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는 옛날 우리나라 선비와 여인네들이 자신에게 닥쳐오던 각종 위협과 유혹, 시련을 꿋꿋이 물리쳐 내고 몸과 마음을 지키고자 하는 버팀목이었다. 그런가 하면 옛날 여인네들이 안아야 했던 수많은 숙명과 질곡을 서러워 하며 결국은 자신을 향해 찌르던 한 맺힌 항거의 징표이기도 했다. 또 멀리 떠나는 사랑하는 님에게 나를 잊지 말라며 원한도 울음도 참고 머리털을 잘라 신을 엮어줄 때 일편단심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은장도는 여인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언제나 처절하게 그 시퍼런 날을 번쩍이고 있었다.
은장도란 은으로 장식한 장도로 칼집이 있고 단장하는 작은 칼을 뜻한다. 금속장도 역사는 삼국시대(기원후 4~5c)이후 백제 무령왕릉과 신라, 고구려, 가야의 능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신분에 따라 실용적인 목적으로 남여를 가리지 않고 휴대했다. 공예 성격상 야외에서 간단히 물건을 자르거나 다듬고 나물을 캘 때도 사용했고 필요하면 호신용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에 들어서 충, 효, 순결, 의리가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면서 은장도는 여인네들의 절개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외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려는 호신용으로 자리 잡으면서 양반집 규수라면 반드시 소지해야 할 물건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은장도는 조선후기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자 호신용 보다는 멋을 부리는 노리개로 인식되고 사대부 여인들의 사치품으로 변하면서 장식이 화려해지고 다양해졌다. 당시 여인들이 지녀야 할 세 가지 필수품으로 변하면서 모양과 장식이 다채로워졌다. 당시 여인들이 지녀야 할 세가지 필수품은 빗과 거울 그리고 은장도였다. 여인들은 은장도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넣어 부귀영화와 수명장수를 빌고, 액을 물리치기를 바라며, 부부의 화합도 염원하기도 했다.
장도는 시대에 따라 그 길이가 변하지만 조선조 후기로 접어들어 선비의 충절과 효, 의리의 상징인 남성용의 경우 보통 15cm 내외, 지조의 상징인 여성용의 경우 10cm 내외로 정착되었다.
칼자루와 칼집의 재료는 금, 은, 백동의 금속제 외에도 옥, 비취, 호박, 금강석, 대나무, 대추나무, 대모, 우골, 수각, 상아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은으로 꾸며진 은장도가 수수하며 단아한 모습과 은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여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장도의 형태와 재료기법에 따라 이름이 붙는데. 첨자도는 젓가락을 장도에 부착하여 음식에 독이 있는 지를 살피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장도에 따라 적절한 장식과 무늬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남성도 장도는 글자, 산수, 누각, 운학, 박쥐 등 선비의 기상과 호운을 나타내는 것이 많고, 여성용은 꽃나무, 나뭇잎, 국화, 매화, 난 등 여성취향의 장식성이 두드러졌다.
장도는 패용하는 위치에 따라서 이름이 다른데 주로 혼인한 여자가 옷고름에 찬 것을 패도, 아직 혼인하지 않은 여자가 주머니속에 지니는 것을 낭도라 하여 총칭하여 장도라 한다.
장도는 일상생활에 쓰기도 하고 호신·자해와 치레 구실도 한다. 장도 중 차게 되어 있는 것은 패도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은 낭도라 한다. 장도 가운데 큰 것은 전장 5촌, 도신 3촌, 작은 것은 전장 3촌, 도신 1.5촌 내외가 되며, 부녀자가 지니던 낭도는 전장 3촌, 도신 1.5촌이 보통이다.
흔히 장식에 따라 갖은 장식과 맞배기로 나눈다. 맞배기에는 평맞배기와 을자맞배기가 있다. 갖은장식은 장식이 복잡하고, 평맞배기는 단순하며 칼자루와 칼집이 원통형이고, 을자맞배기는 을자꼴로 꾸며져 있다. 이밖에 사모장도는 네모꼴이며, 모잽이장도는 여덟모이다.
