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영입인재 이훈기 전 기자만 경선 후보 공천 받아
22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인천 시민사회·재야 인사들이 현실정치의 벽 앞에 섰다.
올곧은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세웠지만 정당 공천 벽에 막혀 뜻을 접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출마를 준비한 인천의 시민사회·재야 인사는 윤대기 변호사, 김재용 변호사,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전 정책위원장, 이훈기 전 OBS 기자가 꼽힌다.
윤 변호사는 출마의 뜻을 접었다.
그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인천지부장과 인천시민사회단체여대 공동대표, 인천시 초대 인권위원장, 인천공항공사 상임감사위원 등을 지냈다.
인천 출신으로 줄곧 지역에서 활동해왔고, 인천의 정치권 세대교체가 거론될 때마다 첫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동안 출마 권유를 고사해왔던 그는 올해 1월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총선 출마 의지를 보였다.
그의 고향인 부평구와 계양구, 새로운 선거구가 생길 서구 등을 출마 예정지로 검토했다. 인재영입 등을 통해 출마를 타진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윤 변호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했다. 그는 "주변에서 내 탓이 아니라고, 인천의 힘이 약했다고 위로의 말을 해준다. 동의하는 면도 있다"면서도 "준비가 부족했다. 정치인으로서도 나이브(순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천의 현역 국회의원 일부가 윤 변호사의 인재영입 등을 추진했지만, 당 핵심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분간은 현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면서 지역사회와의 소통도 열심히 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는 더 치밀하고 치열하게 준비하겠다"고 차기 총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김재용 변호사는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장정구 전 위원장은 출마가 좌절될 위기다.
김 변호사는 민주당·진보당·새진보연합 등 야권 연합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공천을 신청했고, 현재 서류심사가 진행 중이다.
민주당이 추천할 20명 안에 드는 게 목표인 그는 "인천 시민사회단체들의 출마 권유가 있었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 라인업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도 있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해 인천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애써왔다"며 "이제 국회에 들어가 윤석열 검찰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확립, 평화통일 정립을 위해 일하고자 한다"고 했다.
김변호사는 1986년부터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40대 중반이었던 2006년 사법시험(연수원 38기)에 합격해 인천에서 변호사를 개업한 뒤에도 재야에서 시민사회 활동을 지속해왔고,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동암역 북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순번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인천 서구 출마를 선언한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전 정책위원장은 정당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인천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명이다.
계양산 골프장 건설과 경인 아라뱃길(옛 경인운하) 조성에 반대하는 계양산시민자연공원추진위원회·경인운하백지화수도권공동대책위에서 각각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환경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총선 출마를 결정한 그는 앞서 인천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민주당 등에 자신의 영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서구 선거구 3곳의 공천 심사가 마무리되면서 기성 정당 간판을 달고 출마하는 길이 막혀 조국신당(조국혁신당)에 영입을 제안하는 것부터 무소속 출마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장 전 위원장은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해법의 공론화를 위해 나와 같은 현장의 환경운동가들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며 "기성 정당들이 당락에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총선에서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가 다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윤 변호사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지역에서 얼마나, 어떻게 활동했는지보다 누구와 연줄이 있느냐에 따라 출마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정치 아니겠나. 내 스스로 이름값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하며 못내 씁쓸해 했다.
이훈기 전 OBS 기자는 앞선 세 인사보다 사정이 낫다. 그는 언론계 인재로 민주당에 영입돼 남동을 선거구 후보 경선 경선을 치르고 있다.
이훈기 전 기자는 인천 언론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iTV 재직 시절 대주주와 회장의 전횡에 맞섰고, iTV의 재허가 취소를 받은 뒤 'OBS 경인TV'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지역언론 출신인 그가 민주당 영입인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활동 무대가 인천보다 중앙이었던 점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대외협력담당관을 맡았고,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활동했다.
다만 이 전 기자와 함께 언론민주화를 위해 민주당이 영입한 노종면 YTN 전 기자가 전략공천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차별을 받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언론과 중앙언론 기자의 인지도 및 인맥 차이에서 비롯된 차별이라는 것이다.
정당 공천 벽에 막힌 지역 시민사회·재야 인사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갈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화가 강화되고 있다. 이제 국회에서 지역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며 "모든 정치적 논리가 중앙화된다면 인천 같은 수도권마저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치의 중앙화는 자연스런 일이며, 출마 의지를 가진 당사자들이 강한 권력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천의 한 정당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법을 만드는 일인 만큼 정치의 중앙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정치인들은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 예전처럼 지역 몫이 당연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