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와 배낭여행, '극과 극'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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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와 배낭여행, '극과 극'의 체험
  • 서진완
  • 승인 2016.06.22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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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세계여행 365일] (4) 이집트. 고단함과 안락함을 느낄 그 곳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집트의 오늘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시내 중심. 사진 = 서진완


창문을 열었다. 카이로(Cairo) 거리의 다양한 소음이 창문사이로 들어왔고 두툼한 커튼을 열자 햇살이 밝게 실내로 들어왔다. 여기가 바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시내중심이다.

교통체증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한 Mosaad 교수를 만났다. 한국에서 만나고 얼마만인지! 미리 의논했던 대로 여행사에 가서 나일크루즈(Nile Cruise)를 예약하고, 교외에 있는 Mossad의 집으로 향했다.

타흐리르(Tahrir) 광장에 위치한 여행사까지 가는 거리는 온통 차량으로 뒤덮여 있고, 사람들은 지나가는 차를 무시하고 거리를 건넜다. 이곳 카이로에서 새로운 질서를 확인한다. 보행자는 요령껏 차량통행을 피해서 건너가야 한다. 거리는 방향과 관계없이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는 작은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길을 건넜다.

타흐리르광장에는 이집트에 불어온 민주화바람을 실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것들이 많다. 여행사에서 나오자 일부 군중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 지금도 이집트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Mossad는 시위 참가자들의 사진은 찍지 말라고 했다. 이곳 광장은 심리적으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박물관 옆에 있는 건물은 불에 탄 흔적이 건물 곳곳에 남아있기도 했다. 갑자기 군중들이 모여드는 것 같아, 광장을 가로질러 Mossad의 차가 있는 곳으로 서둘러 걸었다.

차가 출발하자 Mossad는 창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나일강을 지났다. 멀리 기자(Giza)지역의 피라미드가 보였고, 사막이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다. 그의 집은 사막위에 건설된 신도시에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우리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함께 얘기도하고 음식도 먹으며 아이들끼리도 금세 친해졌다. Mossad와 내가 이곳에서의 일정을 의논하는 동안 아내도 Mossad의 아내 Zeinab과 친해진 것처럼 보였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카이로의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아내와 둘이서 거리를 나섰다.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과 차들로 뒤엉켜있고 대로 뒤편 골목에는 노천카페가 펼쳐져 거리를 걷는 것도 쉽지 않다. 호객꾼들이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거리를 걸었다. 앉아서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뿜어대는 담배 연기가 골목을 뒤덮고, 한쪽에서는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옷가게며 신발가게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번화한 카이로의 밤 열기는 오전의 적막한 거리와는 또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안개속의 카이로
 
시내 곳곳에 불에 탄 건물들이 있고, 시위가 있는 때면 거리가 텅 비어버린다. 시커멓게 그을린 건물 옆으로 박물관이 서 있다. 사진 = 서진완
 

이집트 박물관을 보기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큰 아이도 어디를 가든 박물관을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동생에게 그 곳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고 설명한다.

“오빠, 이게 뭐야?” 작은아이가 큰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마다 큰 아이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기도 한다. 아내와 나는 힘이 들어 쉬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더 돌아보고 오라고 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여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이집트 성채에서 아내와. 사진 = 서진완


타흐리르광장으로 나와 카이로 타워에 올라 석양을 보기로 했으나, 순간 데모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일단 그 자리를 피했다. 그 순간 누군가 신호등 앞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여 지나가는 차량에 던졌고 주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큰 아이와 나는 아내와 작은아이의 손을 잡고 빨리 그 자리를 피했다. 카이로 타워에 올라가려는 계획은 포기하기로 했다. 우선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장면은 처음이었다. 큰 아이는 조금이라도 먼저 신호등을 건넜더라면 화염병에 의한 피해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와 동생을 피신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숙소 근처에 오자 언제 데모하는 사람들이 있었느냐는 듯, 조금 전과는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배낭을 숙소에 맡겨두고 우리 가족은 대법원과 나사르(Nassar)역을 지나 람세스대로를 따라 나일강이 흐르는 옥토버 다리(October Bridge)를 지나 카이로 타워를 다시 찾았다. 65m 높이의 카이로 타워에 올라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카이로 시내를 내려다보고 내려왔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이번에는 카이로 성채를 찾았다.

 
 
성채위에서 내려다 보면 이집트의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사진 = 서진완
 
중세시대 이슬람 성채로, 모카탐(Mokattam) 언덕에 위치해 있고, 1176~1183년 사이에 십자군에 맞서 지어졌다고 하니 중세 십자군전쟁의 역사까지 느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모스크 내부에 들어가서 시원한 대리석 벽에 기대어 쉬었다. 양탄자가 바닥에 깔려있어 나그네가 잠시 생각하며 쉬어가기에 최적의 장소인 듯 하다. 벽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 대리석 벽에는 사람들이 기대 쉬고 있다. 나와 아내는 한동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성채에서 석양이 지는 카이로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정국이 불안정한 그 모습만큼이나 뿌연 카이로 시내를 카이로 타워와 성채에서 둘러보았다. 오늘 날 이집트가 처한 불안한 상황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아이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데모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겠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라 우리의 역사까지도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앞으로 많은 시간동안 우리 아이들에게도 정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천천히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박물관과 성채에서 우리는 이집트의 향기를 맡았으며 과거의 화려했던 이집트의 문화를 보았고, 과거 역사의 문을 나서는 순간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현재 이집트의 모습도 함께 바로 눈앞에서 보았다. 


