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은 '삼겹살 데이'라고 한다. 3자가 두 번 겹치기 때문일 테지만, 그냥 '삼겹살의 날'이라고 하는 게 어떠했을까 싶다. 6월 2일은 '유기농의 날'이라고 한다. 정부에서 공식 등록한 경축일은 아니지만, 벼와 같이 겉이 거친 씨앗을 뿌리는 절기인 '망종'이 6월 5일이므로 6과 2, 육이를 '유기'로 읽어 '유기농의 날'로 칭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보인다.
서울시는 유기농의 날을 맞아 '서울 도시농업 원년 선포식'을 한강 노들섬에서 열었다. 한강대교가 통과하는 노들섬은 서울시민 극히 일부만 즐기는 테니스장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디자인을 유난히 강조한 오세훈 전 시장은 6300여억 원을 들여 휘황찬란한 오페라하우스와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홀을 지으려했으나, 박원순 시장으로 교체되면서 무산되었다. 도시텃밭과 마을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현 시장의 뜻을 받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까지 시민들의 농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고 서울시 담당자는 밝혔다.
"오페라하우스가 주는 즐거움보다 풋풋한 농산물이 자라는 걸 보는 즐거움이 더 클 것"으로 평가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손으로 모를 낸 논은 '맹꽁이 논'으로 이름 붙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오페라하우스를 번지르르하게 지으려고 할 때 보호대상종인 맹꽁이가 나타나 환경단체에서 문제를 집요했던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한때 환경운동했다는 걸 훈장처럼 자랑하는 시장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서울시는 당시 하는 수 없이 공사를 중단해야 했고, 공사 종료 후 되돌려 보낸다는 철석같은 약속 하에 노들섬 맹꽁이는 뚝섬 근처 '서울숲'으로 거처를 억지로 옮겨야 했다.
곧 장마철이 다가올 텐데, 서울숲에 세 들었던 맹꽁이가 노들섬으로 귀환했는지 알지 못한다. "흙을 밟고 농사를 짓는 일은 생명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5년 이내에 서울을 "세계 도시농업의 수도가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올 상반기 중에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고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모내기를 마치고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소회를 밝힌 서울시장은 "도시농업에 많은 시민이 함께 할 수 있고 서울이 도시농업의 수도가 될 수 있도록, 또 서울이 정말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는데, 서울보다 농사를 지을 땅이 많은 인천은 왜 이리 삭막한가.
세계 제1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이제 시작인 서울시가 세계 제1을 선언하는 것은 섣부르다. 가까운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을 보라. 그 나라들은 도시농업이 시민사회에 생활화한 지 오래다. 쿠바는 아바나의 도시농업으로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까지 했다. 5년 이내에 세계 제1이 되려는 성과주의는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 없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관에서 억지로 밀어붙인다면 역효과가 클 것이다. 서울에 도시농업이 정착되는 걸 은근히 방해하려는 심사가 아니라면 담당자는 세계 제1로 엄한 사람들 현혹시킬 이유가 없다.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을 위한 마당을 깔아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서울시는 도시농업 정착을 위한 '도시농업 10계명'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10계명에는 자투리땅 활용, 도시농업 교육, 도시농업으로 마을공동체 회복, 생태 순환형 친환경 농업 실현, 농어촌과 전문 농어민의 네트워크, 그리고 관련 조례 제정 들을 담고 있는데, 꼭 서울시에 적용되는 사안은 아니다. 공동체 의식이 다른 도시보다 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인천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조용하다. 일상적인 행정이 마비되는 한이 있더라도 경작지를 메워 일회성 경기장을 짓는데 혈안이 되었는지, 없는 돈을 끌어내는 인천에서 도시농업은 한가한 모양이다.
경기장과 지하철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인천시야 관심 없겠지만 시민까지 도시농업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에서, 또는 농사에 지친 나이 든 농부가 원하는 시민에게 텃밭을 분양하는 사례는 없지 않다. 일부 구청은 상자텃밭을 제공하거나 산하 의제활동을 지원해 도시농업을 지원한다. 시민 개개인도 엽채소나 고추, 토마토나 오이와 같은 채소를 화분이나 스티로폼 박스로 베란다에서 재배하기도 한다. 알음알음으로 귀농학교를 노크하거나 무작정 텃밭에 뛰어들어 하나하나 배워하기도 한다. 다만 세금을 내는 시민의 한 사람이건만 인천시의 외면으로 관심을 가진 도시농업을 체계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
도시농업을 위한 텃밭은 지하철이나 경기장 건설에 비해 턱없이 작은 비용으로 시민의 만족도를 매우 높일 수 있다. 개발이 보류된 땅뿐 아니라 나이 들어 농사를 접으려는 농민의 농토도 인천에 적지 않다. 유럽에서 보듯 그런 농토를 시 차원에서 장기 임대해 시민에게 텃밭으로 재임대할 수 있다. 경험이 많은 농민을 도시텃밭의 강사나 관리자로 의뢰할 수 있다. 농기구와 씨앗을 빌려주거나 보급할 수도 있다. 그렇게 분양한 텃밭은 도시의 훌륭한 녹지가 되며 함께 농사를 짓는 시민들을 인천에 뿌리내리게 한다. 삭막했던 회색도시의 익명의 시민들을 공동체의 따뜻한 이웃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번쩍이는 건물은 더 번쩍이는 건물이 생기는 순간 빛을 잃는다. 건물이 반영하는 도시의 가치는 천박할 뿐 아니라 오래가지 못한다. 그에 비해 삶이 뿌리내리는 공동체는 길다. 도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구성원에게 어쩌면 영원할 수 있다. 이웃이 모여 함께 땀 흘리며 농작물을 재배해 나누는 도시농업은 도시의 정주를 살갑게 만든다. 삭막한 인천에서 더 늦출 수 없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올 '유기농의 날'은 이미 지나갔으니, 내년을 위해 인천시와 의회는 10개 구-군과 논의하며 관심을 가진 시민과 협의해 체계적으로 준비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