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이제부터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1년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여정을 택했다. © 서진완
“어떻게 고2와 중2를 데리고 여행을 갈 생각을 했어요?”
“학교는 어떻게 했어요?”
질문에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고2 아들과 중2 짜리 딸을 데리고 네 가족이 여행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공통된 질문을 받게 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 또한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은 지금처럼 분명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훨씬 많은 공부가 될 것이다’
지금도 잘 한 판단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행이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가족이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도 여행보다는 그 시간에 학교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모두가 여행이 좋다고 강조하지만 직접 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들 역시 나중에 대학에 가고 난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서 마주친 학생들은 새장 속에 갇혀,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대학에 오기 전에 했어야 할 고민들을 대학에 오고 나서야 한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아이가 고3이 되면 달라질거라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는데 왕도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어려웠다. 과연 새장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정말 감성이 자극되고 맘의 풍요를 누릴 수 있을까? 공부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행복한지, 우리는 정말 행복한지, 그리고 아이들도 행복한지. 결국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이들과 아내가 함께 평생 간직 할 수 있는 경험과 추억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최소한 우리만이라도 입시라는 현실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간섭과 방관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 부부는 결과 보다 과정에 초점을 두는 여유를 택했다. 공부도 인생도 즐거운 여행이어야 한다.
나란히 늘어선 네 개의 배낭. 여행하는 내내 온전히 본인의 두 어깨에 짊어져야 할 무게이다. © 서진완
의외의 벽, 그래도 우리는
2009년 겨울, 아내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위 전체를 절제하고 이듬해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나는 아내의 건강이 회복된다면 가족 모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011년 가을, 아내에게 세계일주 여행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내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아이들에게도 여행 계획을 이야기 했다.
당연히 아이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아이는 흔쾌히 여행을 함께 하겠다 해 주었지만, 의외로 큰 아이는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해 겨울 큰 아이가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이 결정되고, 방학 동안 예비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끼던 차였기 때문이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이미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여행도 함께 했기에 쉽게 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1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학교 대신 여행만 한다는 것을 아이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다. 그 후 2주 동안 여행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주고, 겨울방학 동안 생각 할 시간을 주었다. 3월이 되자 아이는 함께 하겠다고 대답해 주었다.
가족회의를 열어 그동안 마음속에서 그려왔던 큰 그림을 설명했다. 왜 우리가 이 여행을 해야 하는지, 그로 인해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리고 각자 가고 싶은 장소와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 했다. 아이들에게도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과 연계하여 생각해 보길 권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위한 나름의 각오를 차곡차곡 다지고 있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온 갖 서류부터, 약품, 여행용품까지. 챙겨야 할 것 들이 너무 많다. © 서진완
여행준비를 하는 것도 녹록치 않았다. 여행을 결심하고 나서도 본격적인 여행을 준비하는데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항공권 구매는 물론,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도착 및 출발하는 시간을 고려해야 했다.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유지하기 위해 봄, 여름을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여정을 설계해야 했다.
2학기 강의가 시작되자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준비해야 할 것들은 눈앞에 닥쳐오는데, 강의 준비와 밀린 원고, 논문심사 등 마무리해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나를 압박했다.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여행 정보를 모았다. 이미 해당 지역을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필요한 정보를 모았다. 하지만 4인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정보를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와중에, 10월에 예정된 아내의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나선 결정된 노선과 일정으로 항공권을 예약했다. 아내와 나는 12월에 예정된 마지막 정기검진에 대해선, ‘검사는 하되, 결과에 관계없이 떠나기’로 했다. 한 편으론 걱정도 되고 초조해지기도 했지만, 아내에겐 그저 괜찮을 것이라고만 했다. 그 동안 여러 곳을 여행해본 경험이 있다고 해도, 가족 전체를 데리고 여행을 해야한다는 부담감과, 아내의 건상상태 때문에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서는 나날이었다.
아내도 나 못지않게 걱정이 많았다. 아마도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부분이 가장 신경 쓰였을 것이다. 더욱이 아내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냄새에 민감하고 향신료를 싫어하는 탓에 걱정을 하곤 했다. 아이들 또한 학교를 그만두고 떠나서 1년 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지, 어느 하나도 분명한 것은 없었다.
2012년이 저무는 마지막 주, 아내는 큰 아이의 학교엔 자퇴서를 제출하고, 작은 아이는 무단결석으로 행정 처리를 완료했다.
다 괜찮다!
인천공항에서. 이제 긴 여행을 시작한다. © 서진완
2012년 12월. 아내는 마지막 정기검사를 받았다. 모든 일이 바람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내의 갑상선 부위에 또 다른 이상 징후가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추가로 진행해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검사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낮에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게 보냈지만, 저녁이 되면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창밖으론 눈이 내리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메모지에 적어 두었던 준비 목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필요한 서류도 다시 검토했다. 거의 다 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2012년의 마지막 날, 아내와 다시 찾은 병원에서 “괜찮은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병원 밖을 나서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2013년 새해 첫날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가져가야 할 짐들을 모두 배낭에 넣었다. 집안을 둘러보고 재차 점검을 했다. 그리고 옆집에 사는 사람들, 경비아저씨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그동안 알고 지내던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출발 인사로 각자에게 다짐하는 메모를 남겼다.
"우리 가족에게 내년 한 해는 너무나 소중한 일 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4명의 서로 다른 인격체가 부딪히면서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하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아내와 나는 더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될 것이고, 나는 나의 내면의 소리에 더 귀를 더 기울일 작정이다.“ - 아빠
"내일이면 대장정의 길을 떠난다. 그동안 꼼꼼하게, 열심히 준비했고 이제는 계획된 일정대로 건강하게 다녀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무슨 일이든 함께 의논하고 결정할 것이고 때로는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에서의 세상을 보려고 한다. 1년 내내 함께 다니다 보면 서로 크고 작은 다툼도 있겠지만 그 또한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묶어줄 것이라 믿기에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 엄마
"지금도 기분이 많이 묘하다.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두렵기도 하지만 이처럼 잘 모르는 상황을 겪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라 생각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어떤 것이 비슷하고 어떤 것이 다른지를 몸소 느끼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면서 강조한 것이 첫 번째도 가족의 건강이고 두 번째도 가족의 건강이며, 세 번째도 가족의 건강이다. 우리가족 모두가 아무런 탈 없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으면 좋겠다." - 큰 아이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이 너무 좋다.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아빠가 일정을 조정해서 과학박물관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에 많이 기대가 된다. 내가 꼭 보고 싶은 장소에 가서는 나도 자료를 조사해서 안내를 해 보고 싶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여행을 잘 마쳤으면 좋겠다.” - 작은 아이
<정리 = 이미루 기자>
저번주 수요일 글보고 언제 시작되나,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행하면서 무슨일들이 있었을까, 말은 통했을까, 숙소는 어찌 햇을까, 어느 나라가 가장 인상적이었을까 등등 궁금해져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수요일 이었거만,
아쉽네요, 격주! 기다리기엔 넘 긴 시간인거 같은데 매주 수요일날 볼수 있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궁금해서 기다리기엔 넘 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