 교실에 인터넷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TV가 등장했지만, 그 역시 전자칠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칠판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이다. 작가는 전통적 지식 전달의 대표적 도구인 칠판을 캔버스로 전환(轉換)시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도구로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정평한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안에서 작업의 방향과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이자 교사로의 생활, 모두에 충실하고 나름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학생 그리고 동료 교사와 주변인을 넘어서 소소한 생명과 사물까지 모두를 아우르고 살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대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이 같은 작업의 결과들로 우리와 만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넘어 길가의 작은 풀과 버려질 물건들의 시간과 이야기를 화면에 옮기는 작업을 지속해 온 것은 태생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올곧은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귀화(歸化)-뿌리내린 식물, 뿌리내릴 사람들〉 전에서 정평한 작가는 이주와 정착의 도시, 인천에 관한 이야기를 그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과 우리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외래식물에서 찾았다. 주지하다시피 그가 근무하고 있는 인천한누리학교는 다문화 가정과 이주 가정의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공립 대안학교다. 한국에서 태어난 학생들의 경우 보통은 일반 학교에 다니지만, 중도 입국한 학생의 경우,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누리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다.

 

정평한 작 귀화-토끼풀,캔버스위에 아크릴_91x91cm_2022
정평한 작 귀화-토끼풀,캔버스위에 아크릴_91x91cm_2022

 

인천은 개항과 이민의 상징 도시다. 1883년 외세에 의한 강제 개항과 1902년 12월, 121명의 조선인을 실은 배가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로 향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때를 시작으로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를 들고 나는 관문(關門)으로 인천은 많은 이민자가 첫발을 내딛고 삶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단한 이민자의 삶이 녹록(碌碌)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고(그것은 드는 이민자나, 나는 이민자 모두가 겪게 되는 일일 것이다.) 과거보다는 많은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곳곳에 남아있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들의 정착에 큰 장애가 되고 상처로 남는다.

한편으로 인습(因習)과 정서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해의 부족과 원활하지 못한 언어 문제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그들을 더 힘들게 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나, 어린 나이에 들어와 유년을 보낸 친구들은 그나마 덜 하겠지만, 그들 또한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으로 인한 가정에서 소통 문제는 돌봄이 절실한 시기에 어려움이 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출발선이 다른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주와 정착의 문제는 비단 사람의 문제뿐 아니라 외래식물이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겪게 되는 가혹한 조건들을 견디고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강화하고 개조해서 새로운 땅에 적합하게 진화(?)하고 자생하게 되지만, 사람의 경우는 그 과정이 식물과는 같을 수 없으니, 이주의 문제에서 개인과 지역사회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살피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작가는 큰 사회적 문제와 책임은 물론이고, 직접적이고 당면한 개인의 문제까지 세심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펴서 그들을 담아내고 있다. 귀화(歸化)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생물이 본래의 자생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작가는 매일 이들(귀화식물, 귀화인)을 본다고 했다. 어느 날은 산책길에서 또 어떤 날에는 등굣길에 만난다고 했다.

식물이 땅에 뿌리내리고 적응하면 귀화식물이 될 것이고, 이 사회에 적응하고 힘껏 살아내는 이가 있다면 그는 귀화인이 된다고 했다. 작가는 모든 게 낯선 땅에 아는 이 하나 없이, 자리 잡아 살아남고, 살아야 한다면 식물이나 사람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곁에 오래되어 익숙하고 흔해서 외래종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식물들과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의 그림 안에서 어울리고 서로 닮아가며 하나에 풍경이 된다. 작가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민들레처럼, 토끼풀처럼,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흔들리는 코스모스처럼 이 땅에서 잘 자라고 굳건하게 뿌리내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주(移住)를 편견 없이 순수함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평한 작가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다. 정평한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작품들이 세상에 나와 선보이고 쌓일 때마다 우리 사회는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정평한 작 귀화-코스모스,캔버스위에 아크릴_81x81cm_2022
정평한 작 귀화-코스모스,캔버스위에 아크릴_81x81cm_2022

 

서범구 작가와 이종복 작가는 인천과는 제법 떨어진 춘천과 강릉에서 찾아와 며칠을 머물며 여행자(?)의 관점에서 개항장을 보고, 듣고, 걷고, 먹고 만난 모든 느낌과 소회(所懷)를 화면으로 풀어냈다.

