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도지성 / 서양화가
올겨울이 유난히 추웠던 탓일까? 정년퇴임 후 시골에 내려가 작업실을 짓고 작품 활동을 하는 선배 화가께서, 시골집은 겨울에 난방이 큰일이라고 하시더니 인천으로 유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꾸준하게 좋은 작업을 하는 후배는 화실 화목난로에 군불 지피느라 올겨울은 땔나무가 모자랄 지경이란다. 추위도 문제지만 얼어붙은 경제 탓에 화실에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며, 다른 직업이라도 찾아보겠다는 작가들의 하소연에서는 절박함마저 묻어난다.
고등학교 때 동네에서 같은 교회를 다녔던 친구들 모임에 나갔더니, 장교퇴임 후 강화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친구는 겨울 동안 아예 문을 닫았단다. 한파의 위력이 곳곳에 미치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도 옛 친구들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이면 추위도, 삶의 시름도 잊어버리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두 아들을 대기업에 취직시킨 친구는 아들 자랑과 함께 자식에게 올인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시대에 다들 힘들게 공부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자립하지 않았는가? 반문하면서... 그런데, 다른 친구가 반박을 한다. 자신은 자식이 셋인데, 첫째는 스스로 잘하지만 둘째는 뭐든지 부족하단다. 그래서 둘째에게는 좀 더 신경을 쓰고 돌봐줘야 하며, 그것은 자식에게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고 모성(母性)이란다.
그 친구가 말한 ‘부족한 둘째 아들’ 같은 사람이 우리 예술인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변에 서 예술로 큰 돈 번 사람이 없다. 다들 기름값 걱정에 온도계도 마음껏 올리지 못하고 살았을 을씨년스런 작업실 풍경이 그려진다. 그러니 부모입장에서는 예술한다고 겉은 멋있어 보일지라도 실속 없는 자식들이 눈에 밝혔을 터이다. 나야 학교라는 직장이 있고 미술실에서 작업을 하니 열악한 환경의 작가들에겐 미안할 뿐이다. 이제 새봄과 함께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다. 벌써부터 노령연금이니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들이 신문기사에 자주 오르는데 어디에도 예술인들에 대한 복지정책은 없다.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일까?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갤러리가 있는데, 일 년 동안 전시를 하려면 연초에 기획하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작가를 섭외하고, 다른 학교와 공동으로 릴레이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부족한 예산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한 방법이다. 작가들에게는 작은 책자나 엽서를 만들어주고 전시를 한다. 그 이상 지원을 할 수 없으니 작가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구절처럼, 언 손을 호호 불며 작업을 하는 치열한 작가들의 작업이 있기에, 돌아오는 봄에 아름다운 그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 그것을 본 어떤 이에게는 마음속에 그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좋은 소식이 들린다. 학익동 인천구치소의 채움갤러리에서 서예전시가 열린단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가들은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고 노력했을까? “그림이란 화가의 영혼과 관람자의 영혼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것”이라는 드라크르아의 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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