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남동국가산업단지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고요하게 연말을 보내는 중이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늦은 감사를 전하게 된다. 그리 복잡한 건 아니지만 관계 속에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던 사회 문제들이 신경 쓰이긴 해도, 다 안고 갈 짐들이란 생각에 숙연한 자세를 고치기 어렵다. 지금은 굴속으로 바닷물을 넣었다는 이-팔 전쟁으로 놀랄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이 와중에도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축구 게임에 열광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서 시행되는 출산 장려 정책을 곱씹어보게 되는 요즘이다. 곧 여러 지면상에서 한 해의 이슈가 박제되어 용솟음칠 것이다.
남쪽으로 향했다. 남동구의 남동산업단지(이하 남동산단)에서 연말 분위기를 살펴볼 요량이었다. 인천 지역이 너무 큰 나머지, 직선주로조차 멀게만 느껴진다. 인천의 푸른 벌판이자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산단을 조망하기 위해 남동타워(122m, 청년미디어타워)를 먼저 방문했다. 지역난방 발전소이기도 하고 타워와 수영장이 있는 부지는 호구포근린공원 앞쪽에 자리한다. 남동타워는 인천의 몇 가지 타워 중에서도 언젠간 꼭 와보고 싶었던 타워였다. 지난 2008년 대한주택공사가 기부채납한 타워와 수영장은 시민의 휴식처이자 둘레길이고, 청년 사업의 아지트(2020~)로 활용되고 있다.
타워로 오르는 과정이 조금 난감해 경비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다. 수영장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외부에서 곧바로 올라가는 옆길이 있었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자마자 승강기를 탄다. 33층 높이까지 삐거덕 올라간다. 1988년 63빌딩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침 꼴깍 삼키던 일이 생각난다. 대략 50초 정도 걸리는 속도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주변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전망대를 360도 돌면서 남동구는 물론 멀리 시흥, 소래산, 송도까지 훤히 조망할 수 있었다. 산단의 허리를 오가는 수인분당선 열차의 모습이 마치 장난감 레일 기차 모형 같다.
창가를 중심으로 휴게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때마침 어르신 부부가 담소 중이셨다. 중간 지점에는 공연시설도 있고, 영업이 망한 건지 작은 카페 시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바로 아래층에는 좀 더 파스텔 분위기로 꾸며진 녹음실과 촬영실, 창작실, 사무실이 있다. 이미 많은 청년이 이용하고 있을 터이다. 전반적으로 연기만 나는 ‘굴뚝’인지 생산적인 ‘발전’인지는 궁금하지만 소중한 지역 자산이 하릴없이 방치되어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설만으로 문화가 조성되는 건 아니니 좀 더 세심하고 친절한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옛 시절을 보낸 분들은 산단 주변의 발전에 혀를 내찰 것도 같다.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기차도 수시로 다니니 말이다. 인근 새우타워가 좀 더 인기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맡아본 시큼한 향도 나는 덜커덩 엘리베이터를 타고 인천의 빼어난 장관을 맛보는 것도 나름대로 낭만 어린 시간이다. 곧 찬 바람이 불고 눈도 올 것이다. 평일의 아쉬움인지 조명을 꺼두어서인지 그저 맴도는 썰렁함인지는 몰라도 허한 기분이 끼룩끼룩 날갯짓 한다. 아마 2023년을 보내는 기분 탓이 크겠다.
타워를 내려와 산단의 도로를 달렸다. 양옆으로 빼곡히 주차된 자동차와, 도로를 오가는 대형 트럭들, 그리 높지 않은 공장 건물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산단의 모습은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올라서 있는 작가의 심정과도 다르지 않다. 무엇이라도 만들 수도, 해낼 수도 있는 조건이지만 잠시 생각하며 머뭇거리는 시간의 초조를 말이다. 그저 소중한 것들을 살피고 다시금 계획을 세워 내는 것이 새우타워 못지않은 생활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올 한해 어떻게 지내 왔는지, 대체로 만족하는지, 주의할 것은 없었는지 말이다.
어느덧 오후 5시다. 칠흑 같은 어둠이 공단 전역에 내려앉는다. 나는 여전히 ‘산단’보다는 ‘공단’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다(그 시절을 살아온 것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김밥을 샀다. ‘맛있는 김밥집’의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친절함이야말로 함께 말아진 재료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지나는 기분이 조여오지는 않는다. 큰길로 쏟아져 나오는 퇴근 차량으로 순식간에 뒤죽박죽된 상황은 갑갑했지만 말이다. 추운 날엔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길은 막혀도 평화롭단 생각이다. 지금의 안전이 제일이자, 함께 사는 우리 이웃(독자)에게 감사하고 말이다. 소음과 저작권료라는 문턱에 걸려 성탄절 캐럴 송을 들을 기회가 흔하진 않아도 연말은 연말이다. 부디 모두의 일상이 평온해지고 가족과 함께 따듯한 연말연시를 맞이하면 좋겠다. adieu!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