'인천을 바라보는 창작가의 시선'을 주제로 앞서 열린 5번의 전시가 인천에 살면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과 관심으로 인천을 바라보고 채집한 것들을 자신의 조형 언어로 풀어낸 전시였다면, 8월에 열린 마지막 6번째 전시에서 두 작가는 단기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그려 낸 전시였다. 여행자의 시선이, 아무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의 시선과는 차이를 보일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이 두 작가의 경우 처음부터 목적(도든 아트하우스 기획전)을 가지고 개항장과 차이나타운 등 인천의 주요 관광지와 근대의 시간이 쌓인 장소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여행이다. 

방문객의 입장과 시선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화면으로 옮겨서 인천에 뿌리를 두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것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것이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했거나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발견이라는 점에서 좋은 계기라 생각된다. (앞선 다섯 번의 전시가 원주민의 시선과 생각의 표현이라면 이 두 작가의 전시는 여행자(이방인)의 시선과 생각의 표현으로 인천의 시간과 풍광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읽을 수 있다. 아마도 도든 아트하우스의 이창구 관장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전시를 기획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적 접근이나 방향, 깊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아! 이런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하게 되는 지점에 이르면, 이곳에 살고 있어 조금은 무뎌지고 익숙해서, 무심코 스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볼 수 없는 시선과 접근으로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이 된다.

 

서범구 작 인천 개항장 - 한지에 수묵담채 28x21cm 2023
서범구 작 인천 개항장 - 한지에 수묵담채 28x21cm 2023

 

서범구 작가는 개항장에서의 느낌을 ‘역사의 순간들이 처절하게 스며든 장소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듬어진 풍경들만 남았고, 오늘의 순간들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서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개항장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을, 여행객이든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든 그들의 삶의 순간들이 채워가는 공간으로 보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으로 다듬어진 풍경이 남아서 오늘을 만들고, 그렇게 삶은 이어져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거와는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개항의 순간을 꿈꾸고 맞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나간 역사의 시간에서 개항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의미의 개항이나, 이곳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스치고 지나는 여행객들 모두의 상황과 각자의 처지에서의 개항(개개인의 변화와 전환의 계기)에 의미를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작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고유의 색깔과 몸짓으로 화려한 개항을 꿈꾸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이종봉 작 곡물창고 사일로의 변신- Watercolor on Arches 54x18cm 2023
이종봉 작 곡물창고 사일로의 변신- Watercolor on Arches 54x18cm 2023

 

이종봉 작가는 남겨진 것을 통해,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찾아내고 있다. 그의 시선은 개항장 구석구석을 훑어가며 그곳이 버티고, 견딘 시간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스치듯 흐르면 지나치기 쉽고, 겉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 곳까지 시선을 던져서 그 안에서 일어났고, 일어나는 일들을 찾아내고, 새살이 돋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과 그 시간까지 살피고 어루만진다.

모두가 맥아더만 보고 말할 때, 그 이름 뒤에서 수고(?)한 병사들을 생각하고, 과거 곡물창고로 쓰이던 그곳에서 지나간 시간과 쓰임에 흔적을 살펴서, 지금의 이유 있는 변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픈 상처의 시간과 흔적이 짙게 배어서 수탈의 증거로 남아있는 유물들을 안타까운 마음과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 그에게 고소한 짜장면보다는 붉디붉은 차이나타운에 서럽고 아픈 시간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개항장을 걸으며 책에서 보던 역사의 기록, 그것보다는 남겨진 것들의 지금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가려지고 흐르듯 소모되어 잊힌 시간과 만나는 작업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담백하고 선입견 없는 두 작가의 시선으로 만난 인천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인천을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