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반대 인천엄마들의 활동 해산 '후일담', "외압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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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반대 인천엄마들의 활동 해산 '후일담', "외압 아니고요..."
  • 강창대 기자
  • 승인 2013.12.10 07: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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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에 입각한 행정시스템이 좋은 결과 만들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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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엄마들 모임의 집행부 엄마들이 자신들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길 원치 않아 손을 모아 촬영했다. 

지난 12월 5일 서구청에 대한 인천시의 감사결과가 있은 뒤, ‘인천 Sk석유화학을 반대하는 인천엄마들의 모임’(이하 인천엄마들 모임)의 집행부가 해산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자 이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의아해하는 지역의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는 ‘외압에 의한 해산’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서부터, 서구청이 ‘공사 중지’라는 처분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인천엄마들 모임'의 집행부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고 해산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들어보았다. 엄마들의 요구로 집행부의 얼굴이나 실명, 인터넷 아이디는 공개하지 않았다. 

먼저, 집행부의 해산이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설이 있다고 말문을 열자 엄마들은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엄마들은 “지금(감사결과 발표 이후)이 아니면 해산할 기회를 다시 잡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간 상당한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토로했다. 

“우리가 시민을 대표하는 기관도 아니고, 이런 쪽에 전문가도 아니잖아요? 그저 평범한 주부로서 인천시의 ‘공사 중지’라는 감사결과를 끌어낸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거라 생각해요. 시가 자신의 자치구에 있는 구청을 감사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한 달여 동안 열댓 명의 인원이 투입돼 감사를 진행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우리 엄마들이 정말 큰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한 엄마는 집행부 해산에 대해 ‘무책임론’까지 등장한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해산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이고 또, 이에 따라 행정 시스템이 가동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는 행정처분 지시가 내려진 이상, 서구청은 이에 따를 것이라 생각해요. 법치국가에서 당연한 것 아닌가요? 만약, 서구청이 처분지시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대신해 일하는 구의회나 시의회가 있고, 그래도 안 하면 시장의 직권으로도 공사를 중지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시스템이다. 애초에 그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종교계를 위시해 사회각계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론까지 쏟아지고 있는 것 역시 그 시스템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갑작스런 집행부 해산 발표에 여러 가지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도 시스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바가 없지 않다.

“시민이나 주민이 믿고 따라야 할 행정기관이고, 국민의 신망을 받고 있는 대기업인데 그런 불신이 쌓이게 된 것은 인천시나 서구, SK인천석유화학이 반성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불신을 불식시키는 것은 앞으로 이런 기관이나 단체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죠.”

“처음 이 문제로 서구청에 찾아갔을 때, 담당자들의 태도는 주민들을 무시하고 고압적이었어요. 우리가 뭘 잘 몰라 괜한 불안을 갖고 있다는 식이었죠. 그래서 그때는 설마 이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사결과는 지금까지 무허가로, 불법으로 진행됐다는 의미잖아요? 서구청에 대한 불신은 서구청이 스스로 키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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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서구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사업설명회. 이날 엄마들은 서구청의 일방적인 태도에 분노하며 설명회를 보이콧했다.

엄마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다

또 다른 엄마가 화학공장 증설 반대운동에 참여하기 전까지 자신은 “지금껏 비겁하게 살아왔다”고 속내를 털어놓자. 엄마들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며 맞장구를 쳤다. 엄마들은 학창시절 집회에 참여한 경험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 모습은 TV에서나 접하는 것이었고,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생각했다고. 사회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즉, 사회 시스템을 비교적 신뢰하는 평범한 주부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한 계기는 지난 8월 중순경에 청라1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서구청장 간담회’였다.

“그때까지도 여기 모인 엄마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뉴스나 기사를 접하면서 화학공장 문제를 알게 됐고, 이 문제에 대해 서구창장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어서 간담회장에 찾아갔어요. 그런데 주민들에게 유인물 한 장 나눠주는 것도 없었고, 관계자들은 나와서 일방적으로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더니 ‘그래서 합법적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더라고요. 그러고는 검증단이 꾸려져서 화학공장의 안전성에 대해 검증활동을 할 터이니 다른 환경문제나 고민하자는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 간담회를 지켜보며 정말 화가 났어요.”

“저는 검증단이 꾸려지는 것도 몰랐어요. 어떤 절차를 통해 누가 검증단에 선발됐는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그들을 신뢰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서구청의 대책에 대해  물었어요. 그때 서구청장님이 ‘화학 공장은 아직 가동되지 않는다’면서 ‘완공돼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하는 거예요. 그 말에 화가 났고, 서구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어요. 그날 간담회에 갔던 엄마들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환경 감시단이라도 꾸려보자고 해서 모이게 된 엄마들과 지금까지 오게 된 겁니다.”

평범한 주부인 엄마들이 6차례의 집회와 서구청에 대한 인천시의 감사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총괄책’을 맡았던 한 엄마는 갑상선 이상으로 심한 호르몬 불균형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 집회현장에서 사회를 맡았던 한 엄마는 자신에게 한없이 매달리는 어린 아들을 눈물로 참으며 억지로 떼어놓아야 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분리불안을 느끼는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화학공장의 문제를 담은 홍보물을 돌릴 때에는 공장 증설을 찬성하는 현장 근로자들이 퍼붓는 욕설도 견뎌야 했다.

