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주 매력 홍보대사, 이성렬 '옹근달 양조장' 대표
남동구 만수동. 인천 도시 한복판에 양조장이 있었다. 낡은 건물. 겉으로 보기에 간판 하나 없다. 미심쩍어서 하며 3층을 걸어 올라가니 <옹근달 양조장>의 정갈한 간판이 보인다. 옹근달은 보름달의 많은 다른 이름들 중 하나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자 큰 냄비에 무언가 한창 휘젓고 있는 옹근달 양조장의 주인장 이성렬 선생님(56)을 만날 수 있었다.
필자에게 전통주를 직접 빚는 사람의 이미지란, 그저 옛 화장품 광고에나 나오던 ‘일본 주조사(酒造士)들의 손이 고왔다.’ 정도로 상당히 처참한 인식 수준이다. 이런 필자를 환히 웃으며 반겨주었다. 누룩과 물, 쌀을 냄비에 넣어 손으로 정성스레 합치고 있는 모습은 신기했다. “저게 진짜 술이 된다고?” 싶은 모습이다.
4년여 동안의 엘리베이터 없는 3층 건물살이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또 찾는 사람이 늘어나며 좁게 느껴진 공간 탓에 9월 말에는 이사를 앞두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양조장을 내려면 불법건축물은 안 돼요. 용도 변경가능한 건축물이어야 하죠.” 고심 끝에 상가보다는 주택을 매입해서 옛 주막처럼 꾸미고 있다고 했다. 지하는 양조장을, 1층은 원데이 클래스 등 지금처럼 교육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술 거르는 날을, 문화를 소비하고 즐기는 아이템으로 삼아 동네 잔칫날처럼 전도 부치고 동네 어르신들도 모실 거란다.
이성렬 선생(이름으로 남자로 오해하지 않기를)이 그리는 새살림의 풍성한 이야기에 듣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옆에서 전이라도 부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냄비 안을 구경 시켜주었다. “여기 동글동글 올라와 있는 게 거품이에요” 이제 그 거품들이 점점 많아질 거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한참 발효 중일 때의 소리는 마치 빗소리 같다며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향은커녕 맛도 상상이 잘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째서 전통주였을까?
원래부터 선생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막걸리는 다음날 머리도 아프고 입이 텁텁해서 별로였다고. 한참 와인에 빠져있던 어느 날, 직접 빚은 술이라며 마셔보라고 권유를 받았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거절하다가 향을 한번 맡은 순간. 도저히 믿기 힘든 향이었다고 한다. 술을 마셔도 숙취도 전혀 없고 코로 맡아도 풍성한 향은 입에 머금는 순간 풍미까지 넘치는데, 황홀할 지경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전통주의 매력에 푹 빠져 직접 빚기 위해 서울로 배우러 다녔고 이제는 인천에서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청자색의 예쁜 찻잔에 오양주를 담아 맛보게 해주었다. 아까 본 반죽이 시간이라는 마법을 통해 이런 전통주로 변신한다니 호기심이 일었다. 입에 한입 머금자, 입안 가득 퍼지는 꽃향기가 코로 숨 쉴 때마다 몸 안으로 더 깊게 드나든다. 향이 깊고 진해 한번 놀랐고, 술을 삼킨 뒤에도 잔향이 호흡마다 느껴져서 한 번 더 놀랐다. 그가 전통주에 빠진 이유가 한 번에 이해가 됐다.
전통주 양조장을 인천에서 운영한다는 건?
인천의 양조장은 네 군데 정도로 도시 규모에 비해 양조장이 적다. “경기도는 매해 킨텍스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서울도 물론이고요. 의성, 예산, 여주도 쌀로 유명한 거 아시죠? 여주에서도 행사가 있어요.” 인천 역시 강화도 쌀이라는 브랜드를 알리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시의 관심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 느껴질 정도다. 미국의 버번위스키 사례를 말하며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조차도 자국 농산물을 지키고, 자국의 주류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우리나라 술의 미래를 위해서 관심을 더 가져야 할 때예요.”
계승되고 발전시켜 유지되어야 문화로 지역의 특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가치 소비를 한다는 MZ세대가 찾는 특별한 술로 요즘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이 전통주다. 서울 용산, 이태원 등지에서도 핫한 전통주 가게들이 많은데 아직 인천은 조용하다. 인천에서도 전통주 품평회를 열고 쌀이 지원된다면 강화 쌀의 우수성도 알리고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며 주인장은 힘을 주어 말한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일제 강점기를 기점으로 명맥이 끊겼단다. 우리나라는 주막만 39만 개 있었으며 그 말은 39만 가지 맛의 전통주가 있었다는 얘기라고 한다. 일제와 625전쟁을 거치며 극도로 가난해진 나라에 먹을 쌀도 없는데, 술빚기는 사치로 금지되며 우리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라고 한다. 그가 5호담당제를 아냐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잘 못 알아 듣고 네? 라고, 반문하자 “북한에서 다섯 가구당 한 명의 선전원을 배치한 것처럼” 다섯 집 중 한집 정도는 술을 빚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빚은 이유는 접객(接客)이었다고 한다. 집들이 때는 자기가 빚은 술을 손님에게 대접하는 문화의 재부흥을 기대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정성 들여 술을 빚는다.
술은 문화다. 전통주는 음미할 수 있고 풍류까지 느낄 수 있어 지금 정서와 딱 맞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누룩, 쌀, 물로만 빚어도 만드는 사람에 따 맛이 달라진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의 특성과 손맛, 누룩의 차이 때문에 맛이 달라진다. 똑같은 맛은 착시라며, 맛을 규격화할 필요가 없다. 태생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만들 필요가 없으며 변화무쌍한 다양한 아이텐티티야 말로 전통주의 장점이라고 했다.
전통주에 “색소와 향”을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시장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일어나는 일로, 미국의 주류시장에서도 버번위스키의 전통성이 지켜지는 이야기를 한 번 더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정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딸기를 넣은 전통주에 딸기 우유색이 안 나는 게 당연하다는 건, 우리 같은 사람이 시장을 이해시켜야죠. 색소와 향을 넣는 방법은 문화의 퇴보죠.”
때로는 소녀처럼 첫사랑에 빠진 얼굴로, 때로는 단호한 투사의 얼굴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야기하는 이성렬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진정, 그의 꿈을 응원하게 된다. 누룩을 이용해 아주 우수한 술을 빚던 나라다. 양반댁에서도 빚던 고급 양조 기술을 가진 우리 민족이다. 그의 바람처럼 다섯 집 중 한 집 정도는 술을 빚는 나라가 될 수 있게 정책과 시의 지원을 뒷받침받아 전통주 시장의 제대로 된 저변확대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