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성 각막이상증 연구’의 새 장을 연 안과의사, 김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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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성 각막이상증 연구’의 새 장을 연 안과의사, 김응권
  • 유사랑
  • 승인 2025.02.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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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제고 사람들]
(74) 김응권 전 세브란스병원 안과병원장 - 유사랑 / 시사만평가, 자유기고가
연대 안과병원 앤더슨 흉상 앞에서
연대 안과병원 앤더슨 흉상 앞에 선 김응권 안과의사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의 연구와 치료를 위해 달려온 여정

 

“한국인 대부분의 머릿속에 평생 기생하는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입술 쪽으로 내려와 구순염을 일으키곤 하는데, 그게 눈으로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 ‘헤르페스성 각막염’이에요. 각막에 세균이 침범해 생기는 세균성 각막염이죠. 그런데 유전으로 생겨나는 각막병변도 있어요. 몸의 다른 곳에는 별다른 이상을 유발하지 않는데, 카메라 필터에 해당하는 우리 눈의 투명한 각막 부위에만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질병군을 유전성 각막이상증이라고 불러요. 예전엔 각막이영양증이라고도 했죠. 유전성 각막이상증 중에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이라는 게 있어요. 처음에는 그냥 과립형 각막이상증의 한 유형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정밀 관찰 결과 기존의 과립형 각막이상증과 형태학적으로 차이가 있고, 이탈리아 아벨리노지역 사람들에게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해서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전 세계에 두루 퍼져있는 유전병이었던 거죠.

안과학회지에 발표한 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만 해도 870명당 1명꼴로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환자가 존재해요. 1988년, 단순히 형태적 구별에 의해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으로 불리다가, 유전학이 점차 발달하게 되면서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이 TGFBI (transforming growth factor beta induced)라는 유전자의 124번째 아미노산에 해당하는 유전변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져, 지금은 R555W로 표기하는 제1형 과립형 각막이상증과 R124H로 표기하는 제2형 과립형 각막이상증(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을 모두 ‘TGFBI 각막이상증’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됐어요. 이런 ‘TGFBI 각막이상증’ 중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의 특징은 라식이나 라섹수술을 했을 경우, 일시적으로는 좋아지는 듯 보이다가도 각막을 덮고 있던 하얀 반점들의 증식속도가 급격히 빨라져 끝내 실명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증을 보인다는 점이에요.

연세대 교수 시절 처음 이런 환자를 접한 이후, 젊은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환자들은 라식이나 라섹을 하게 되면 증상이 더욱 악화한다는 사실을 제가 처음 밝혀내 세계 의학계에 보고했어요. 그날 이후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은 이렇게 계속 씨름하고 있는 일생일대의 과제가 됐죠. 벌써 수많은 임상 치료 결과와 연구논문들을 세계 안과학학술지에 꾸준히 발표해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끝이 안 보이는 어려운 싸움을 지속 중이에요. 때론 실마리가 보이는 듯싶다가도 곧 컴컴한 좌절 속으로 저를 밀어 넣기 일쑤죠. 그 바람에 오랜 시간 수술하고 논문 쓰느라 고장 난 디스크와 협착증만 나날이 도지고 있어요. 그래도 어떡해요? 저만 바라보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맘 편히 쉴 수도 없는데요.”

 

혹한의 추위를 뚫고 연세대 의대 안과병원 5층 교수실의 한 방을 빌려 ‘TGFBI 각막이상증’ 연구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국내 최초이자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김응권 교수(제고18회, 前 연세세브란스병원 안과병원장, 現 새빛안과병원 안과의사)를 인터뷰했다.

설 연휴 내내 독감과 허리디스크에 시달린 불편한 몸인데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김 교수는 제고 졸업 40주년 행사 때 받았다는, 버클에 ‘제고 로고’가 새겨진 수십 년도 더 된 허리벨트를 지금껏 차고 다닐 정도로 모교 ‘제고 사랑’에 진심이다. 안과 의사답게 섬세하면서도 환자를 대하듯 소탈한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시간을 훌쩍 넘기며 진행됐다. 중간중간 일어나 허리통증을 달래는 모습에 필자가 오히려 인터뷰 내내 좌불안석일 정도였다.

