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소중한 역사의 자산이다
인천 계양구 계산동 부평초등학교 안에 있는 부평도호부청사 전경
부평도호보청사(富平都護府廳舍 인천 유형문화재 제2호)는
고려시대 의종 4년(1150) 안남도호부, 고종 2년(1215) 계양도호부,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는 부평도호부를 설치했다. 기록에 의하면
객사, 동.서헌, 삼문, 근민당, 포도청 등 많은 청사건물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부평초교를 건축하면서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내아도 원래는 "ㄱ"자형 건물이었으나,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ㅡ"자형 건물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도리집이 되었다 한다.
욕은지(浴恩池 인천문화재 자료 제1호)와 어사대(御射臺 인천문화재 자료 제3호)
역대 임금 중 공식적으로 부평을 경유한 임금은 정조대왕 한 분이다.
정조21년(1797) 김포에 있는 인헌왕후 장릉을 참배하고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였다 한다. 이때 정조는 이곳에 머물면서
활을 쏘고 욕은지에서 손을 씻어다 한다. 욕은지는 가로 15m, 세로 13m의
장방형 연못이다. 동쪽 축대 가운데 "욕은지광서정해(浴恩池光緖丁亥)라고
음각된 돌이 있다 한다. 연못안은 5m 가량이 돌산(石山)을 쌓아 목초를 심고
돌다리로 연결하여 출입하였다 한다.
부평도호부청사 앞마당과 욕은지에 물은 커녕 주변의 잡초가 무성하다.
원래 욕은지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고종 24년(1887)에 수리하여 이곳으로 옮겼다.
부평도호부청사 뒤 전경
어사대(御射臺) 표지석은 길이 1.64m, 높이 0.63m, 두께 0.33m 크기의
장대석으로 중앙에 어사대광서정채중수(御射臺光緖丁亥重修)라고
음각되어 있어 고종24년(1887)에 보수함을 알 수 있다.
욕은지와 어사대 부근 모습...역시 문화재 관리가 허술하다는 느낌을?.....
어사대주변의 모습
부평부사정비림(富平府使政碑林)에는 총 21개의 비가 있다.
계산동은행나무(인천기념물 제11호)
부평도호부청사 앞에 있는 풍치목으로 수령600년, 높이 25m이다.
부평도호부청사 앞에 있는 수령 600년된 보호수(수고 20m, 나무둘레 6m)
부평초등학교교정. 뒤로 계양산 정상이 보인다.
문화재는 소중한 역사의 자산이다. 관광객은 물론 보다 많은 시민들이
역사의 현장을 찾아 역사를 재인식할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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