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새로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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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새로운 일상
  • 서진완
  • 승인 2016.06.08 09: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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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세계여행 365일] (3) 낯선 곳에서 만나는 여유로운 일상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파키스탄으로 가기 위해 우리 가족은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사진 = 서진완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


한산한 새벽거리, 릭샤 위에서 담요 한 장 뒤집어 쓴 채로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 = 서진완

새벽 3시 반. 아내와 난 잠을 자지 못했다. 앞방에 투숙한 사람들이 새벽까지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떠드는 바람에 결국 자는 것을 포기했다. 오늘은 파키스탄으로 이동해야 한다.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우리를 태우러 온 택시는 폐차 직전의 수준이었지만, 이른 새벽에 와 준 것만도 고마웠다. 

택시기사는 택시 위에 올린 배낭을 끊어질 듯 약한 노끈 하나로 고정하는데, 연신 걱정말라고 한다. 새벽녘의 빠하르간지 거리는 쓰레기더미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군데군데 릭샤 위에서 담요 한 장 뒤집어 쓴 채로 자고 있는 사람들이 어슴프레 보인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표와 여권을 확인하고, 세관원들은 모든 배낭을 열어 물품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검사했다. 이후엔 성별을 나눠 몸수색까지 한다. 작은아이는 자신의 몸에 누군가의 손이 닿는 것을 질색했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가 정치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서로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탄 국제버스는 양국의 우호적 관계개선의 상징적인 증표로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경비가 삼엄한 시설 속에서 탑승수속이 진행 되도록 하여 상호간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버스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가까워 질 때 까지 무장한 인도 경찰의 호위는 물론, 버스 앞 뒤 좌석에는 무장 경찰이 동승했다. 버스 앞뒤로 순찰차가 호위하며 연신 사이렌을 울리고 차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도로의 경찰이 수신호로 우리가 탄 버스를 먼저 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파키스탄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해 짐을 옮겨 실었다. 이곳에서도 짐꾼들은 원치 않았던 서비스를 강요했다. 이들은 버스에 짐을 올려놓을 때마다 팁을 요구했다. 방글라데시에 이어 인도, 그리고 파키스탄까지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받으면서 비용까지 지불해야만 했다. 

버스가 국경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무장을 한 파키스탄 경찰이 선두에 서서 라흐르(Lahore)시내로 가는 차선을 정리해 주었다. 마침내 버스터미널 안으로 버스가 들어서자 그곳에서도 경계를 서고 있던 무장경찰이 보였다. 직원들이 짐을 꺼내서 모든 승객들의 짐을 확인할 때까지 우리 모두 기다려야만 했다. 

라흐르는 생각보다 잘 정리되어 있고, 시내에 차량통행이 많았지만 도로가 복잡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거리를 다니는 차들은 고급스러워 보였고 오래된 차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인도의 경우 정부는 부유하지만 개인은 가난한 반면, 파키스탄은 개인은 부유한데 정부가 가난하다고 한다. 일반적인 임금노동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자영업자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한 탓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개인별 생활수준은 여유로운 편이란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나무들이 많고, 끝없는 평야가 이어졌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고속도로 위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환대와 당혹감 

물탄(Multan)은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인더스 문명의 고대도시 모헨조다로(Mohenjo Daro)가 근처에 있는 곳이다. 밝은 햇살아래 우리에게 처음 선을 보인 물탄의 BZ(Bahauddin Zakariya) 대학교는 넓은 들판에 단층 건물들이 회색빛을 하고 아담하게 앉아 있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Fani와 함께 BZ대학교 총장과의 면담을 위해 대학본부를 찾았다. 차를 나누며 이곳에 온 이유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 파키스탄의 대학들은 자국을 찾아오는 외국학자들에 대해 각별하게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서방세계에서 파키스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탓에, 대학 차원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외국 학자들을 초대한다고 한다. 

 


낯모르는 학생들과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새롭다. 사진 = 서진완

무척이나 고맙게도 대학에서 숙소를 제공해주고, 일하는 분이 와서 식사를 준비해주고, 청소도 해주는 호사를 받게 됐다.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Fani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그의 호의를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린 두 명의 도우미가 지켜보는 가운데 식사를 하는 부담스럽지만 독특한 경험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우리끼리 먹었으면 했지만, 이분들은 우리가 먹는 동안 내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가져다 주기위한 배려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이런 서비스는 계속됐다. 이게 서비스인 것은 분명한데, 부담스러운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대학에서 만난 학생들은 하나같이 적극적이고 다정다감했다. 거리낌 없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친절하면서도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낯모르는 학생들과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일부 학생들은 손을 흔들기도 했다. 아내는 “우리 아이들도 이 친구들처럼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한다. 

