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인간관계에 묵음이 필요한 이유
상태바
영어와 인간관계에 묵음이 필요한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4.02.14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영의 책갈피] 제143화

 

지난주에 예고해드린 것처럼 오늘도 두 신부님이 쓰신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에 나오는 따뜻한 글 하나와 사연 한 가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저자의 두 번째 글입니다.

영어에 ‘묵음’이 있다. 중고교 때는 이 묵음이 귀찮았다. 글자는 분명 쓰였는데 발음은 하지 말라고 하고, 발음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글로 쓰지 않으면 틀린다니 말이다.

이혼 부부 역시 처음에는 상대에 대한 사랑을 간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랑은 다른 쪽으로 나아가버린다. 성격이 다르고 가정환경이 다르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처음 가졌던 사랑은 전혀 다른 모습인 미움이란 감정으로 변해버린다. 사랑이나 미움이 모두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실체인데도 그걸 굳이 따로 떼어놓고 빛만을, 또는 그림자만을 진짜로 착각하며 보려 한다. 그러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 보는데도 말이다.

그렇다. 부부는 서로에게 묵음이 되어야 한다. 드러나지도 않고 소리도 나지 않지만, 그 자리에 꼭 있어야만 서로를 완성시킬 수 있는 부부는 서로에게 묵음이다. 또 부부는 서로에게 그림자이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실체와 그 실체의 그림자의 사이, 그게 바로 부부란 이름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기꺼이 묵음이 되어주고 그림자가 되어줄 때 소중한 사이가 될 것이다.

 

세 번째 사연입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의 원장이 직접 강의실에 들어와 취업설명회를 한다. 이 학원은 취업이 목적이라 내가 신부임을 밝히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었다. 이 나이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운다고 취업이 될까 하고 말이다. 어느 날, 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나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취업을 위해선 이런 배짱을 더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내보이기보다는 은근히 숨겨야 더 멋진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선, 기도, 봉사와 같은 일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자선과 기도와 봉사는 위선이다. 이 위선을 통한 선행은 참된 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안엔 악마의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선을 통해 우리를 더 교묘히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혹을 막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사심 없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선(善)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을 우리 안에 키우는 것뿐이다.

 

맞습니다. 연말이면 곳곳에 불우이웃돕기가 벌어지곤 합니다. 단체마다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해 커다란 현수막 앞에 수십 명이 모여 사진을 찍고 그것을 언론에서는 보도합니다. 물론 그 앞에는 라면상자와 쌀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잘하는 겁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보도를 접할 때면 이 사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들을 위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단체를 드러내는 마음이 더 강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곤 합니다. 사진은 단체의 업적으로 기록되겠지만 추운 겨울 날씨에 사진사 앞에 서 있는 그곳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저 슬그머니 선물꾸러미를 놓아두고 오면 안 될까요. 산타할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신부님들이 경고하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봉사나 기도, 자선이 ‘선’을 가장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영어의 묵음처럼, 그저 있어도 없는 듯이 행하는 봉사이고 이런 사랑의 이어짐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