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23)
-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것들김기용(인천교육연구소기획실장, 석남초교)
공짜는 없다. 작던 크던 무언가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나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들어온 것이 있는 데 나가는 것이 없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도둑심보가 행복하게 지내도록 그리 만만하게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둘이 같거나 비슷하면 마음 편하고 기분 좋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감정이 상한다. 특히 들어온 것에 비해 나가는 것이 많을 때, 바꿔 말해 나간 것에 비해 들어오는 것이 적을 때는 더욱 그렇다. 당연하다. 이런 심리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세상살이 보편적 원칙이니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과 상관하여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한다. 아마 스트레스 없는 직업은 없을 것이다. 직업을 통하여 소득을 얻고 이 소득을 이용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한 직장인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직종에 따라 다가오는 스트레스의 양이나 강도도 다르다. 그럼, 그 많은 직업 중에서 선생님의 경우는 어떨까?
세계적 임상 심리학자 토니 험프리스(Tony Humphreys)에 의하면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고 했다. 요구 수준이 높으면서 통제가 낮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공교통 관제관의 경우 아주 작은 실수라도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요구수준이 매우 높다. 반면 국제공항의 상공은 여러 나라가 상시 활용하는 통제가 최소한일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고위험군의 조건인데, 교직도 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것들이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지난 10~20년 동안 선생님에 대한 역할 요구는 엄청나게 증가해왔다. 이제는 교실에서 교과를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과 정겹게 지내는 것만으로는 일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선생님은 가르치고 상담하고 생활지도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면에서 더욱 더 전문가답게 그리고 가능한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교실에서 잠시 여유를 갖고 하루 일과를 돌아보며, 조용히 눈을 감고 그날 아이들과의 관계를 사색해보는 모습은 요즈음 선생님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뭔가 늘 하고 있고, 바쁘고 분주한 모습이다.
창의력 시대에 걸맞게 모든 학교에는 학생들의 창의력 제고를 위한 수많은 방침과 프로그램, 지시사항 등이 상부기관으로부터 내려와 있다. 좋은 일이다. 다만 창의력이 발산되어 효과가 나려면 자율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타의로 묶인 속박적 사고에서 자유롭고 반짝이는 상상의 열매가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자율성의 보장이다. 충분히 활동하고 소통하며 마음껏 뛰고 움직이며 사고하는 시간과 공간으로서의 개념이 우리 학교에서는 한껏 위축되어있다. 각종 규제와 제약들이 스쿨존 안에는 상존해있고 특히 학교폭력 등 민감한 사안의 영향으로 생겨난 각종 제재의 조건들은 선의의 목적과 다른 역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는 학교관계자로부터 이런 말도 들었다.
‘뭉치지 말게 해라. 아이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다 착한 데, 모이면 겁 없는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사고가 난다. 모이지 않게 하면 된다. 그게 최선이다.’
이래서 학교의 공간 어디서라도 모여 웅성이면 바로 호통 쳐서 흩어버린다. 이런 문화 속에서 소통의 관계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창의적 열매가 나올 수 있을까? 함께 모여 교감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최소한의 개별적 성과만이 나올 뿐이다. 창의력 제고와 질서 정연한 학교문화의 정립?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많은 학교에서 통제 문제가 주요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이다.
선생님에게 주는 스트레스의 또 다른 주요 요인은 무능한 관리자이다. 다수의 교장들이 여기에 속한다. 교사와 관리자가 갖추어야하는 관점과 전문적 기술은 엄연히 다른데도, 대다수의 관리자는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가장 중요한 경험칙으로 여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내가 다 해 봤는데…’ 등의 말이 나온다. 관리자로 발령받고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단 교실을 벗어났으니 빠른 속도로 변하는 교실과 학생들의 변화속도를 따라 잡지 못한다.
1~2년만 휴직하고 난 후 복직을 해도 변화된 학교의 모습에 당황하는 선생님들을 많이 봐왔다. 당연히 관리자로 오래 될수록 교실의 현장감에서 점점 멀어진다. 같은 학교 안에 근무하지만 교실안의 상황 인식과 체험빈도에서 선생님과의 차이도 점점 벌어진다. 그러므로 당연히 선생님들과의 응집력도 부족하게 되고 이것은 교실과 학교 운영의 모순을 더욱 악화시킨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시험 결과를 성공적인 가르침의 주요 기준으로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치열한 ‘점수’ 경쟁 때문에 선생님들은 차별적이고 조건적인 교육철학을 갖도록 은근한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때때로 학급에서 뒤쳐진 학생보다 총명하고 우수한 학생에게 더 주목과 격려가 가는 것처럼, 배움 자체 보다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데에 우선적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약한 나 같은 사람은 이런 피상(皮相)들에 가슴 조일 때가 많다.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에서의 성과나 효과를 시험 결과로 측정하는 경향은 선생님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운다. 시험은 교과 발달 정도를 측정할 뿐이다. 성적이라는 편협한 척도로 선생님을 평가하는 것은, 낮은 학습단계의 학생들을 중간 학습 단계로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선생님들에게 매우 불공정한 처사이기도 하다. 학습 의욕이 높은 학생들의 시험 결과는 선생님의 공이 하위단계의 학생들에 비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학생들의 시험 결과를 중심으로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경향도 있다.
더욱이 교육의 목적은 학문적 발달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 행동적, 창의적 발달에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교육 연구 결과에 의하면 특히 정서적 발달이 중요하다고 한다. 더구나 학습장애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자부심이 낮기 때문에 이런 정서적 문제가 먼저 고쳐지지 않으면 치료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작던 크던 무언가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나가는 것이 있다. 만일 우리가 교육에서 창의적이며 반짝이는 성과들을 나타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 보다 유연한 교육과정의 도입, 관리자들에게 필요한 전문적 소양의 함양, 학생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소통적 학생문화의 조성, 교육의 근원적 목적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시도, 선생님 평가를 해야 한다면 올바른 평가를 하기 위한 치열한 교육적 논의….
이런 것들이 우리가 기꺼운 마음으로 치러야 하는 기본적인 대가이고 선결과제이다.
공짜만 바라는 얌체족으로 욕먹으며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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