크루즈와 배낭여행

이번 여행에서 아내를 위해서는 크루즈를 아이들에게는 배낭여행을 각각 선물해주고 싶었다. 지중해나 카리브해 크루즈는 드레스 코드를 요구해서 배낭을 멘 상태로 여행하기에 적합지 않아, 나일강 크루즈를 생각해 왔었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잘 버텨준 아내에게 고맙기도 하고 또 이런 정도의 여행도 경험하게 할 필요도 있다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극과 극의 체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호텔식 침대열차에 대한 큰 아이의 소감은 “배낭여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란다. 호텔식 침대열차는 2인 1실로 깨끗했고, 2인실 내부의 문을 열면 2개의 객실이 4인 가족의 패밀리룸처럼 지낼 수 있어서 아내와 작은아이는 만족스러워했다. 큰 아이는 최대한 여행경비를 절약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호텔식 밤기차와 나일크루즈에 돈을 너무 많이 쓴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돈을 절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설명에 큰 아이도 이해하는 듯 했으나 여전히 한마디 덧붙인다. “절약했으면 좋겠어요!”


룩소행 야간열차와 나일크루즈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안락했던 밤기차는 도착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룩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후 유람선에서 정해준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미리 와 있던 사람들도 우리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여행사측 잘못도 아니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유람선에 도착해 배낭을 풀어놓았다. 객실은 5성급 호텔답게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점심도 거른 채 룩소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카르낙신전(Karnak Temple)과 룩소 신전(Luxor Temple)을 둘러보고 오느라 힘들었다.

큰 아이는 “책을 몇 번이나 읽고, 설명을 몇 번이나 들어도 한 번 직접 보고 느끼는 것보다 못하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은 절대로 글자 또는 사진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적지에 가면 다른 사람들 말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생각들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유람선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시설은 고급스러웠고 작은 아이는 수영장을 만끽했다. 사진 = 서진완
 
나일강 위를 떠가는 유람선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시설은 고급스러웠다. 선실의 커튼을 치자 강 건너 룩소의 서안(West Bank)이 한 눈에 들어왔다. 새들이 강 위를 유유히 비행하고, 강물은 호수처럼 잔잔하게 흘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왕의 계곡(Valley of the King)이 있는 서안으로 향했다. 우리가 룩소에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한 이곳은 바로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박물관에서 본 유물들이 발굴된 그곳이다. 실제 내부로 들어와 보니 나무와 풀 한포기 없는 바위산인 이곳에 어떻게 이처럼 깊은 무덤을 만들었는지 경이롭기만 했다.

계곡 사이에는 햇살이 반사되어 더욱 뜨겁게 느껴졌지만, 실내에 들어서자 순간 서늘하기까지 했다. 큰 아이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 장면을 직접 보면서 가이드에게 질문도 하고,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내용들은 우리들에게 자신 있게 설명하기까지 했다. 무덤 내부는 정교하게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으며, 석관이 있는 곳까지 이르는 통로의 양 벽과 천장은 화려한 그림과 상형문자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왕들의 계곡은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해서 현장의 삭막한 산들과 계곡, 그리고 무덤입구 등을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었다.

배 안에서 창밖으로 보는 나일강변의 집들과 야자나무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모습은 정겹기만 했다. 하늘은 너무나 맑고 청명했지만, 공기는 이미 후끈 달아 오른 탓에 벌써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크루즈여행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실감한다. 오후 내내 유유자적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아내는 사진도 정리하고, 글도 쓰고, 아이들은 수영을 즐겼다. 햇살이 뜨거운 선상에서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해가 서녘으로 넘어가는 무렵 선상에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나일강은 사막인 이 땅에 유일한 젓줄임을 실감한다.

 
나일강은 사막인 이 땅에 유일한 젓줄임을 세삼 느낀다. 사진 = 서진완


작은 아이는 수영장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놀고 있다. 얼마 만에 수영장에서 물장난을 하는 것인지! 우리들도 물에 발을 담갔다. 뜨거운 태양으로 따뜻해진 물이 기분 좋게 내 발에 닿았다. 큰 아이는 아이돌 음악을 틀었다. 나일강 크루즈에서 듣는 음악이 새롭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번 크루즈여행은 새로운 경험이 되고 있다.

배가 아스완에 정박해 있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스완댐과 필래신전(Philae Temple)을 찾았다. 바람이 불면 시원했지만, 햇살이 너무나 뜨거워서 그늘이 없다면 정말 참기 어려운 더위가 계속되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지금과 같은 시기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많은 외국인들로 붐볐다. 이 많은 사람들은 불안한 현재의 이집트와 고대 이집트의 모습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조상이 남겨둔 엄청난 유산으로 살아가는 듯한 이곳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안쓰럽다는 느낌이 더 크게 남는 것은 나만이 갖는 생각일까?

이제 아스완에서 카이로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하지만 이 기차가 언제 출발할 것이며, 언제 도착할지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의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것이 현재의 이집트 얼굴이다.
                  <정리 = 이미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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