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려면 3600(학점*토익점수), 888(3.8, 880, 자격증 8개)은 해야
뒤쳐진다는 불안감에 도서관서 10시간 있어
최근 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청년 실업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요즘의 대학 풍경은 예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잔디밭의 술자리 낭만 대신, 1학년 때부터 도서관에서 취업을 준비하며 '열공모드'에 들어간 학생들을 보는 것이 더 익숙하다. <인천in>은 우리 지역의 청년들이 취업을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힘든 점은 무엇인지 솔직히 까놓고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인천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거나 갓 졸업한 취업준비생 4명이 전해주는 취업 '솔까말' 이야기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면.
신의섭(27, 02학번)
학교에서 인턴조교로 근무한다. 집은 인천 연수구 청학동이고 8월에 졸업했다. 취업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기보다는 준비가 부족해 내년 6월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류현수 (26, 03학번)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집 주변 국공립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잘 안 돼서 인천으로 오게 됐다. 처음 올라왔을 때는 혼자 사는 게 좋았다. 사람 만나는 재미로 지내다 보니 학점에 소홀했다. 복학 전에 성적이 좋지 않아 고생했다. 1학년 때는 도서관에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군대 갔다 오니 인식이 달라져 있었다. 2007년도 쯤엔 1학년들도 도서관에 꽤 많았다 상대적으로 창피하기도 했다. 후회는 아니지만 1,2학년 때 "나도 관리좀 해 놓을 걸" 하고 생각했다.
권지영 (24, 05학번)
4학년이고 인천 남동구 간석동에 산다. 1학년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지금도 메우기 힘들다. 지금은 학점에만 매달리고 있다. 기본은 해야 하니까. 1학년 때는 연애를 하다 보니 놀게 됐다. 3학년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늦었다. 휴학하고 공부하려고 했지만 또 놀았다. 그래도 자격증은 준비했다.
백준엽 (24, 05학번)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두고 있다. 경제학과 전공이고 부전공으로 경영을 듣고 있다. 집은 인천 서구다. 학점은 상반기(1, 2학년)에는 잘 안 나왔다. 3학년 때부터는 그래도 괜찮았다. 영어권에 관심 많아 학교에서 지원하는 영어학습 프로그램에 몇 번 참여했다.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취업도 해외영업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해외 인턴 준비를 한다. 서류전형을 끝내고 외국 회사와 전화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
취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신의섭
군대 다녀와서는 학점에만 신경을 썼다.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나는 영어가 진짜 안 된다. 영어에 매달리고 있다. 같이 일하는 조교 형이 말하길 "학점 4.0과 토익 900점을 곱한 3600점이 돼야 서류 통과에 수월하다"고 했다. 적어도 나는 3000점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서비스업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
류현수
복학 이후 금융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취업과 관련된 인터넷 카페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888이란 말이 있다. 학점 3.8에 토익 880점, 자격증 8개 정도 있어야 취업한다는 얘기다. 나는 888까진 아니더라도 금융 3종, 취업 5종(성적, 봉사활동, 인턴, 자격증, 해외연수)은 준비하려고 한다. 봉사활동이나 스터디,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다.
이번 하반기 은행 공채 지원했는데 잘 안 됐다.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있었고. 요즘 암울한 상태에 있다. 금융권 공채의 경우 상반기에는 적은 수를 뽑는 편이고, 하반기 공채가 졸업 예정자들이 지원하는 추세다.
권지영
금융쪽에 관심 있다. 친구랑 스터디를 주로 한다. 스터디를 담당하는 교수님과 친분도 쌓고 있다. 교수님이 모 은행 출신이신데 금융권에 발이 넓다. 교수님이 도움을 많이 주신다. 금융기관이나 세미나도 데려간다. 방학에는 직장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직 원서 넣을 것은 아니지만 취업설명회에 가서 알아보기도 했다.
직장 체험은 한 달 동안 남구 학익동 수협에서 했다. 돈을 세거나 컴퓨터로 출납하면서 창구 업무를 배웠다. 전체적으로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도움이 됐다. 스터디를 하면서 학점 관리도 한다. 4학년이지만 21학점 듣고 있다. 영어는 방학 때 위주로 한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백준엽
우선 막막하다. 졸업은 하니까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내가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막연하고 겁난다. 남들이 모두 토익이다, 자격증 딴다 하니 따라 하긴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하는 것 말고 나만의 특별한 것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제일 어렵다. 봉사 활동도 마음에서 우러나서 해야 하는데, 취업 준비를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나만의 특별한 것을 찾는 게 어렵다. 내 장점은 프리젠테이션 발표다. 예전에 학원 선생님을 해서 그런지 말이 잘 나온다. 아나운서가 내 꿈이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학교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어릴 때는 아나운서가 꿈이고,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면서 현실적이 됐다. 어릴 때부터 꿈이지만 접어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됐다.
