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뜻이 맞으면 서로 뭉치고, 보기 싫으면 갈라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흩어지고 뭉치는 게 정치권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개성이 강한 인천미술계에서 요즘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1980년대 문예진흥법을 신설하여 신축 건물에 조형미술품을 설치하는 강제 조항이 생겨나면서, 조용하던 조각계가 서로 이권에 따라 이리저리 이합집산을 하는 모습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따가왔다. 조용히 작업실에서 작업만 하던 작가들이 이젠 시장어귀에 나가 자신들의 작품을 파는 듯하게 비쳐졌고,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왜 남의 구역까지 침범하느냐"는 식의 텃세와 멱살잡이식 이전투구가 벌어진 게 '조형물 시장'이었다.
현실적으로 조각가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정보나 인맥을 가진 몇몇 작가에게만 혜택이 집중되고, 중간에서 이권을 가로채 작가들에게 하청을 주는 브로커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이권으로 작가들을 쥐고 흔들어 작가적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만들어 미술계를 쥐락펴락했다. 혼탁한 조형물 시장에서 건축주나 건축 의뢰인들까지 조형물로 비자금을 만든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에게 세금까지 떠안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세상 일이 그러하듯 말이 많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방도를 찾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간다. 올해 초 문예진흥조례를 바꾸어 시-군-구로 이관된 조형물 심의가 광역시로 다시 넘어왔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형물시장을 비판하는 게 아니고 그로 인해 불거진 인천조각계 이야기다.
시민들이 인천에 조각가가 있는지도 모르던 1984년, 당시 개항100주년 기념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인천의 조각가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그래서 인천에도 조각가가 있다는 걸 알리고자 노용래씨가 주선하여 인천 조각가 모임인 인천조각 15인전을 열었다. 이후 세 번의 전시를 거쳐 1990년 인천조각회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출품자들은 서울과 인천의 대학 교수들이거나 중-고등학교 교사들이었다. "인천미술에 조각가는 없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며 개최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20년이 지나 개항100주년 기념탑은 교통 흐름을 방해한다고 하여 사라지고, 인천조각회는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하며 인천조각의 대표그룹으로 성장했다.
처음 소외에서 출발한 인천조각회는 한두 사람이 인천지역 조형물을 독차지해 질시로 인한 반목과 불신을 낳았다. 그리하여 인천조각회와 뜻을 달리한 사람들이 조형에 새로운 가치를 찾고자 한다는 명분으로 2008년 인천조형작가협회를 결성하여 신세계백화점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인천에 신진 조각가들이 유입되고 뜻과 이념이 다양해져 여러 단체로 분화하는 건 발전적이다. 하지만 서로 반목하고 후배들이 눈치를 보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이제 인천미술계가 안정을 찾아나가는 즈음에 '인천토박이'를 자처하는 인천조각회와 새로운 조형을 찾고자 하는 인천조형작가협회가 함께 모여 '화합의 전시'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져 인천미술계가 기뻐하고 있다.
6월14일부터 동막역앞 평생학습관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인천조각회, 인천조형작가협회, 서울의 현대조각회, 인천 연고 작가 등 80명이 참여하여 인천미술계의 화합과 우정을 다질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는 따뜻한 '비평'이 회자되었으면 한다.
조각에 관심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이 자리를 함께해 '화합의 축배'를 나누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