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넘어설 명분이 있을까?"
지난 22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중국 칭다오(靑島, Qingdao)에서 발생한 송유관 폭발사고로 사망자가 52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부상자 130여명 가운데 중태에 빠진 이들이 있어 사망자는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이 전하는 사고 현장 모습은 지진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참혹하다. 두꺼운 아스팔트는 마치 비스킷이 바스러진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그 위로 심하게 파손된 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 또, 사고로 도시기능이 마비돼 사고현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1만8,000여명은 당분간 구호물품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사고로 인해 원유가 다량 유출돼 환경오염이 우려된다. 칭다오는 산둥성(山東省, Shandong)에 위치해 있으며 황해와 맞닿은 해안도시다. 유출된 원유 상당량이 이미 바다로 흘러들어 칭다오 해안 일대에 기름때가 끼었다고 한다.
이번 폭발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외신들은 송유관이 주택가와 학교에 매설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송유관의 기름유출이 발견된 시점은 사고 7시간 전이었지만 주민 대피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설비가 노후해 교체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무려 2년 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참사 역시 인재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런데 칭다오에서 발생한 이번 참사는 바다 건너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인천의 현실이다. 인천에도 유해 위험시설이 주거지역이나 학교 등에 인접해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서구 원창동 일대에 파라자일렌 공장을 증설하면서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고, 한국가스공사는 송도 일대에 LNG 저장탱크 증설을 시도하다 역시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쳐야 했다.
SK인천석유화학이 증설 중인 공장에서는 BTX 즉, 벤젠과 톨루엔, 자일렌 등이 생산된다. 이 물질들은 모두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 뿐만 아니라 휘발성도 강해 폭발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또, 석유화학설비는 고온·고압과 유독가스를 포함하는 매우 복잡한 시설이어서 안전관리 역시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SK인천석유화학 측이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서구 공장의 사고 위험성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사고 발생 빈도가 현저하게 낮다 하더라도, 석유화학 시설은 한 번의 사고로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위력이 잠재돼 있다. 칭다오 송유관 폭발사고는 그 위력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서구 원창동 일대의 석유화학 시설은 아파트단지나 학교 등과 불과 200m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지어지고 있다. 또, 이곳과 연결된 송유관이 노출된 채 자동차 도로를 따라 가설돼 있다. 사고 위험이 확률적으로 낮다 하더라도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를 두고 제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안전관리가 철저하다 하더라도 무작정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만은 없다.
한편, 1조6,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과 복잡하게 얽힌 행정적 문제 등은 주민들이 SK인천석유화학의 공장 증설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반박 논리였다고 한다. 또, 석유화학시설의 사고 빈도가 비교적 낮고,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우리가 흔히 겪는 오류 가운데 하나는 위험을 통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고 발생 가능성이 0.1%라고 해서 목숨의 무게마저 '0.1'이라는 숫자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수조원의 가격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또, 행정적으로 지난한 과정을 뚫고 나갈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단 한 명의 생명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인천시가 서구청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발표는 벌써 몇 차례 연기돼 왔을 만큼, 인천시 역시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인천시가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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