류현수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각자가 꿈이 있어 준비하지만, 기업 인사담당자들 말로는 똑같은 스펙은 필요 없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경쟁자들은 자신만의 특징을 준비한다. 경쟁자들이 앞서가면 불안하다. 취업 카페에서 '카더라 통신', '누구는 뭐 해서 됐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경쟁에 뒤쳐지지 않도록 맘 놓고 있을 수 없다.
공부를 딱히 할 것은 없지만, 잠을 자더라도 도서관서 잔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10시간 정도다. 압박감, 불안감으로 스트레스성 위궤양도 걸려 봤다.
친구들과 간단히 나가서 놀더라도 가방은 도서관에 두고 간다. 실제로 공부하는 시간은 서너 시간이다. 나머진 논다. 몇몇 친구들은 4학년을 "죽을 4(死)학년이다, 생각 4(思)학년이다"라고 말한다.
같이 준비하는 애들이 취업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쟤와 나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 같은데…. 가끔씩 선배들이 술사주면서 토닥여준다.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도서관에서 10시간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는 가방이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10시간이고, 내가 있는 시간은 3~4시간이다.
요즘은 취업 시기가 끝나 이력서 작성할 게 별로 없다. 인턴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서 내년 상반기에 은행 인턴을 뽑게 되면 지원할 생각이다. 요즘에는 현실하고 이상이 틀리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 아니더라도 가려고 한다.
권지영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졸업하고 1년 안에는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변에서도 스트레스를 준다. 부모님은 "너 학점 그렇게 받아서 어떻게 할래?"라고 핀잔을 준다. 주말에는 집에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고 나온다. 도서관에 가서는 짜증나서 친구들 불러 술 먹는다던지.
요즘은 전공과 맞지 않게 취업한 애들이 많다. 애들이 "너 하고 싶은 것으로 바꿔라"고 말하면 진로를 바꾸고 싶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준비한 게 아까운 마음도 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만 먹어가는 것 같다. 어떤 선배들이 말하는 "안 되면 시집이나 가라"는 것도 듣기 싫고. 한 학기를 더 다닐까 고민도 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신의섭
나 자신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다. 성격상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앉아서 단어 하나 보고 일어난다. 집중이 어려워. 스펙이니 뭐니 다들 챙기니까 잘 되지도 않고...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내가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려고 한다. 나는 고소공포증과 물 공포증이 있다. 물을 접한 것이 중학교 때 산에 가서 계곡에서 놀았던 때가 처음이다. 두 번인가 죽을 뻔한 적이 있어 물이 진짜 싫다. 하지만 요즘에 수영을 배우려고 생각중이다. 내가 무서워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 운동도 하고 싶고.
이렇게 지내다 보니 내가 놓쳤던 부분들이 잡히는 것 같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어 가니까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다. 직장에 들어 가면 바쁠 것 같아서 그 전에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 배에 왕(王)자도 만들어보고 싶다.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아보는 것도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류현수
이력서를 작성할 때 지원하는 기업을 연구한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주로 인터넷 검색이다. 회사들의 기업보고서에 한정돼 있다. 기업의 문화 등 디테일한 내용들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정보들을 얻기 위해 취업 사이트들을 돌아보는데, 어떤 정보는 유료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쌓이다 보면 부담되는 경우가 있다.
또 취업 정보 사이트의 정보도 정확한 내용이 아닐 때도 있다. 검증이 안 된 사람들의 조언으로 손해본 경험도 있다. 얼마 전 한 은행에서는 취업 관련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다. 기업에서 출제됐던 면접 문제, 논술, 평가지,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 사례, 인터뷰 실시간 댓글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고마웠다. 많은 기업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백준엽
취업 준비생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한 번 떨어지고 취업에 실패하면 위축되는 경향이 있는데, 실패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얻는 게 있다. 내가 해왔던 것도 그랬다.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이 "스펙 쌓아야겠다. 인턴십, 공모전 준비하겠다"고 말은 많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다.
나도 쿨한 편은 아니다. 소심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전한다. 두려워도 어학연수나 경시대회에 참가한다. 내가 외국에 가서 도전해 보고 나니 상황에 따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얻는 것도 많고, 도전하다 보면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