 

이 땅에 처음 안과 치료의 여명을 밝힌 앤더슨 부자와의 운명적 만남

 

“현재의 한국 안과 의료의 역사는, 1923년 선교사로 한국에 건너와 세브란스병원 안과 과장을 지낸 앤더슨(Earl W. Anderson) 박사의 공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불가능해요. 당시 미국 조지아주 전체 안과 전문의 2인 중 1명이었던 앤더슨은, 부(富)와 편안한 삶을 등지고 부인과 함께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제물포로 들어왔어요. 강원도 철원에서 선교사와 안과의사로 활동을 시작해 수많은 조선인 안질환자들을 치료했죠. 앤더슨 가족은 일제의 선교사 추방정책으로 1941년 한반도를 뜰 수밖에 없었지만, 평생 한국을 잊지 못했어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대학에서 교육받고 변호사가 된 그의 아들 폴 앤더슨은 한국 의사들을 초청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모교인 에모리대학에 30만 달러를 기탁했고, 연세대학에도 25만 달러를 기부했죠. 지금껏 수많은 한국 의사들이 그 앤더슨 펠로우쉽을 통해 선진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혜택을 받았고, 저 역시 한국인 의사 최초수혜자로 선발돼 에모리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공부할 수 있었어요. 앤더슨 펠로우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저를 필두로 앤더슨 부자에 관한 책들을 펴내 그 공적을 현양하는 데 힘쓰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기부(도네이션)에도 동참하고 있죠.”

 

(2015년11월20일)Mr. Paul H. Anderson과 함께-Atlanta GA USA
(2015년11월20일)Mr. Paul H. Anderson과 함께-Atlanta GA USA

 

김응권 교수는 1955년 인천 중구 율목동에서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답동성당 근처에서 ‘김외과 의원’을 운영하던 외과의사였다. 그 바람에 어릴 때부터 병원을 놀이터로 여기며 자랐다. 김 교수의 형님도 대학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했고, 현재 미국에 있는 김 교수의 두 자녀(딸과 아들)도 모두 의사다. 3대가 내리 의사 집안인 셈이다.

김 교수는 인천신흥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를 거쳐 제물포고등학교를 18회로 졸업했다. 1974년 연세대 의대에 들어가 군대는 군의관으로 다녀왔다.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연세대 의대 안과 조교수를 하다가 에모리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돌아온 이후, 연세대 안과학 교실 부교수와 주임교수, 안과병원장 등을 지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도 국내로 불러들여, 제때 병역의무를 마치게 할 정도로 애국심이 남다르다. 역시 의사 출신인 부인과의 첫 데이트가 인천 연안부두였을 만큼, 인천에 대한 애착도 끈끈하다.

 

연대의대 시절 농촌의료 봉사
연대의대 시절 농촌의료 봉사

 

실미도 사건의 불똥이 튀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보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거의 온종일 야구만 했던 거 같고, 중학교 때는 당시 멕시코 월드컵 영향으로 펠레나 에우제비오 흉내를 내며 축구만 했던 기억이 나요. 인중 시절부터 맛 들이게 된 테니스는 제고 시절로 이어져 틈만 나면 테니스장에서 놀았고요. 낚시도 열심이었는데, 낚시 때문에 제고 1학년 때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어요. 당시 제고에는 ‘월요고사’라는 게 있어서 주말마다 시험공부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죠. 그런데 가뭄에 콩 나듯 시험을 거르는 주간이 있었어요.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낚시를 가곤 했죠. 그날도 월요시험이 없는 날이라 아는 형님들과 송도낚시터로 낚시를 갔는데, 그날따라 낚시터가 문을 닫은 거예요. 그래서 협궤열차를 타고 다시 안산 고잔동까지 가게 됐고, 거기서 붕어 몇 마리 낚아 밤이 이슥해져서야 돌아오게 됐는데, 집에서는 저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져 있었어요. 고잔동에서 낚시하는 동안,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실미도사건’이 송도에서 터졌던 거죠.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북파공작원들이 인천 송도 해안가로 상륙해 거기서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총격전이 벌어진 거예요. 인천 시내는 물론 온 나라가 비상이 걸렸는데, 송도로 낚시 간다며 새벽 댓바람에 나간 놈이 저물도록 돌아오질 않으니, 집에서는 필경 제가 변을 당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가 봐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 식구들이 여기저기 제 친구들을 수소문하며 찾으러 다니느라 혼이 다 나갔고, 아버지는 경찰서를 찾아가 실종신고를 하는 둥, 집안이 완전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았어요, 만약 제가 계속 송도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면 진짜 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죠. 지금 생각해봐도 머리끝이 곤두서곤 해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소설로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故 마광수 교수와의 일화도 재미있다. 인하대 교수를 지낸 최원식 교수의 부인인 작은누나의 연대 국문과 동기가 바로 마광수 교수였단다. 연대 국문과를 서로 수석과 차석으로 입학해, 작은누나와 교류가 각별하던 마 교수(당시 대학생)가 국문과 교수님들과 함께 인천 김 교수의 집에 왔다가, 당시 고3 수험생이던 김 교수에게 억지로 맥주를 따라주며 마시라고 부추겼는데, 마침 그 모습을 김 교수의 부친에게 딱 들키고만 것. 머쓱해져 안절부절못하던 마 교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단다.

