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연수동 ‘어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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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가 밝은 다음 날!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11월 중순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서 꼼짝 못 하고 거의 1개월 반 동안 외출을 자제하며 살았기에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식사는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서울에서 오는 친구가 나와 또 다른 박사 친구를 태우고 목적지인 연수동 ‘어촌마을’에 도착했다.
첫 느낌은 도심 골목 속에 있는 그런 맛집(?) 정도의 느낌이었다. 조용한 골목에 있는 식당의 모습에서 들떴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목소리가 작아졌다. 식당 안은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 아닌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이었는데 필자에게는 잘 맞는 느낌이었다. 뭔지 모를 편안함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제법 넓은 식당에 손님이 우리만 있어 조금은 위축이 됐으나 대략 20분 후부터는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많은 손님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식당 안이 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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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내부를 구경하다가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보게 되었는데 가격이 상당히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ㅎㅎ)
아무튼, 우리는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는데 필자는 생선구이 정식 3인분과 제철 회 소(小)자를 주문하려 했으나 친구 중 한 명이 양이 너무 많아 다 못 먹을 거 같다면서 생선구이 정식을 2인분만 시키자고 했다. 필자는 그래도 되는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상관없다고 하면서 “밥은 세 개 드리면 되죠?” 하는 모습에서 직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요즘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기는 했기에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서 먹는 양이 줄어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했다. 가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가 생각났다.
조금은 서운한 마음을 친구들과 재미있는 대화로 달래던 중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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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밑반찬으로 상추 겉절이, 새송이전, 익힌 양배추, 계란찜, 콩나물무침, 주꾸미 숙회, 간장게장, 불고기, 어묵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너무도 실속있는 식단이었다. 특히 필자가 좋아하는 계란찜과 간장게장, 불고기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눈에 띄게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구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메인 음식인 생선구이는 고등어와 조기 그리고 박대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져 나왔는데 직원이 먹기 쉽게 손으로 잘 다듬어 주었다. 회는 농어회가 나왔다.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7~8년 전쯤 고흥으로 여행 갔었던 일이 생각났다. 저녁 7시 넘어 도착한 집사람과 나는 배가 고파서 제일 먼저 식당으로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주문했는데 이곳과 비슷하게 네 가지의 생선과 열 가지 이상의 밑반찬이 나왔다.
그 맛은 너무도 훌륭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돌게 알로 만든 알젓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도 훌륭했던 돌게 알젓은 맛도 맛이지만 조그마한 돌 게에서 일일이 손으로 알을 채취해서 젓갈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해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성에 더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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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기억을 뒤로하고 눈 앞에 펼쳐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일단 불고기를 맛보았는데 슴슴한 감칠맛이 역시~~라는 감탄사를 나오게 했다. 짠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입안에 착 달라붙는 맛이었다.
새송이 전은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었고 계란찜은 부드러운 맛이 나의 입안을 즐겁게 해주었다.
너무도 훌륭한 맛에 사장님 고향을 물어보게 되었는데 부안이라고 듣는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약 3년 전 앞에 있던 친구들과 한겨울에 백합 조개를 먹으러 부안을 찾은 적이 있었다. ‘계화 식당’이라는 곳을 갔었는데 그때의 백합 요리는 지금 생각해도 침이 넘어간다.
백합죽, 백합탕, 백합 전, 백합 무침, 백합찜 등 백합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다 먹어 본 느낌이었고 실제로 다 먹었다. 같이 갔던 친구들도 우와~~하는 감탄사가 나왔었다. 물론 지금 눈앞의 음식은 종류와 맛은 다르지만 ‘계화 식당’에서 느꼈던 부안 음식의 느낌이 살아나는 맛이었다. 모든 반찬 하나하나가 재료의 맛을 느끼면서 감칠맛이 입안을 감싸는 느낌이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초장의 매콤달콤한 맛과 쫄깃한 주꾸미 숙회와 어우러진 맛은 필자를 안면도에서 친구들과 주꾸미 낚시를 하며 즐거웠던 시절로 이끌어주었다. 간장게장 또한 훌륭했다. 단짠의 맛은 분명한데 자극적이지 않은 짠맛을 느끼면서 간장이 이렇게 단맛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밥과 같이 나온 된장국은 참치 집에서 나오는 장국이 생각났다. 과하지 않은 국물의 맛이 밥을 쉽게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생선구이를 보고 있으니까 집사람이 해주는 생선구이가 생각났다.
