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활주로 사곶해변의 옛 풍경, 백령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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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활주로 사곶해변의 옛 풍경, 백령도의 미래
  • 장정구
  • 승인 2024.08.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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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해안을 걷다]
(8) 방풍림과 해안사구 - ② 백령도 사곶해변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기회와 용기의 공간이기도 한 역동적인 공간이다. 해류와 조류를 따라, 밀물과 썰물에 따라 해안은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조석간만의 차가 큰 황해의 해안은 더욱 그렇다. 해안의 도시들은 밀물과 썰물, 바닷바람, 외부침입 등 다양한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 따라 성장하고 변해왔다. 자연현상에 따라 촌락이 위치하고 삶이 이루어졌다. 좀 더 적극적인 해안의 토지이용을 위해 제방을 쌓았고 갯벌을 매립했다. 그런 해안이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해안침식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나무꾼, 해안을 걷다>의 필자, 환경운동가 장정구는 강원도 두메산골 출신으로 별명이 나무꾼이다. 한강하구에 위치하여 더욱 역동적인 인천, 문명의 바다 황해의 해안. 나무꾼의 걸음으로 해안으로 걷고 나무꾼의 생각으로, 그 해안을 주제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기록하고 이야기한다. 

 

러시아 토포지도의 옛 백령도. 빨간색 실선의 안쪽이 사곶이다
러시아 토포지도의 옛 백령도. 빨간색 실선의 안쪽이 사곶이다

 

“밀물 때면 용기포에서 화동쪽으로 물이 들어와요”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천연비행장으로 천연기념물 제391호. 사곶해변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20여년 전 백령도를 처음 찾았을 때 여객선에서 옛 용기포항에 내리자마자 승용차로 사곶해변을 질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관광버스 등 자동차로 사곶해변을 달리는 것은 백령도 관광의 필수코스였다. 사곶해변이 천연비행장 활주로임을 확인시켜주던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용기포 구항 쪽의 입구는 바리케이트로 막아놓았고 중간쯤 사곶해변 지질공원안내소 앞에는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차량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하루 두 번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바퀴자국은 금새 사라질 거다. 그런데도 언제부턴가 차량이 모래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량출입을 막는 것은 해변 보호보다는 차량보호가 주목적임을 백령도 주민들은 모두 알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필자는 상괭이 사체 발견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양경찰차가 모래에 빠져 인근에서 해양쓰레기정화활동을 하던 군장병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함께 차를 밀어서 꺼내는 장면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곶(串)은 바다로 뾰족하게 돌출된 지형을 의미한다. 사(沙)는 모래의 한자어다. 결국 사곶은 바다로 돌출된 모래 지형이다. 실제로 러시아 토포지도에서 예전의 백령도 사곶을 확인하면 남서쪽으로 돌출되었던 지형임을 알 수 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100m~150m 폭으로 누운 낚시바늘 모양으로 소나무숲이 형성되었다. 또 화동 쪽으로 반듯하게 돌제방을 쌓고 백령호가 만들어지면서 이제 사곶에는 ‘사’만 남고 ‘곶’은 사라졌다.

 

천연비행장활주로로 70년대초까지 비행기가 뜨고 내렸던 사곶해변은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작은 자동차도 모래에 빠지기 일쑤다.
천연 비행장 활주로로 70년대초까지 비행기가 뜨고 내렸던 사곶해변은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작은 자동차도 모래에 빠지기 일쑤다.

 

“솔방울을 말려서 소나무 묘목을 키웠어요”