 

“살아가면서 지금도 가끔 제고 시절 수업 시간을 떠올리곤 해요. 고3때 선생님들이 수업에 들어오시면 입버릇처럼 ‘너희들 지금 수준은 너희 선배들과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며 혹독하게 다그치시다가도, 늦여름께 공부에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싶을 때면, ‘기운 내! 지금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 이 고비만 더 버티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걸 잊지 않으셨죠. 특히 김학권 물리 선생님은 혼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들고 찾아가면, 언제 어느 장소에서라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열과 성을 다해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곤 했고요. 막상 제가 교수가 되고 보니, 제자들과 후배 안과 의사들을 교육할 때마다 제 급한 성질머리에 짜증 섞인 큰소리가 나도 모르게 먼저 나가곤 할 때가 많았어요. 생각할수록 제고 은사님들께 참 많이 죄송하고 낯이 뜨거워져요.”

 

14회 세브란스병원 찬양축제 안과병원팀-뒷줄 좌측 3번째가 김 원장 (2013.9.14)
14회 세브란스병원 찬양축제 안과병원팀-뒷줄 좌측 3번째가 김 원장 (2013.9.14)

 

이제 디스크협착증으로 손을 놓았지만, 인중·제고 시절부터 시작된 김 교수의 테니스 사랑은 지금도 각별하다. 전국 교수 테니스대회 시니어부 B조 복식조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다. 방학 때마다 인천 내려와 테니스에 열중하던 김 교수에게 시련이 찾아온 건 1976년 본과에 진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폐결핵 진단을 받은 것.

멀쩡한 몸으로도 벅찬 의대 수업을 지속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 심각하게 휴학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교수님들과 동료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딱 2주 쉬고 다시 학업을 강행했다. 독한 결핵약과 주사 부작용으로 몸이 버티질 못해 이명까지 생겨나 김 교수를 괴롭혔다. 그래도 악으로 겨우겨우 고비를 넘기며 꾸역꾸역 수업을 들었다. 지금 청력이 좋지 않은 것도 그때의 후유증 탓이란다.

 

2010년 8월 의료원 대학행정회의-연세 의료원 연구처장 시절-뒷줄 우측이 김 원장
2010년 8월 의료원 대학행정회의-연세 의료원 연구처장 시절-뒷줄 우측이 김 원장

 

검사장비들이 많아 선택한 안과와의 찰떡궁합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악착같이 학업을 이어간 덕분에 다행히 낙제는 면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과 선택이 고민이었죠. 부친과 형님을 보니 외과의사는 당시 체력으로는 힘에 부칠 게 뻔했고, 어릴 때부터 각종 도구와 기기들을 유별나게 좋아했던 터라, 검사장비가 다른 과보다 월등히 많은 안과로 방향을 정했어요. 저희 집안이 원래 유전적으로 손을 떨지 않아 미세한 수술에 유리하다는 판단도 한몫했고요. 그런데 그때 안과를 선택했던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안과가 저하고 너무너무 궁합이 잘 맞았거든요.”

 

검사 기계 쪽에도 흥미가 많았던 김 교수는 1998년 굴절수술용 각막고정장치를 직접 설계해 특허를 출원했고, 굴절수술용 조절대, 굴절교정수술용 흡착구도 직접 개발해 역시 특허 출원했다. 2012년엔 백내장 렌즈의 도수를 산출해내는 계산 방법을 미국의 안과학잡지에 발표하는가 하면, 굴절교정술과 각막수술에 대한 의학전문교과서도 공저로 집필한 바 있다. 김 교수가 국제안과학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그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세계적 권위의 안의학전문가들과 공동 집필한 TGFBI 각막이상증에 대한 전문 서적도 공동 책임편집자를 맡아 곧 발간할 예정이다.