사실 필자는 집사람이 구워주는 생선구이를 제일 좋아한다. 아시는 분이 제주도가 고향인데 친척분이 생선을 판매하셔서 덕분에 우리는 질 좋은 생선을 사기도 한다. 은갈치, 옥돔, 제주산 고등어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주로 옥돔을 산다. 굽기도 편하고 비린내가 덜한 옥돔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실은 은갈치는 맛은 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고 고등어는 필자는 좋아하나 집사람은 비린 냄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피하게 된다. 그래서 옥돔을 주로 먹게 된다. 집사람은 후라이 판에 기름을 두른 후 시간을 정확히 재면서 구워낸 옥돔구이는 너무도 맛있어서 매일 구워 먹자고 졸라대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먹으면 물린다고 하면서 안 구워주면 살짝 삐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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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촌 마을에서의 생선구이는 비릿한 고소함을 자랑하는 고등어구이와 약간은 짭조름한 맛의 박대구이, 부드러운 감칠맛의 조기구이 등 너무도 훌륭했다. 밥을 부르는 맛이었다. 물론 짠맛으로 인해 밥을 부르는 것이 아닌 밥맛을 좋게 해주는 맛이었다.
필자는 생선 구이중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생선이 있다. 그것은 여수에서 먹어 본 ‘금풍쉥이’라는 생선이다. 집사람과 여수에 놀러 갔다가 교동시장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처음 본 생선을 먹어 보게 되었는데 비린 맛은 전혀 없이 고소함과 담백함이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맛이었다.
금풍쉥이!!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전라도 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당시 관청에 속해있는 관기 집에서 식사했는데 그때 이 생선이 밥상 위에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너무나 맛있는 이 생선 이름을 몰랐기에 관기의 이름을 따서 ‘평선’으로 부르라고 명하였는데 이후 여수 사람들이 구운 ‘평선’이가 맛있다고 해서 ‘군평선이’라 부르게 되었고 어부들이 ‘금풍생이’ ‘금풍쉥이’ 등으로 부르면서 군평선이 대신 ‘금풍쉥이’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여수에 가게 되면 다른 것은 제쳐두고 반드시 ‘금풍쉥이’를 먹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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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회는 처음에는 실망스러웠다. 제철 회라고 메뉴판에 쓰여있기에 방어 회인 줄 알았는데 농어회라고 하니까 실망감이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겨울철에는 방어회지 무슨 농어회?” 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렸었다. 그런데 한 점을 들어 간장 소스에 찍어 먹어 본 순간 어라? 이게 뭔 일? 겨울 농어라 그런지 쫄깃함이 남달랐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두 번 세 번을 먹었는데도 같은 맛이었다. 더구나 같이 나온 된장 막장을 찍어 먹는 순간 농어회의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봄철 농어가 부드러운 단맛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겨울철의 농어회는 쫄깃함 조금은 탱글탱글한 느낌의 맛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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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어촌마을'에서의 식사는 전라도 특유의 반찬의 다양함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물론 이 집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감정 때문이다. 20여 년 전쯤 가족 여행 중 완도에 들렀는데 허름한 어느 식당에서 식사하게 되었다. 주인 아주머니라고 해야 하나 주인 할머니라고 해야 하나를 고민하게 만든 아주머니께서 우리 가족을 보는 눈이 차디찬 모습이었는데 우리 애들이 계란찜을 잘 먹어서 빈 그릇이 되니까 아무 말 없이 와서는 계란찜을 쓰윽! 하고 내주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리도 돌아가시는 모습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꼈었다. 그래서 필자는 전라도 식당에 가게 되면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어진다. 요즘 말로 하면 ‘츤데레’의 모습이 그립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곳의 음식은 같이 온 친구들도 엄지 척! 하는 맛이었다. 음식의 차림도 너무나 훌륭했기에 마음 따뜻한 분들이 모여서 이곳에서 식사하면 몸과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되어 추운 겨울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