사곶 이장을 지낸 변신석(70) 어르신은 1970년초 사곶을 떠올리면서 적지 않게 신바람이 났다. 북포국민학교 교장이던 김상희 교장이 사곶국민학교로 부임해서 정부지원을 받아 방풍림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며, 1971년 4월부터 3~4년간 산에서 어린 나무를 캐다 심고 솔방울을 말려서 묘목장을 조성한 일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처음에는 데스트용으로 리기다소나무도 심었는데 대부분 죽었다, 결국 백령도에 자생하는 소나무를 이용했다. 밀가루를 제공하면서 주민과 학생을 독려했고 이런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농사 짓을 땅이 부족해 백령도 마을 중에서도 가난했던 사곶, 그래서 딸 시집도 안준다던 사곶에서 방풍림 조성 이후 제대로 된 농사가 가능했다. 처음에는 통일벼 계통의 밭벼를 심었고 이후 사곶사람들도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농경지나 집, 목장 등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한 산림, 방풍림(防風林, windbreak forest)의 사전적인 의미다. 장소에 따라 내륙방풍림과 해안방풍림으로 나누어지는데 해안의 방풍림은 주로 폭풍이나 모래날림 등을 막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나라 해안방풍림은 1970년대 초반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새마을사업, 산림녹화사업과 맞물려 진행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때 심은 소나무들의 가슴높이 둘레길이가 약 80cm정도이다. 그전부터 있던 소나무들은 180이 넘고 230에 달하는 나무도 있다.

60년대 후반 주택을 개량하기 전 사곶의 집들은 때막집이었다. 사곶의 모래언덕에 자라는 풀로 지붕을 엮은 초가집이다. 당시 사곶은 백사장 뒤로 높다란 모래언덕이었고 해당화가 지천이었다. 모래언덕 풀밭에서는 소를 먹였는데 드문드문이었지만 소나무도 있었다. 방풍림 조성이후 모래가 날리지 않게 되면서 도로를 방풍림 바로 뒤까지 약 40미터 정도 해안쪽으로 옮겼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 이상 대후리로 물고기가 잡을 수 없게 되었고 돌덩어리 같던 해변은 발목까지 빠지는 곳들이 생겨났다.

 

사곶전망대에서 바라본 사곶해변과 제방 그리고 방풍림. 오른쪽은 용기포와 용기원산, 중앙에서 왼쪽이 남산과 사곶의 방풍림이다.
사곶전망대에서 바라본 사곶해변과 제방 그리고 방풍림. 오른쪽은 용기포와 용기원산, 중앙에서 왼쪽이 남산과 사곶의 방풍림이다.

 

“미군수송기가 오면 북포리에서 사곶까지 한달음에 뛰어왔어요”

백령도에는 1970년대 초까지도 미군이 주둔했고 사곶해변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일했다는 지질공원해설사는 실제로 미군수송기를 탄 적도 있다며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북포리에서 사곶까지 30분을 달려와 헤이~진껌, 기브미어 초코렛트를 외쳤단다. 당시 수송기는 화동에서 용기포 쪽으로 착륙하고 용기포에서 화동쪽으로 이륙했다. 비행기가 불시착한 적도 있는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던 것 같다고. 지금도 사곶해변에서는 해병대원들의 상륙훈련과 함께 헬기의 이착륙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남포리 콩돌해안에서는 아직 파도에 콩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일품이다. 동글동글한 콩돌로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 사진을 찍고 콩돌을 던지며 동영상을 찍는다. 사곶은 곱고 단단한 모래였다. 백령도에는 펄도 있었다. 간척으로 사라진, 호수에 잠긴 북포리는 펄이고 갯골이었다. 펄과 모래 그리고 콩돌은 각각 다른 해안의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다. 파랑과 조류에 따라 어디에는 모래가 쌓이고 어디서는 콩돌이 만들어진다. 또 어디에서는 펄이 쌓인다. 백령도에서는 모두 관찰된다.

사곶해변과 콩돌해변은 이미 국가자연유산이고 국가지질공원명소이다. 사라진 펄까지, 작은 백령도의 좁은 공간에서 만들어진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게 된다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해양학자들은 이야기한다. 백령도가 유네스코 지질공원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사곶해변이 천연비행장으로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접근성 개선을 위한 공항건설도 중요하지만 사곶해변이 스펀지화가 되는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된다.

살기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백령도의 미래는, 사곶의 미래는 옛 풍경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백령도 주민들은, 사곶해변에서는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한 달에 두 번 군장병들까지 함께 나서 해변을 청소한다. 중국산 페트병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백령도 해안가 페트병 중 10개 중 9개가 중국산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사곶에는 100~150m폭의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예전부터 있는 굵은 드문드문 소나무도 있다.
사곶에는 100~150m폭의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예전부터 있는 굵은 드문드문 소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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