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미술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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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미술관 나들이
  • 양진채 소설가
  • 승인 2014.05.0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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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화공간을 거닐다 (8) -인천시립박물관·시립송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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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인천시립미술관을 검색하자 인천시립박물관이 검색되었다. 나는 가볍게 두 명칭이 혼용되어 쓰이는구나 생각했다. 지인과 차를 타고 인천시립박물관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타고가다 보니 경인방송국이 보였고, 바로 시립송암미술관 이정표를 스치듯 지나쳤다. 송암! 뭔가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낯익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건물이 가까워올수록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봐둔 경관이 아니었다. 내가 가보고자 한 곳이 시립박물관이 아니라 시립송암미술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그 이름이 떠올랐다. 송암! 그랬다.


송암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귀한 미술품과 미술관을 시에 기증하여, 송암미술관을 시에서 재개관하고 이름도 시립송암미술관으로 바꿨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그때도 지금의 지인과 그곳을 향했었다. 계산동에서 출발하면서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보니 목적지에 다 왔음에도 미술관은 보이지 않고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고속도로 위였다. 내비게이션에서는 앵무새처럼 ‘목적지 주변입니다’를 계속 되뇌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야말로 속도를 높인 채로 고속도로의 끝, 인천대교를 넘어 영종도까지 가야 했다. 아마도 중간에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야 했는데 운전하는 지인이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그때 우리는 이정표만을 따라가는 소설 속 인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정표가 가리키는 화살표 모양만 따라가는 인물이었다. 내 단편소설 <파르초>의 주인공이었다.


우리는 이정표를 보고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았음에도 ‘목적지 주변입니다’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라는 답을 끝내 듣지 못한 채 그렇게 시립송암미술관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인천대교를 건너보았다. 비록 시립송암미술관을 보지는 못했지만 인천대교 또한 각별한 감흥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다른 약속 때문에 결국에는 미술관에 가지 못했지만 아주 섭섭한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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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것인지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인천시립박물관에 와서야 내가 가려했던 곳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우현 고유섭 선생의 동상과 마주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해문화나 새얼문화재단 광고에 자주 등장하던 사진, 고유섭 선생의 동상이 거기 있었다. 우현 선생은 일제식민지기에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사와 미학을 본격적으로 수학한 학자로 우리 미술을 처음으로 학문화한 학자로 높이 평가받는 인천의 인물이었고 새얼문화재단이 인천의 인물로 기리고 있기도 했다. 그 우현 선생의 동상을 여기서 만나다니 뜻밖이었다. 동상을 바라보니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찬찬히 동상을 세우게 된 경위의 글을 읽었다. 우리는 이왕 온 김에 박물관도 구경하고 멀지 않은 시립송암미술관도 가보기로 했다.


박물관은 인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물들로 가득했다. 근대 문물의 중심지였던 신포동 일대를 모형으로 재현해놓아 현재와 비교해볼 수도 있었고, 근대에 사용했던 여러 필수품들도 재미를 더했다. 신포동 최초의 카페였던 금파(金波)를 중심으로 거리를 재현해 놓은 것도 재미있었다. 금파(金波)가 노을 진 붉은 인천 앞 바다를 이르는 말일까, 연평도 파시처럼 황금어장을 가진 바다를 이르는 말이었을까, 그도 아니었으면 무얼까 추측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기증받은 유물만을 모아 놓은 곳도 있었는데 사료적 가치가 있어보였다. 나이 드신 분들이 관람하면서 옛것에 대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옛 거리를 보면서 자신이 자랄 때와 비교해보며 도란거리는데 슬쩍 듣기에도 좋았다. 늘 해설사가 두세 명이 있어 친절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박물관에서 하는 다양한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자라면서 인천을 제대로 알지 못해 향토 사랑의 기회가 적었던 내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작지만 세심한 프로그램들이 우리 인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옆의 전쟁기념관을 들러보고 박물관을 관람하고 청량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가족나들이를 계획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서울의 큰 미술관이나 전시회는 꽤 가본 편이이었는데 이제야 인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게 된 내 자책도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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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5분 정도 되돌아가니 다시 시립송암미술관 이정표가 나왔다. 송암미술관으로 불리다가 2011년 시립송암미술관으로 바뀌면서 아마도 인터넷 검색에서 시립미술관을 치면 시립박물관이 먼저 뜨는 모양이었다. 송암미술관을 검색해야 했던 것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전시장을 구경하는 사람은 우리뿐이 없었다.


팜플릿을 보니, OCI 창업자인 고(故) 송암 이회림 명예회장이 50여 년간 국내외에서 수집한 고미술품 9천여 점을 모아 1992년 10월 송암미술관을 개관하며 일반에 공개하다가 2005년 6월에는 창업지인 인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송암미술관은 물론 전시된 미술품 모두를 인천시에 기증했다고 했다. 현재 송암미술관은 지하 1층·지상 3층에 총면적 3천660㎡의 규모로 상설전시실·수장고·기획전시실·관리동 등을 갖추고 있으며, 토기·도자·회화 등의 고미술품을 비롯해 근현대 작품까지 다채로운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잘 정돈된 정원을 비롯한 야외전시장과 미술관 건물 내부부터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 상설전시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옹관이었다. 옹관(甕棺)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시신을 커다란 항아리에 담아 세워놓고 큰 돌로 입구를 막거나, 작은 옹관에 시신을 넣고 큰 옹관을 마주 붙여놓은 옹관도 있었다. 백제 시대의 매장형태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유물이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서화가들의 작품을 전시 중으로 황희 정승의 글씨와 추사 김정희의 병풍, 창암 이삼만의 초서 글씨, 의친왕 이구의 친필, 강암 송성용, 소전 손재형의 서예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회화로는 단원 김홍도의 미륵탑도, 오원 장승업의 화조도 등과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도, 관아재 조영석의 산수도 등의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여기에 근대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히는 의재 허백련,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심향 박승무,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의 산수도·궁녀도·명태도·사슴도 등의 그림도 보였다. 

 

특이한 것은 커다란 인장류를 전시해놓은 것이었는데 이 또한 나로서는 흔히 보아왔던 것은 아니었다. ‘인장’은 나무, 뿔, 돌, 상아 등 재료에 글자, 무늬, 그림 등을 양각이나 음각 기법을 이용해 조각한 수 인주 등을 발라 관직, 이름, 호 등을 알 수 있도록 문서나 서화에 찍어 증명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말하는데, 글씨뿐만 아니라 인주의 외향도 만만치 않았다.


가볍게 생각하고 왔는데 상당한 그림과 공예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놀랐다. 이런 아까운 미술품들을 보는 이가 적다는 것도 안타까웠다. 좋은 그림 몇 점만 보아도 여기 온 충분한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이제 와 본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보다 더 전문적인 사람들이 이 시립송암미술관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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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아직 문화적 토대가 약하다고들 한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한가운데 인천이 있었다. 이제 인천이 변모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와 인천문화재단과 예술위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인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있는 사료들을 잘 보관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도 중요한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민들과 예술인들의 마음도 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미술관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길을 잃더라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길에서 만나는 새로움이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바다를 왼편에 두고 집으로 향했다. 바다는 붉은 빛으로 가득했다. 왠지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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