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평미군기지 환경오염 대응 활동
주한미군특별법과 환경조사
부평미군기지인 캠프마켓(Camp Market)은 일제강점기에 인천육군조병창이 있던 곳이다. 일본군의 군수기지였다. 광복 후에는 미군기지인 애스컴 시티(Ascom City)가 건설됐다. 그리고 1973년 이후 캠프 마켓으로 이어졌다. 주한미군이 주둔하던 곳이어서 우리나라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다. 오랜 기간 군수기지였던 곳이기 때문에 환경오염이 심각한 상태일 것이란 추측만 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곳엔 DRMO라고 부르는 미군의 군수품 재활용처리장이 있었다. 사용연한이 다 된 군수 물자를 가져와 처리하는 곳이었다. 물품을 해체하거나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름이나 오염 물질 등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컸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하에 묻힌 송유관이 부식하면서 발생했을 기름 유출의 양은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우려가 되는 건 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DRMO는 2011년에 경상북도 김천시로 이전됐다.
2004년이 되자,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라 용산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등 전국의 미군기지가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캠프 마켓도 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이 확정됐다. 이때부터 주한미군기지의 환경오염실태가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평미군기지 또한, 2006년 9월 12일부터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이 유류오염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어 2007년 10월에 주한미군 공역구역주변지역 환경기초조사지침이 제정되었고, 2008년 2월에 부평구청이 부평미군기지 주변지역의 환경오염조사를 착수했다. 오염 상태는 심각했다. 2009년에는 환경부 산하 환경관리공단이 조사를 시행했다.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와 벤젠, 납 등이 토양과 지하수에서 검출됐다. 하지만, 미군기지 내부의 오염 정도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11년 5월 25일 인천녹색연합을 비롯한 인천지역의 시민단체, 정당 관계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앞서 한 퇴역 주한미군이 1978년 경북 칠곡의 캠프케롤에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증언했는데 국방부 관계자는 매립했던 고엽제를 파내 어딘가에서 처리했고 그 장소가 DRMO일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5월에 1991년 미 공병단 내 건설연구소가 발간한 ‘미 8군과 주일미군의 위험폐기물 최소화 방안’이란 보고서가 확인되었는데 이 문서에는 1987-1989년 동안 캠프마켓이 처리한 구체적인 폐기물의 양이 기록되어 있었다.
확인된 중금속 등 유독 물질의 종류와 양이 심상치 않았다. 1987년의 경우만 보더라도 수은폐기물 10파운드, 배터리 산(酸) 21캔,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 43박스, 용제(溶劑) 슬러지 17드럼, 석면 2580파운드, 트랜스포머 오일 448드럼 등이었고, 특히 1989년에는 독성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PCBs) 448드럼을 한국 처리업자를 통해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DRMO에서 처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PCB는 변압기 등의 절연류로 많이 사용됐던 것이다. 발암물질이자 환경호르몬성 물질이고, PCB를 태울 경우엔 다이옥신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CB는 미국에서 1979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었다.
캠프마켓과 다이옥신
2011년 경북 칠곡 뿐 아니라 부천에 있던 캠프 머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2011년 6월 인천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부평미군기지 맹독성 폐기물 진상조사 인천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부평미군기지 환경오염문제에 대해 대응해 나갔다. 시민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은 미군의 사과를 촉구하며 부평미군기지반환 및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크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부평미군기지 내부 환경오염 전면조사 실시, 둘째, 부평미군기지의 조기반환, 셋째, 불평등한 SOFA개정 및 환경오염복구비용 원인자부담원칙이다.
인천시는 2011년 6월 3일부터 5일까지 부평미군기지 ‘주변지역’에 대한 환경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지만 부평미군기지시민대책위는 이러한 환경조사에 대해 참관 거부 방침을 밝혔다. 현 시점에서 환경조사는 기지 내 조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관 합동조사단이 구성돼 조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조사의 실효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을 것으로 봤다.
이후 부평구는 민관합동공동조사단을 구성했고 인천녹색연합도 참여했다. 공동조사단은 2012년 9월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다이옥신이 2,3,7,8-TCDD 독성등가환산농도로 최고 55.748 pg-TEQ/g였다. 이는 2009년 전국평균인 2.280 pgꠓTEQ/g에 24배였다. 특히 조사단이 주목한 것은 4~5 미터의 심토에서 다이옥신이 확인된 것이다. 물에 거의 녹지 않는 다이옥신의 특성을 고려할 때 캠프마켓 주변지역의 다이옥신 오염은 소각장 등에서 대기배출에 의한 것이 아닌 과거에 다이옥신을 함유한 유해화학물질을 매립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 조사단은 밝혔다.
다이옥신은 청산가리보다 1만 배 이상 독성을 가진, 인간이 만든 가장 위험한 독극물로 세계보건기구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극소량으로도 사람의 건강에 대한 심각하게 악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공동조사단은 환경부에 추가적인 정밀조사와 기지내부조사 시 다이옥신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주변지역에 대한 환경부 조사를 거쳐 부영공원에 대해 국방부에서 오염토양정화작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다이옥신에 대한 토양오염기준이 없어 별도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다이옥신 최초의 정화
인천녹색연합은 2017년 5월 10일, 환경부를 상대로 2016년 완료된 ‘부평미군기지 환경평가 및 위해성보고서’ 비공개결정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2018년 3월 8일, 서울행정법원은 환경평가 자료는 공개하라는 부분 승소를 판결했다. 위해성평가 자료는 환경부의 비공개 사유를 인정했다.
그 사이 환경부는 2017년 10월 27일, 국방부, 외교부와 함께 부평미군기지 내부 조사결과 일부를 발표했다. 다이옥신이 1만347pg-TEQ/g까지 검출되었음을 밝혔다. 다이옥신 오염확인 이후 부평지역에서는 여러 차례 주민공청회 등이 열렸다. 인천시 부평미군기지시민참여위원회 등 의견에 따라 국방부는 다이옥신 오염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 주민과 시민단체, 행정 등 13명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하여 정화방식, 정화기준 등을 논의했다.
2021년 11월, 캠프마켓 부지 A구역의 다이옥신 정화가 완료됐다. 2022년 10월, ‘캠프마켓 다이옥신류 등 복합오염토양 정화를 위한 민관협의회’가 제17차 회의를 끝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그러나 B구역의 1780 건물 하부의 토양오염 정화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다. D구역은 아직 반환되지 않았다. D구역의 환경오염조사가 마무리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인천녹색연합은 2022년 12월 말, ‘부평미군기지 D구역 환경조사 위해성평가보고서’를 정보공개청구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또 다시 ‘부평미군기지 D구역 환경조사 위해성평가보고서’에 대해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인천녹색연합은 또 다시 소송을 시작했다. 사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미군기지 환경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