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립 · 획일화시키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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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립 · 획일화시키는 집
  • 홍새라
  • 승인 2012.03.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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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홍새라 / 소설가


날이 추워지면서 걷기를 중단하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며 긴 거리를 고역스럽게 걷는 것보다는 상쾌하게 땀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눈에 뜨이게 내려다보이는 것은 단연 아파트였다. 누가 더 높은가 경쟁이라도 하듯 머리를 불쑥불쑥 내밀었다. 또한 땅 한 뼘이 아까운 듯 산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도 이 아파트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한 곳에 앉아 가까운 곳의 아파트들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멋대가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건물덩어리에 불과해 보였다. 그리고 그 건물 속에 열을 지어 나란히 나 있는 무수한 창문들은 비애감마저 들게 만들었다. 먼 데서 내려다보니 마치 닭장 속의 닭처럼 인간을 사육하기 위해 지어진 틀 같았기 때문이다.

유구하게 축적된 우리 주거문화의 외형을 깡그리 잃어버린 집. 주변 건축물들이나 자연과 어떤 조화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높게만 올라간 집. 저런 곳을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런 아파트들은 군인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평수도 8평이었다. 그러다가 평수 넓은 중산층 이미지의 아파트가 생겨나면서 전국적인 붐이 일었다. 아파트라는 형태의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고 서민들의 계층상승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출현된 것이다. 온통 아파트뿐인 지금의 도시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가? 

강화 나들길을 종주하고 돌아온 지난여름 저녁. 그냥 들어가기가 못내 아쉬워서 맥주를 사들고 집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불이 들어온 아파트 창 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1층에서 20층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위치에서 텔레비전의 불빛이 새나왔기 때문이다. 시야에 들어온 낮은 층에는 어김없이 맞은편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이와 어른들의 모습이 잡혔다. 높은 층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조금 이른 시간에 저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상상해보았다. 1층부터 20층까지 텔레비전처럼 같은 위치에 있는 부엌에서 여자 혹은 남자가 저녁밥을 지었을 것이고, 똑같은 곳의 식탁에서 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퇴근한 이들은 위치가 같은 곳에 있는 욕실에서 샤워를 했을 것이고 아이들은 같은 위치에 배치된 방에 들어가 숙제를 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모두들 벌떼같이 일어나 경쟁하듯 아파트 문을 나설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참으로 비감스러웠다. 똑같은 아파트 안에서 똑같이 동선을 맴도는 이들이 마치 공장에서 매일 생산되는 제품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렇게 생긴 골목을 돌아서 집으로 퇴근하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 텃밭에 많이 연 호박을 따가다가 옆집에 들르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 장미를 예쁘게 가꾸어서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을 잊은 사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과연 인간답게 산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박정희는 1964년 최초로 지은 마포아파트 완공식 연설에서 아파트 보급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구래의 고식적이고 봉건적인 생활양식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인 집단 공동 생활양식을 취함으로써 경제적인 면으로나 시간적인 면으로 다대한 절감을 가져와 국민 생활과 문화의 향상을 이룩한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로도 지속된 그 주택 보급 정책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남겼는가? 개성을 잃고 획일화 된 집의 군사문화화와 내면이 파괴되고 정체성을 잃은 고립화된 시민들의 양산이다. 그의 그림자가 이토록 질기게 우리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 두렵다.

2000년 현재 아파트는 새로 짓는 주택 중 87.9%라고 한다. 우리는 왜 여전히 이렇게 삶을 보듬어줄 그 무엇도 갖지 못한 채 집과 마을과 이것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도시를 이루고 살아가는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집은 여타 문화와 더불어 우리의 의식과 미래를 규정하고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스스로 아파트에 대한 생각을 전환해 구체적으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남을 것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남길 것은 또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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