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 맹위를 떨치던 겨울이 봄에 떠밀려 세월 뒤편으로 물러나고 있다. 아직 꽃샘추위가 앙탈을 부리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온기를 더해가는 햇빛과 바람이 새 생명의 탄생을 이끌어주고 있다.
열흘 전쯤 난대식물을 촬영하기 위해 이틀간 완도수목원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완도는 내가 환갑을 맞기 전에 구석구석 걸어 보리라 마음먹은 지역 중 한 곳이다. 충주에서 가는 데만 5시간 반이나 걸릴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여행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마치고 왔다. 그곳 완도수목원에서 올해 새로 핀 복수초와 노루귀 꽃을 대면하는 행운을 얻었다. 충주는 아직 겨울이 걷히지 않고 있는데 완도에는 이미 봄이 익고 있었다.
겨우내 상록 침엽수를 소개하면서 근근이 버텨왔는데 복수초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곳 식물과 친구하기의 봄을 열어볼까 한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의 높은 산이나 숲 속에 분포하는 식물로 주로 경기 이북지역에 많이 자생한다. 3월 초순부터 줄기 끝에서 한 개씩 피는 꽃은 지름이 3~4cm 정도이며 빛깔은 진한 노란색이다. 꽃잎은 10~30장에 달하며 암술과 수술이 많다. 꽃받침잎 역시 여러 장으로 검은 갈색을 띤다. 잎은 깃털처럼 잘게 갈라지며 잎자루 밑에 녹색 턱잎이 있다. 뿌리의 층 사이에 숨은 눈[隱牙]이 생기는데 이 눈을 잘라 심으면 번식한다고 한다.
복수초는 봄이 채 당도하기도 전에 자신의 체온으로 산자락에 쌓인 눈을 뚫고 꽃봉오리를 밀어 올린다. 나 역시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하얀 눈 속에 핀 샛노란 꽃송이의 환상적인 자태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복수초는 이처럼 눈 속에서 핀다 하여 얼음새꽃, 눈색이꽃 등으로도 불리며 꽃 빛이 황금색이어서 ‘측금잔화’라고도 불린다. 중국에서는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는 뜻에서 ‘설연(雪蓮)’으로 부른다고 한다.
복수초는 한자로 복 福자와 목숨 壽자를 쓴다. 눈 속에서 꽃을 틔울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데서 이름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복수초의 뿌리와 줄기에는 독성이 함유돼 있는데 한방에서는 이를 강심제 및 이뇨제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식물에 독성이 함유된 것은 가장 먼저 꽃을 틔우는 만큼 뜯어먹히지 않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터 잔디밭 곳곳에서 수많은 풀꽃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사나흘 전 겨우 얼굴만 내밀었던 꽃다지가 오늘은 제힘으로 발딱 서서 봄 햇살을 즐기고 있다. 그 곁에서 냉이꽃이 실눈을 뜨고 있다. 주말에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 그것들은 일가를 이루어 화단을 푸르게 바꿔놓을 것이다. 그것들을 바라보노라면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내 적소를 짓누르고 있는 고독도 다 녹아내릴 것이다.
글/사진 : 정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