 

2009년 국내에서 IMAX 심포지움을 개설했을때의 외국 연자와 -우측2번째 김원장
2009년 국내에서 IMAX 심포지움을 개설했을때의 외국 연자와 -우측2번째 김원장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의 특이증상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다

 

“서두에 설명드린 대로, 아벨리노는 TGFBI 유전자의 124번째 아미노산에 해당하는 유전자변이로 인해 아르기닌이 히스티딘으로 바뀌면서 각막에 하얀 반점들이 생겨나요.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던 작은 반점들이 따로 근시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55세 이상이 되면 점차 커져서 급기야 일부 환자의 경우에는 각막을 완전히 덮어 실명까지 초래하게 되는 무서운 유전질환이에요.

이전까지 그 증상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게 거의 없던 병이었죠. 제가 처음 국내에서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을 접한 건 23살 먹은 여자 환자를 통해서였어요. 그 환자가 근시 때문에 시력교정술인 라식수술을 받았다는데, 수술한 얼마 뒤에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면서 저를 찾아오게 된 거죠. 각막을 검사해보니 예전 라식수술 했던 부위에 하얀 점들이 다수 증식해있더라고요. 여느 각막질환 환자의 경우처럼 수술칼로 그 하얀 반점들을 긁어내고 덮었어요. 수술 후 얼마간 시력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자, 환자도 저도 수술성공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확인해보니, 긁어냈던 그 하얀 반점들이 이전보다 더욱 크고 맹렬한 속도로 증식해가고 있었어요. 이런 케이스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죠. 그렇게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연구와 치료에 매달려 치열한 씨름을 지속해오고 있는 거예요.

그동안 수많은 임상과 실험을 통해 부분적으로 제가 알아낸 다양한 치료법과 증상들을 열심히 세계 안의학회에 논문으로 발표해오고는 있지만, 현재까지 유전성 각막이상증의 근본적이고도 획기적인 치료법은 없다시피 해요. 각막이식이 그나마 거의 유일한 대안인데, 그마저도 재발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다만 증상만으로 일반 각막과 아벨리노를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 없이 라식수술을 받게 되면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환자의 경우 오히려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가 세계 최초로 밝혀냈고, 따라서 근시수술 전에 반드시 아벨리노 유전자 검사를 먼저 받도록 세계 의학계에 추천하게 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죠.

지금은 아예 다른 진료는 접고, 오로지 아벨리노 이상증 환자한테만 집중하고 있어요. 평생 환자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일도, 해본 일도 없는 제가, 남은 생을 온전히 쏟아부어야 할 마지막 과제라고 믿으니까요. 병원 입장에서도 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재정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지만,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없고, 오로지 안의학의 발전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투자와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고요.”

 

김응권 교수는 한국백내장굴절수술학회장(2003. 10.~2005. 10.), 세브란스병원 안과학교실 주임교수(2012. 3~2016. 2), 세브란스병원 안이비인후과병원 병원장(2018~2019), 세브란스병원 안과병원 병원장(2019~2020)을 끝으로 정년퇴직해, 현재는 경기도 일산의 새빛안과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안과의사로 아벨리노 환자들의 치료와 임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로 70줄에 접어든 김응권 교수의 45년간의 천착이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완치에 획기적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게 될 날을 학수고대해본다.

 

2005년 Topcon 안과 학술상 시상 직 후 안과교실원들과 기념사진-중앙이 김 원장 부부
2005년 Topcon 안과 학술상 시상 직 후 안과교실원들과 기념사진-중앙이 김 원장 부부

 

김응권 교수 약력

1974 제물포고등학교 졸업(18회)

1980 연세대 의대 졸, 석사(1983), 박사(1989)

1987 연세대 의대 안과학교실 연구 강사, 전임강사(~1990)

1990 미국 에모리대 방문 연구원(~1992)

1990 연세대 의대 안과학교실 조교수(~1997)

1997 연세대 의대 안과학교실 부교수(~2002)

2002 연세대 의대 안과학교실 교수(~2021. 2.)

2005 각막이상증연구소 소장

2008 연세의료원 연구처장

2012 연세대 의대 안과학교실 주임교수(~2016. 2.)

2018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이비인후과병원 병원장(~2019)

2019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과병원 병원장(~2020)

2021 새빛안과병원 안과의사(~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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