여유와 고민은 이렇게 시작! 



여행을 하는 동안, 길 위에서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 = 서진완

한국에서는 설날 귀성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먹음직한 떡국 사진, 메신저를 통한 학생들의 신년인사들, 한국의 가족들의 따뜻한 인사가 반갑다. 햇살이 너무 따뜻해 빨래를 해두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길옆에 서 있는 나무들은 꽤 오랜 세월을 묵묵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는 듯 커보였고, 잔디밭 너머로 몇몇 학생들은 우리가 궁금했던지 다가와 아는 척을 한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한동안 우리가 걷는 길에는 오고가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나 바쁘게 쫓기듯 살아왔던 우리들의 삶이 이곳에서는 잠시 멈춰버린 듯 여기 길 위에 서있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일상을 마주한다는 것. 사진 = 서진완

서울은 설 연휴가 시작되고 귀성객들과 제사 준비를 위해 무척이나 바쁘겠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 위에 우리 가족이 있다. 여유를 가지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세월을 잠시나마 뒤돌아보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런 여유를 가지고자 했는데, 이곳 물탄에서 이루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갖는 여유를 만끽한다. 

물탄에서 지내면서 큰아이는 대학에 가면 어떤 전공을 선택 하는게 좋을지 자료들을 찾아보고 질문도 많이 한다.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내 주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서 어른들이 겪고 있는 일반적인 걱정, 명예퇴직이나 정년을 앞둔 내 또래 사람들의 이야기나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 이야기도 해 준다. 그리고 큰아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지에 대해 생각해보라 말한다. 

나는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생각에 따라 대학에 들어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심지어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 여전히 낯선 곳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손을 붙들고 부모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새로운 경험에 노출시켜 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보는 것.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과, 보이는 반응 하나하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행을 시작하고 접하게 되는 이런 낯선 경험들은 아이들에게 꽤나 큰 자극이 되고 있는 듯하다. 

여행을 시작한지 50일을 맞았다. 여행 후 처음으로 이발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내가 이발을 해 주었는데, 다시 머리를 다듬어야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났을까 싶은데 이렇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서로에 대한 배려도 만족스럽다. 아이들도 여행에 대한 자세나 태도가 진지하다.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했으면 하는 나름대로의 기본을 잊지 않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길 위에 서며 
 


파키스탄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은 잘 마무리했다. 사진 = 서진완

물탄에서의 마지막 날 오전엔 총장과 대학 보직교수, 그리고 사회과학대 교수들을 모시고 마지막 특강을 했다. 내가 이곳에서 하기로 한 공식적인 일정이 끝났다.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꺼내고 짐을 챙겼다. 더 이상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는 물품과 지금까지 사용했던 빈도와 중요도를 고려하여 다시 정리한다. 

덕분에 배낭에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수고해 준 경비원과 청소를 도와준 아주머니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오늘도 가는 길 내내 경찰이 호위를 해 준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아내와 아이들 모두 잠이 들었다. 창밖으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라호르로 돌아온 다음 날 펀잡대학(Univeristy of the Punjab)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마지막 특강을 마쳤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아내는 내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설명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지하고 예의바르게 대할 수 있다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목적 없이 순수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는 더욱 소중하다는 것도. 아이들이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해선,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면 그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는 것도 강조했다. 아이들이 잘 이해했으면 했다. 고맙게도 큰아이는 진지하게 나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아내는 큰아이가 “아빠처럼 사람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작은아이는 아무말이 없었다고 한다. 

새벽 3시. 경비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배낭을 챙겼다. 새벽의 캠퍼스는 너무나 조용했고 라호르시내도 인적이 없었다. 인도에서와는 달리 버스를 타는 절차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Fani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왔다. 우린 그렇게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정리 = 이미루 기자>
 

사진 = 서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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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숙 2016-06-10 09:55:48
스스로 공부하고자 선택한 길인데도 고민과 마주하게 되는 날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을 느낌니다. 아마도 스스로 선택했기에 이 같은 고민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을 수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조금 지친다는 생각이 들어 짧은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국내이기는 하지만 비행기도 타고 ^^ 여행은 정리할 수 있도록 여유와 시간을 벌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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