여기에 첨사가 따르면 각각 첨사사모장도·첨사모잽이장도로 부르게 된다. 또 칼을 꾸미는 재료에 따라 금·은·오동·백옥·청강석·호박·대모·산호·상아·쇠뼈·후단·먹감 등의 이름을 머리에 붙여서 부르기도 하여 백옥장도·대모장도·먹감장도 등으로 부른다. 뿐만 아니라, 장식의 무늬에 따라 안태극장식장도 또는 오동입사장식장도 등으로도 부른다.
장도를 만드는 데 쓰이는 연모는 거도·보래·활비비·물줄이·줄·마치·가위 등이다. 거도는 칼자루와 칼집을 만들 때 자르고 켜는 톱칼이며, 보래는 칼의 모양을 꾸미고 그것을 장식에 맞추는 데 쓰인다. 활비비는 구멍을 뚫고, 물줄이는 손으로 쥐기 어려운 것을 집는 집개이며, 줄은 장식이나 칼날집을 다듬는 데 쓰인다.
이밖에 마치와 가위는 모든 공정에 필요하다. 장도를 만드는 공정은 칼자루 다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먹감나무나 대추나무 또는 쇠뼈를 자르고 깎아서 토막을 낸 다음, 곱게 다듬어서 칼자루와 칼집에 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활비비로 구멍을 뚫는다.
그 다음에 거도로 깎아서 속을 파낸 다음, 칼자루에 도신을 꽂고 자루와 칼집이 맞닿는 곳에 안막이를 하고, 칼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주석막이를 한다. 다음이 칼집만들기로서, 이 공정은 칼자루 만들기와 같으며, 이렇게 칼자루와 칼집이 마련되면 장식을 끼우게 된다.
장식은 은 또는 백통을 늘여서 판으로 만들고, 거기에 무늬를 오리거나 새김질을 하고 때로는 입사한 것으로 쓴다. 갖은 장식은 칼집의 경우 아래로부터 사발이, 태극을 새긴 원장식의 순으로 두른다. 그리고 칼집과 장식을 죄어 붙이기 위한 국화무늬를 놓고, 그 위에 납땜으로 왕막이를 한다.
맞배기 경우에는 왕막이를 하지 않는다. 왕막이를 하였을 경우에는, 왕막이 밑으로 원장식 등에 메뚜기를 납땜하고 고리를 달고 칼자루에는 도신을 자루에 꽂고 안막이를 한 다음, 도신과 칼자루를 잇는 주석막이를 한다. 이 경우 장식에 쓰이는 백통은 주석 7에 이끼 3의 비율로 합금이 된다.
칼날은 강철을 불에 달구어 망치질과 탄철을 20여 번 거듭하여 칼 모양이 되도록 다진다. 그리고 줄로 다듬어서 칼에 무늬나 문자를 새긴 다음, 또 한번 불에 달구고 물이나 기름에 담갔다가 내어서 칼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묽지 않도록 하여 숯돌로 갈아서 광을 낸다.
이렇게 칼자루와 칼집과 칼과 장식이 만들어지면 꽃자주색·남색 등으로 물을 들인 명주실로 끈목을 짜서 한 줄이 네 가닥이 되도록 하여 고리에 끼게 된다. 이때 고리에 끼이게 되는 끈목 아래위에는 고리 매듭을 하여 장도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한다. 장도는 남자의 경우 저고리고름이나 허리띠에 장도끈목의 고리를 꿰어서 차고, 여자의 경우에는 치마 속 허리띠에 차거나 노리개의 주체로 삼기도 한다.
외국 관광객인들이 한국에 와서 느낌점을 얘기해 보라고 하면, 한국은 아름답고 멋진 곳은 많은데 비하여 기념품으로 구입해 갈만한 것이 부족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같은 장도를 기념품화하여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개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