“엄마들은 모두 다 제각각 사연이 있어요. 그래도 서로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잘 아니까 그런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주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우리가 겪었을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모두 공감할 겁니다. 이런 엄마들에게 끝까지 책임지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스스로 무책임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엄마는 공장 증설과 관련된 모든 법을 찾아 검토하는 일을 했다. 관련법들은 분량만 쇼핑백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엄마는 지금도 승용차 트렁크에 그 자료들을 싣고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법을 검토하고 인·허가상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에는 참여했고, 그 자료들은 인천시가 서구청 감사를 결행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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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에 서구청 앞에서 열렸던 집회 도중, 엄마들이 서구청장 면담을 위해 구청장실을 찾았다가 직원들과 대치중이다.

평범한 주부에게 보낸 주민들의 성원

엄마들의 활동은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엄마들은 모든 사안에 대해 일사분란하게 반응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휴대전화로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엄마들은 휴대전화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모든 계획과 실행방안을 마련해나갔다. 때때로 남편의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고 한다.

엄마들은 아이와 남편 뒷바라지하며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 형편이었고, 직접 모이지 않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아파트 단지와 블록별로 조직을 구성해 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SNS 덕분에 아파트별로 책임자들이 조직되고, 순식간에 모든 엄마들과 정보공유가 이루어졌다. 

“엄마들과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인천엄마들 모임에 참여하면서 이곳이 정말 사람 사는 곳이구나 생각했어요. 집회가 있는 날이면 주민들이 이것저것 가져와 우리를 챙겨주었어요. 도시락을 만들어와 전해준 엄마도 있었고, 영화제를 열었을 때는 팝콘과 음료수를 지원해준 주민도 있었어요. 소리를 질러 목이 아플 것 같다며 배즙을 가져온 사람, 암 투병하는 엄마를 위해 상황버섯을 다려온 사람도 있었죠. 집회 때, 참가자들에게 이런저런 이벤트를 열어 경품으로 나눠준 물품들도 모두 이렇게 모인 것들이었습니다.”

“화학공장 인근의 상인들이 공장 증설을 찬성하며 진정서를 냈다는 기사를 봤는데요, 우리를 지지해주는 상인들도 꽤 많아요. 1인시위하는 엄마들을 위해 탕수육 10접시를 제공해준 중국집도 있었고, 치킨 50마리를 제공해준 상인도 있었어요. 또, 인천엄마들 고생한다며 뷔페 무료이용권을 제공해주는 곳도 있었죠.”

“집회에 사용할 후원금을 모집할 때도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3일만에 800만원 가까이 모였으니까요. 지금까지 집회후원금으로 2,000만원이 넘게 모였어요. 기부금 대부분은 1만원이나 2만원이었어요. 이렇게 모인 돈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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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였지만 엄마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인천시청 앞 1인시위.

루머에 시달리며 힘든 순간도 있었어

실제 외압설을 뒷받침할 만한 소문이 없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근원은 알 수 없지만 SK인천석유화학이 집행부에 참여하는 몇몇 엄마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솔직히,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엄마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SK같은 대기업이 개개인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이 걸린 소송을 걸 만큼 치졸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죠. 또, 집회신고가 된 합법적인 집회였고요.”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며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면서도 캠코더로 우리를 촬영하는 사람들 때문에 위축되기도 했었죠.”

“저는 경찰에 집회신고하러 가서 정말 울고 싶었어요. 서부경찰서는 무슨 형무소처럼 삭막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집회신고서를 쓰는데, 집회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허락되지 않은 행동을 할 때에는 신고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서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왜 이곳에 이사 와서 이런 걸 써야 하는 것인지.”(웃음)

“이때도 주민들의 지지와 도움이 큰 힘이 됐어요. 질서유지인으로 나서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카페에 공지를 띄우자 순식간에 4, 50명의 정보가 모이더라고요. 자기 이름을 질서유지인으로 걸어달라는 것이죠.

감시와 비판 앞으로도 이어질 것

엄마들은 끝으로, 그간의 활동을 모두 중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 인천엄마들 모임의 이름으로 발언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지속적으로 SK인천석유화학의 공장 증설을 반대하는 활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평범한 주민으로서 인천시와 서구청, 시군구 의회 등의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인천엄마들의 모임이 서구청에 대한 인천시청의 ‘공사 중지’ 처분지시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진 참여, 그리고 느슨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참여가 만들어낸 집단지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 또, 무엇보다도 ‘엄마’라는 정체성이 미래세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쟁에 뛰어들게 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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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엄마들 집행부와의 인터뷰는 청라지구와 인천 서구가 환하게 내려다 보이는 한 고층빌딩에 자리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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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1 09:56:47
멋져요, 엄마들! 새삼스레 그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운 이들이 바로 엄마와 엄마들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때론 자기 아이밖에 모르고 자기 가족만 챙기는 모습에 가장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란 생각도 하지만 ... 그 이기심을 폭넓게 보기도 해서 교육이며 집이며 건강한 먹거리며 환경 생태등등... 폭넓은 세상의 문제와 맞장뜨는 존재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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