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용치
“주민들 어선도 부딪혀서 깨진 적도 있어요”
“심리적으로 안심이 된다는 주민들도 있어요”
점박이물범을 관찰하기 위해 찾은 백령도의 하늬해변에는 바다를 향해 철제구조물들이 늘어서 있다. 천연기념물인 맨틀포획암분포지와 점박이물범을 만날 기대감은 이내 궁금증으로 변한다. 용치라는 시설이다. 용의 이빨이라는 뜻의 용치(龍齒, Dragon's Teeth)를 위키백과에서 검색하면 제2차 세계대전 중 처음으로 사용된 방어시설로 탱크 등 기계화 군대의 진행하는 방해하기 위한 것이며 철제 용치나 콘크리트 용치가 있다고 나온다.
인천은 해안도시이며 섬섬도시이고 접경지역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국방과 관련하여 특별한 시설들을 해안에서 볼 수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용치이다. 백령도와 대청도, 연평도에서 볼 수 있다. 인천은 해안이나 섬으로 선박을 이용한 상륙을 막기 위한 시설로 기본적으로 콘크리트 기초 위에 철제구조로 되어 있다. 서해5도 용치의 위쪽 철제구조는 3m가 넘는 대못같이 뾰족하고, 아래의 콘크리트 기초는 가로, 세로, 높이 약 1m의 사각뿔대 모양이다. 서해5도 용치들은 3줄로 나란하게 늘어서 있는데 바다를 향해 약 45도 기울기로 서 있다. 그렇게 백령도와 대청도, 연평도 해안에는 용치 수천 개가 꽂혀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1970년 후반에서 80년대 중반 설치되었는데 용치로 인해 주민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용치는 적을 위협하는 존재만이 아닌 주민들의 가슴에 대못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용치를 바라보면서 방어시설로 안도감도 들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접경지역으로의 서해5도 처지를 환기했을 것이다. 용치가 설치되면서 어디는 항구의 기능이 상실되고 어디는 해수욕장이 폐쇄되었고 또 어디는 어장이 황폐화되었다. 그런 용치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녹이 슬고 따개비가 붙고 굴이 돋기도 했다. 적으로부터 섬을 지키는 방어시설로의 용도가 무색하게 지금은 대부분 쓰러지고 망가져 있다. 녹슨 고철과 삭은 콘크리트 덩어리의 용치는 서해5도 해안에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포구에 모래가 쌓여 바깥에 새로 제방을 쌓았는데 거기도 모래가 많이 쌓였어요”
“저기 검게 삐쭉삐쭉 보이는 게 용치에요”
대청도 옥죽포에는 모래가 계속 쌓이고 있다. 모래날림을 방지하기 위해 방풍림을 심었는데 모래가 언덕으로 올라가지 못해 해안이 쌓이고 있다. 대청도 처녀는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청도에는 모래가 많다. 방풍림 조성으로 모래날림 문제는 해결했지만 겨울철 바람이 불면 사구로 이동해야 할 모래가 해안에 쌓이면서 포구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포구 옆 용치도 모래에 파묻혀 끝부분만 간신히 보일 뿐이다. 관광객이 늘면서 대청도 옥죽포해안사구의 옛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용역이 진행 중이다. 옥죽포 해안사구는 과거 활동 사구이며 산을 오르는 클라이밍(Climbing)사구로 백령·대청국가지질공원의 핵심 지질명소이다.
연평도의 용치는 주민들이 직접 이용하는 해변에 설치되어 있다. 안보교육장을 지나 해안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코너를 돌면 새마을리다. 새마을리 해변에는 용치와 함께 굴양식와 그물용 말뚝이 마구 뒤섞여있다. 용치는 해안 가까이, 굴양식과 그물용 말뚝은 저만치 바깥에 있다. 전봇대 모양도 있다. 대부분은 쓰러졌고 콘크리트 흔적만 남은 것도 많다. 몇 년전 주민들이 어장 복원, 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철거를 요청했다고 하는데 아직이다.
몇 년 사이 쓰러진 용치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새마을리 반대편은 둥글둥글 돌멩이와 곧은 모래 해변이 일품인 구리동 해변이다. 조기박물관, 망향전망대와 함께 연평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다. 파라솔까지 설치되어 있고 탁 트인 모래해변으로 여름철 조용하게 피서하기 좋은 곳이다. 구리동 해변의 용치는 훈련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군에서 상당수를 철거했다는데 해변 양옆으로 콘크리트와 철제 잔재가 남아 있어 관광객의 안전을 위협한다.
2019년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같은 해 소청도의 국가철새연구센터가 운영을 시작했다. 봄철이면 탐조객들은 어김없이 소청도를 찾는다. 2021년 백령도 진촌마을과 하늬해변은 환경부지정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가)생태관광체험센터설립 준비가 한창이다. 대청도에서는 얼마 전 옥죽포해안사구 인근에 국가지질공원센터설립을 위한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 용치와 관련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예술작품으로 찍은 사진들도 있고 군사유산으로 인식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연구원은 임진강과 공릉천 등 하천에 설치된 용치와 관련하여 정전 70주년을 맞아 '전쟁과 분단이 남긴 유산: 용치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서해5도에 관광객이 차츰 늘고 있다. 다양한 관광객이 서해5도를 찾으면서 다양한 볼거리에 관심을 갖는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온탕과 냉탕으로 오가는 남북관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 철옹성 같던 용치도 세월이 지나면서 녹슬고 삭아 쓰러졌다. 최첨단 감시장비가 생겼고 무기도 첨단화되었지만 서해5도 용치는 군사유산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해안방치폐기물이 되었다. 연평도 포격 이후 해안의 능선을 따라 콘크리트 요새가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