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아있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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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아있는 일들
  • 이정숙 선생님(인천교육연구소, 동수초)
  • 승인 2014.04.29 22: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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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인천교육 미래찾기(50)

세월호.jpg

김샘은 비탄과 통단, 극단의 슬픔과 무기력, 자괴감, 한을 넘어 분노가 극한에 이름을 반복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정보라고는 주검의 명단만 나열해대는 무성의와 주어진 멘트 일색인 앵무새 TV도 꺼버리고 그저 무심히 이 시간들을 견디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지나치는 인터넷이나 신문에 언듯 보이는 한두 줄 인쇄 문자가 잠시 또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둘이 구명조끼를 묶고 죽어간 그 시간의 그 처절함과 애잔함이 상상이 되어 뼈가 저려온다. 타인도 그렇거늘 가족은, 부모는 어찌 살 것인가. 비어져 나오는 눈물이 오히려 송구하기만 하다.   


아들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인터뷰에 응한 아버지는 최적기 2-3일 동안 방송은 눈을 감아버렸다고 언론에 분노했다. 정부 대변인 노릇하느라 눈치만 보는 보도를 꾸며대며 수많은 죽음을 수수방관한 언론들 중에서, 그나마 의식 있는 앵커나 기자가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거나 사실을 보도하면 사람들은 뉴스의 내용에 분개하면서도 인터뷰한 사람들과 기자나 앵커를 걱정한다. 사실을 다룬 몇몇 프로그램 담당 PD가 어떻게 될까봐 걱정한다. 트위터에는 “희생자 가족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기 위해, 정부 부처 책임자들이 아니라 종편 앵커를 찾아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나라가 미쳤다.”라는 글이 올라온다. 정말 이 세상이 미쳤나보다.


누군가가 사퇴하는 모습도 한낱 시늉으로 여겨진다. “국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그 말이 어찌 그리 궁색하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죽은 망자들에 대한 염치없음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 대한 눈치 때문이란 말을 그리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가.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낱 일년 재계약 선장을 살인자로 몰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문책으로 일관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해대는 상황을 접하노라면 그 실망스러움이 극에 달하게 된다. 수많은 목숨을 내버려두고 탈출하는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실망하며 또 실망하고 실망하고 분노한다.  


세월호 침몰 이후 근 십여일은 언론과 해경과 정부의 대처와 법제와 시스템, 모든 상황들이 백성의 안전과 생명구조보다 그 우선권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치 나라 잃은 국민처럼 전국에서 희생하고 걱정하고 도움을 준 곳에 정부의 위로는 없었다. 어디에나 민간인들이 만든 자원봉사자들이 정부가 할 공백들을 메운다. 각처에서 성금이 쏟아진다. 그런데 성금을 내면 누구에게 갈 수 있을지 그것마저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 비슷한 재난에 성금을 냈더니 성금으로 위령탑을 세우는데 8억을 쏟아 부었다는 소식을 접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또한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물어내야지 그들이 슬쩍 성금으로 보상하려고 들지 모른다 라는 이유도 있었고 또 혹자는 성금은 차라리 유족들 소송비용으로 도와야 할 것 같다고도 한다. 이제까지 안전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남의 일을 내일처럼 아파하는 착한 백성을 이렇게 의심으로 눈초리를 갖게 만든 게 누군가. 


침몰하기 직전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대화가 동영상으로 기사에 떠돈다.

“야, 아무래도 조끼를 입을까봐. ”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냐?”

자신들에게 올 엄청난 일들을 알지 못한 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히 보이는데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그 시간에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했는지...  

‘미안하다.’

 

어느 심리학자는 친구를 잃고 선후배를 잃고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한다. 그날 이후 삶이 달라진 아이들에게 누군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책임질 사람이 와서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 이젠 달라지겠다 말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미안하다고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나중에 떠밀려 미안하다고 해도 이미 진정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효력은 없을 듯하다.


빗속에서 긴 행렬에 몇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며 조문을 하는 수십만의 인파는 우리의 그 미안함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우리들의 미안함. 그리고 또 어쩌면 앞으로도 이런 미안함이 계속 될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함. 그런 것들이 뒤엉켜 뭔가라도 해야 될 것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김 선생은 오늘 아침도 지치고 지쳐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다. 5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5층 꼭대기에 질서 지킴이랍시고 연필을 들고 서성이는 한 아이가 김샘을 내려다보며 방긋 웃는다.

“선생님! 안녕~....”

“어이구 힘들다”

둥개둥개 한걸음한걸음 내 딛는 모습이 안 되었는지 아이는 말도 건넨다.

“힘드신가 봐요”

“그래 힘들다 나 좀 끌고 가라“

아이는 냉큼 내려와서 김샘 손을 잡고 끌고 간다. 끌고 가는 방법도 몰라 힘도 주지 않은 손이었지만 손을 잡아 준 아이에게 마음으로 의지를 하며 끌려가는 척을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요즘 김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샘은 무기력을 애써 밀어내며 수업 준비를 했다. 아침에 트위터에서 본 ‘심리학자의 잔인한 예언’을 되새기며 말이다. 그 심리학자는 스스로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몸도 가눌 수 없는 지친 유족들에게 세상 가장 잔인한 말들을 힘겹게 꺼낸다. 유족들은 이미 심신이 피폐해져있는 상태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족속들인 사고처리 분야의 프로들인 정부, 선박 측, 보험사 등을 상대로 보상과 배상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돈 따위는 절대 위로가 되지 않지만 보상과 배상은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희생자와 가족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최소한의 위로를 받는 방법이며, 즐거운 여행길에 참담한 사고를 당한 아이들의 넋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이 사고의 원인제공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해야한다고 말이다. 아이들의 따뜻한 뺨을 다시 만질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에 버리고 도망친 이 사회의 책임을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으로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절대로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도 말 것을 당부한다.   


김샘은 무기력하기만 한 자신을 추슬리며, 모질게 들리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이 말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몫임을 되새긴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우리들에게 지치고 포기할 자격은 할애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처리할 일들이 아직까지 도처에 줄서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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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014-05-10 20:46:41
아 초기 잠수부와 수난구조 매뉴얼과 훈련과 준비만 되있더라도 많은 사람을 살렸을것을 인재구나 안탑깝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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