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종도에 고려 중기 무신시대 문하시중을 지낸 두경승의 사당(백운로414번길 83-36)과 묘지, 묘비 등이 볼성사납게 방치되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역사문화 유물과 유적지가 많지 않은 영종도에 없는 유적지도 발굴해 관리해야 판에, 역사적 사실(史實)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에다 묘지 등 유적도 멀쩡한데 방치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두경승(미상 ~ 1197년(신종 1))은 고려 무신정권 시기의 무장으로, 3기 무인정권의 수장인 이의민의 경쟁자였다. 명종의 신임으로 문하시중이 되어 명종을 가까이 보필해오다가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쥔 최충헌에 의해 명종은 폐위되고 두경승은 자연도(영종도)로 유배가 2달만에 울분을 못이겨 죽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록에따르면, 1173년(명종 3) 김보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두경승은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민심을 수습하였고, 이듬해 서경유수 조위총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서북면병마사를 거쳐 상장군지어사대사(上將軍知御史臺事)로 승진하고, 이어 공부상서, 호부상서, 추밀원부사, 참지정사, 평장사, 문하시중, 중서령(中書令) 등의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두경승은 잇단 무신정변 때 다른 무인들과 달리 홀로 전문(殿門)을 지키면서 남의 재물을 조금도 빼앗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두경승 사당은 현재 쓰레기 더미에 둘러싸인 채 열쇠로 잠겨있고 사당 안에는 개 2마리가 지키고 있다.
사당 앞에는 쓰레기로 가득찬 폐차 차량이 있으며, 연탄재와 커다란 냉장고 등 각종 생활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실정이다. 사당 옆에는 쇠 철망으로 된 개집이 울타리처럼 연결되어 있고 개가 마구 짖어댄다.
이웃 주민은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살고 있으나, 그를 본지는 한참 되었다고 한다.
한편 두경승의 묘지는 사당과 조금 떨어져 영종초등학교 금산분교 인근에 위치해 있다. 분교 옆길로 울타리를 넘고 도랑을 건너, 산자락의 무성하게 엉켜있는 풀을 헤집으며, 험한 길을 따라 가야 한다. 멀지 않아 산의 위쪽으로 무덤 지킴이 망주석과 문인석이 보인다. 두경승 장군과 부인의 묘소이다.
기본적인 형태는 비교적 잘 가꾸어져 있다. 망주석과 문인석도 양쪽에 서있으며, 상석도 있고 묘비에는 글자가 많이 적혀있다. 돌아가신 분과 후손들의 설명을 적은 듯하다.
이같이 방치된 두경승 유적에대해 우선 사당 입구에 안내판을 세워서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어 구 또는 시 차원에서라도 유적지 실태를 파악하고 제대로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