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샘은 최근에 ‘역린’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야기가 흩어지고 지루한 편이었다. 사실 졸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노론을 중심으로 한 권력집단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던 정조다. 영화가 시작되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당시의 사료를 인용하며, 어린 정조에게 주변의 신하들이 해주던 말이 나온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정조를 둘러싼 노론이라는 권력집단은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노론과 권력집단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왜 이 말이 기억에 남았겠는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으면서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의 결말은 죽음이었다.
“가만히 있어라.”
이 말은 초등학교 교사인 김샘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이다. 어쩌면 매일 매일 아이들에게 하는 말일지 모른다. 아니, 하루에 수도 없이 하는 말이겠다. 아침부터 아이들과 만남을 시작하면서 수업시간을 거치면서 집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교사들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봐. 가만히 앉아서 들어. 가만히 좀 있어. 가만히 시키는 대로 해야지.” 학급의 통제와 관리를 위해 애쓰는 교사들에게 어쩌면 이보다 더 자주 하는 말은 없을 듯하다.
“가만히 선생님 말 잘 들어야지” 이런 말을 하면서 가만히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법만 가르쳤다. 그리고 가만히 말 잘 듣는 아이들을 칭찬하고 예뻐했다. 우리의 부모들도 선생님처럼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학교에 가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밖에 나가선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선생님과 부모님은 다 마찬가지이다. 단원고의 아이들은 침착하게 안내 방송 잘 듣고 시키는대로 따라했다. 그래서 그대로 죽어버렸다.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말했던 어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샘은 세월호 이후 많은 생각을 한다. ‘대체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말 좀 잘 들으라고 매일 말했을까? 왜 매일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을까? 왜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을까? 왜 말 잘 듣는 아이들만 칭찬했을까?’ 정말로 그동안 교사로 살아 온 이런 내 모습이 정말로 참담할 뿐이다. 김샘은 스스로 자괴감까지 들게 된다. 이제 김샘은 그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이 바로 죽음으로 연결되는 하이패스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가르칠까?
“삐딱한 아이가 되어라.”
세월호의 아픔이전에 김샘은 소외 말하는 삐딱한 학생들 때문에 항상 고민이 많았다. 학교에는 늘 불평불만을 늘어 놓고, 자주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며,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여러 유형의 삐딱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특히 많은 시간을 자신의 반 아이들과 보내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이들과 부딪치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마땅한 해결책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김샘은 이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이들과 “가만히 좀 있어라” 소리치며 싸우지도 않는다. 그 아이들에게 화도 잘 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어른들 말 잘 들으란 애기도 이제 못한다. 오히려 “선생님 말은 이제 듣지 마라. 그것이 너희들이 살길이다. 말 안 듣는 삐딱한 아이가 되어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김샘은 이제 ‘말 안 듣는 방법’을 가르쳐 볼 생각으로 삐딱한 아이들과 공존을 모색하게 되었다.
어쩌면 교사가 기존의 편협된 통제와 관리의 마인드로 우리의 아이들을 지나치게 삐딱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교사가 항상 어른들의 말에 따르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길, 공부와 입시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변화되길 강요하면서 이 테두리를 벗어난 아이들을 소위 삐딱하다고 여겼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교육은 이제부터 멍청한 어른들의 말을 듣다가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탈출명령 없어도 탈출할 수 있는 삐딱한 아이가 되도록 가르쳐야 할 시점이다.
“어느 순간에도 너희들 자신의 판단을 믿어라. 어른들의 말은 그저 참고만 해라.” 김샘은 이제부터 이렇게 말해야겠다. 김샘의 이런 생각은 우리 아이들의 삐딱함에 믿음을 갖게 되었다. 오히려 삐딱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쩌면 성공하는 교사의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