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산 북쪽 아래 소금처럼 반짝이는 기억들, 도화3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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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산 북쪽 아래 소금처럼 반짝이는 기억들, 도화3동에서
  • 유광식
  • 승인 2025.02.17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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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46) 미추홀구 도화3동(연송로)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도화3동 연송로, 2025ⓒ유광식
도화3동 연송로, 2025ⓒ유광식

 

쟁반같이 둥근 정월 보름달을 보며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빌어 보았다. 이러한 바람대로 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면 문제다. 끔찍한 사건‧사고 앞에서 매 무기력해진다. 좀 더 싸워가며 살까 싶은 기분을 스포츠 게임에 얹어 시청하는 건 아닌지 겨울 빙판에 생각이 미끄러진다. 정월대보름 이후 본격적으로 2025년의 기운에 들어섰다. 기온이 조금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 한적한 장소를 찾아 나서 본다. 

 

계단이 있는 주택들(멍멍이 CCTV 있음), 2025ⓒ유광식
계단이 있는 주택들(멍멍이 CCTV 있음), 2025ⓒ유광식

 

2~30년 전까지만 해도 뜨거웠을 것으로 보이는 도화3동(연송로 일대)을 찾았다. 현재 인천대 제물포캠퍼스 북쪽 아래의 동네로, 송림로와 염전로 사이에 있는 주거 구역이다. 마을은 구릉을 따라 오밀조밀하고 동서로는 중앙을 가르는 연송로를 따라 배치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와 보니 예전에 거닐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띄엄띄엄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 새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고 지속적으로 집수리를 해가며 버틴 건물도 있으며, 빈집이거나 철거 후 터만 남은 곳도 있었다. 길은 그대로인데 전반적으로 한층 내려앉은 기분으로, 상점의 간판 또한 8~90년대의 시간을 고스란히 말해 주고 있었다. 마을은 낡은 대신 기억을 살찌워 달리 보면 도톰하다. 

 

영업 종료와 영업 중, 2025ⓒ유광식
영업 종료와 영업 중, 2025ⓒ유광식
유행이 지난(토탈-챤스-만남), 2025ⓒ유광식
유행이 지난(토탈-챤스-만남), 2025ⓒ유광식

 

언제인가 인천대 제물포캠퍼스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적의 빼곡한 충만함은 온데간데없고 군데군데 헐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애틋한 시선이 오가는 와중에, 조금 기다리면 되는데 참지 못하고 눌러대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퍽퍽함을 느낀다. 연립주택 단지의 연세도 오래되었거니와 띄엄띄엄 보이는 주민들 또한 조금 풀린 날씨임에도 옷깃을 꽁꽁 동여매고 걷는다.  

 

연송로 시나리오, 2025ⓒ김주혜
연송로 시나리오, 2025ⓒ김주혜
연송로 상점들, 2025ⓒ유광식
연송로 상점들, 2025ⓒ유광식

 

북쪽으로 커다란 물류센터와 아파트단지가 시야를 가린다. 이곳은 과거 주안염전 부지로, 공장들의 자리는 대체로 갯벌을 매립해 만든 장소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나대지의 모습에 축구와 야구 등의 체육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에는 건물이 들어서고 한쪽에 빗물 저류시설이 설치되었다. 염전공원이라는 이름의 다목적 시설은 2~3층 깊이로 움푹 파인 독특한 모습인데, 인근 주민들의 휴식과 체육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바닥에는 과거 주안염전을 재현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장마 때 이곳이 빗물로 잠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동상들만 빼꼼히 수면 위로 나와 있는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염전공원(우수 저류시설), 2025ⓒ유광식
염전공원(우수 저류시설), 2025ⓒ유광식
염전공원(염전 일을 하는 사람들), 2025ⓒ유광식
염전공원(염전 일을 하는 사람들), 2025ⓒ유광식

 

마을 골목을 걸으며 한 집 걸러 한 집이 스산한 모습이다. 도화산 아래쪽이고 위로는 공장들이 있어서인지 마을 중간에 있는 한 중화 요릿집은 다른 곳과 다르게 뷔페식이다. 인근 공장 직원들의 식사를 감안한 운영 방식으로 생각했다. 오래된 꽈배기 가게를 보자마자 지나칠 수 없다 싶어 꽈배기와 핫도그를 샀다. 요즘도 몇몇 작은 가게에서의 지불 방식은 현금과 계좌이체다. 카드단말기가 없는 상점을 여전히 많이 보는데 사실 포인트나 적립금, 기타 할인 정책에서 소외된 현금 및 계좌이체 방식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만이 없지 않다. (울며 꽈배기를 맛보는 수밖에.)

맛있는 꽈배기 맛에 발걸음을 꼬며 들어선 골목에는 연세 지긋한 아저씨 한 분이 자동차(갤로퍼) 엔진을 예열, 청소하며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전속력으로 달리는 경주마’란 의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대 갤로퍼(은색)는 30년도 넘게 달렸으니 이젠 힘에 부칠 때도 됐다. 엔진룸이 달달거린다. 그래도 장수하며 마을을 대표하는 구성원으로 장소를 빛내주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적벽돌 마감 주택과 절지 당한 은행나무, 2025ⓒ김주혜
적벽돌 마감 주택과 절지 당한 은행나무, 2025ⓒ김주혜
2층 규모의 연립주택, 2025ⓒ유광식
2층 규모의 연립주택, 2025ⓒ유광식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단독주택과 연립 사이사이로 고양이들의 출현이 많았다. 새로운 손님을 맞아 주듯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길을 안내해 주었다. 캣맘의 돌봄이 보이기도 했으나 인간도 인간이지만 거주 환경의 위태로움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많은 고양이와 마주했으니 이제 곧 봄이 찾아오려니 싶다. 한편, 담벼락의 ‘붕괴위험’과 ‘책임못짐’이라는 안내 문구는 마치 ‘떠나라’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재개발 추진의 움직임도 있는 걸 보면 조만간 기존 삶의 블록들은 어지럽게 나뒹굴 게 뻔하다. 

 

위태로운 담벼락, 2025ⓒ유광식
위태로운 담벼락, 2025ⓒ유광식
골목에 부는 개발바람, 2025ⓒ유광식
골목에 부는 개발바람, 2025ⓒ유광식

 

겨울 배관 동파(언수도)를 녹여줄 아저씨의 연락처가 담벼락 곳곳에 박혀 있다. 살며시 전화해서 언마을 개선은 안 되는지 묻고도 싶어진다. 한편, 이 부근의 염전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마을박물관이 있다. 주안5동행정복지센터 1층에는 ‘염전골마을박물관’이 조성되어 장소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인천의 많은 소금밭이 사라졌다. 대신 짭조름한 소금빵이 부풀어 자리한 것처럼 주택과 공장으로 대체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여전히 염전로 아래 연송로 마을은 도화산 자락의 기운과 더불어 인천의 작은 소금 창고처럼 빛나는 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주 보름 달님은 이곳에도 커다란 빛을 선물해 주었던 게 분명하다.    

 

추워도 내 고향 산천이 좋음, 2025ⓒ유광식
추워도 내 고향 산천이 좋음, 2025ⓒ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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